• 나의 위험한 놀이터,
    우린 더 위험한 곳에 산다
    [그림책]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 문학동네)
        2024년 01월 15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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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과 어린이 친구들이 좋아하는 구덩이

    우리 학교에는 커다랗고 깊숙이 파인 땅이 있어요. 체육관 뒤편에 있는데, 학교에서는 모두 구덩이라고 불러요.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이 땅에서 자갈 같은 것들을 잔뜩 실어 갔다고 해요. 그래서 땅이 그렇게 깊이 파인 거예요. 구덩이 안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이름 모를 풀도 있고요, 나무 그루터기도 있어요.

    구덩이는 기울어진 경사면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미끄럼을 타지요. 붙잡고 올라올 나무뿌리랑 바위도 있어요. 정말 멋진 놀이터랍니다. 게다가 한쪽 구석에서는 노란 진흙이 나와요. 한번은 비베케라는 친구가 계속 파보았어요. 그랬더니 파도 파도 노란 진흙이 나왔어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구덩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커다란 그루터기예요. 그루터기는 뭐든지 되거든요. 언젠간 엄마 곰이 되었어요. 때로는 오두막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게도 되었답니다. 게다가 뿌리는 또 얼마나 튼튼한데요. 우리가 하도 잡고 매달려서 어떤 뿌리는 손잡이처럼 맨들맨들해졌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구덩이를 싫어해요. 어른들은 구덩이가 위험하대요. 구덩이에서 놀면 다친대요. 그리고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놀라고 해요. 점점 더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아져요. 우린 구덩이가 좋은데, 어른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나의 위험한 놀이터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도 어릴 땐 참 위험한 곳에서 놀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 자체가 산꼭대기에서 세 번째 집이었으니까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아찔한 주거 환경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높은 산동네에 산다는 건, 사실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비스듬한 산에 집을 짓다 보니, 집집마다 축대가 있었습니다. 축대을 쌓고 땅을 평평하게 만든 곳에 집을 ㄱ자, ㄴ자, ㄷ자로 지었습니다. 우리집은 가운데 마당과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ㄷ자 모양의 집이었습니다.

    축대 위에 집을 지었으니, 계단으로 집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계단보다는 계단을 이어놓은, 기울어진 연석 위를 걸어 다녔습니다. 마당에 다다르면 집을 둘러싼, 낮은 담장이 있었습니다. 담장은 축대와 마당을 나누는 경계석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이 담장 위에 앉아서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사실 그 무엇보다 기울어진 축대를 오르내리며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축대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해바라기, 토끼풀, 나팔꽃, 국화, 꽈리… 정말 보물 같은 꽃의 정원이었습니다. 게다가 개미, 거미, 개구리, 메뚜기, 귀뚜라미, 지렁이… 그야말로 곤충과 벌레들의 낙원이기도 했지요.

    어린 시절, 언제나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건 자연과 그 안에서 함께 사는 생명들 덕분이었습니다. 축대와 담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사는 다양한 생명들이 나의 친구였고, 울타리 안의 모든 곳이 나의 놀이터였습니다. 물론 모두 처음엔 무서웠고 두려웠지만 곧 우리는 친해졌습니다. 심지어 파리와 모기까지도요.

    우리는 더 위험한 곳에 삽니다!

    어른들은 안전한 놀이터를 만든다면서 플라스틱과 금속과 우레탄으로 놀이기구와 놀이공간을 만듭니다. 자연에서 노는 아이들보다 인공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더 안전할까요? 흙과 나무보다 플라스틱과 금속이 더 안전할까요? 뉴스에서 발암물질을 걱정하는 우레탄 바닥이 더 안전할까요?

    어른들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집을 만들겠다며 시골에도 아파트를 짓습니다. 나무가 가득했던 산 하나를 통째로 없애고, 콘크리트와 철근과 시멘트로 만든 고층 아파트가 햇살 가득한 시골집보다 더 안전하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요? 아무나 들어올 수 없게 만드는 경비실 때문일까요? 과연 숲이 다 사라져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문명과 산업에도 친환경 생태주의를

    정말 위험한 것은 어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입니다. 어른이 정말 어린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어린이가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어린이 스스로 안전하게 노는 법을 터득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진짜 교육은 어린이 스스로 배우는 것이며, 어린이 스스로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돈을 버는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도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만들어야 다 쓰고 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야말로 쓰레기 없는 문명과 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건설회사들은 친환경 자재로 낮은 건물을 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완구와 놀이기구뿐 아니라 모든 제품이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고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돈을 벌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세상은 사람과 자연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생명의 터전입니다. 부디 어린이와 모든 생명에게 자연과 행복을 돌려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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