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령 갈리아에서 절대왕정까지
    18개의 대사건으로 꿰어낸 프랑스사
    [책소개] 『프랑스를 만든 나날, 역사와 기억1』(이용재 권윤경 박용진 박효근 외/ 푸른역사)
        2024년 01월 13일 01: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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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가 만든 프랑스에서 절대왕정까지

    유럽을 이야기할 때 프랑스를 빼놓을 수 없다. 18세기의 위상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프랑스는 세계 무대의 주역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프랑스를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 잔 다르크, 태양왕 루이 16세, 나폴레옹 등 역사적 인물이나 몇몇 명품의 브랜드를 떠올릴 따름이다. 만일 프랑스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 첫걸음은 역사를 아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알렉상드르 뒤마든 앙드레 모루아든 고전 작가들이 쓴 《프랑스사》는 너무 해묵었고, 최근 저자들이 쓴 개설서들은 딱딱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은 프랑스 역사의 파노라마를 현장감 살려 마주보게 해주는 충실하고도 흥미로운 길잡이이다. 로마령 갈리아에서 절대왕정 프랑스까지 누천년 프랑스 역사를 굵직한 18개 사건을 중심으로 한눈에 펼쳐낸다. 단순히 과거사를 정리,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수용해왔는지 보태고 짚어주니 새롭고 충실하다. 여기에 국내 프랑스 사학자 12인이 기원전 ‘프랑스 이전의 프랑스’에서 “최초의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18세기 7년전쟁까지 전쟁, 궁정 다툼, 문제적 인물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기에 흥미롭다.

    역사-우리가 몰랐던 프랑스사의 분기점들

    ‘아나니 폭거’라고 들어봤는지? 프랑스혁명 당시에도 ‘프랑스어’는 프랑스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사실은? 전비 마련에 쪼들리던 필리프 4세가 성직자들에게 재산세를 물리는 문제로 로마 교황청과 마찰을 빚던 중 프랑스 새 국상 기욤 드 노가레가 아나니에 머물던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를 구금한 후 교황직 사퇴를 요구하며 뺨따귀를 때린 사건이 ‘아나니 폭거’다. 이것이 ‘프랑스를 만든 나날’로 꼽히는 이유는 이를 전후해 ‘조국’, ‘조국애’라는 말이 등장하여 국가 정체성이 부상하기 때문이다. 1539년 프랑수아 1세가 사법 개혁을 목표로 라틴어를 사법 문서에서 배제하도록 한 빌레르코트레 왕령을 반포하기 전까지 프랑스어는 왕국의 공용어가 아니라 시골의 로망어였다. 400년도 더 전에 걸인과 하인을 제외한 21세 이상 모든 남성의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 과부와 고아에 대한 부조, 무이자 대출, 실업자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 등을 꿈꾼 보르도의 느릅나무파 이야기는 또 어떤가. 연대기식 통사에서는 만나기 힘든, 눈이 번쩍 뜨일 이런 사실들이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한다.

    기억-지어내고 비틀고, 사실史實은 춤춘다

    732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북상하던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기독교 세계를 지켜냈다 해서 오늘날 ‘유럽의 아버지’라 불리는 샤를마뉴가 만들어진 이미지가 섞였다. 그가 실은 크고 작은 독립적인 기독교 공국들을 침공했으며 교회 재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바람에 당시 기독교 소국들은 이슬람 세력과 동맹을 맺고 프랑크 정복군에 대항했단다. 역사의 왜곡이고 과장이다.

    14세기에 신분회를 중심으로 왕권을 제한하고 개혁을 추진하다 처형된 파리의 상인조합장 에티엔 마르셀은 시대에 따라, 정파적 입장에 따라 영웅 혹은 반역자로 다르게 평가되었다. 그뿐 아니다. 또한 우리가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를 두고 볼테르 같은 계몽사상가들은 ‘불행한 바보’라며 조롱했는가 하면 나폴레옹 통치기에는 ‘조국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란 말도 있지만 ‘기록’을 넘어 이를 평가, 수용하는 데에도 시대에 따라 정파에 따라 편차가 있음을 보여주어 책의 의미를 더한다.

    한국 프랑스사학계의 ‘오늘’을 보여주다

    이 책은 한국 프랑스사학계의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공동 작품’이다. 비단 지난 몇 해 동안 ‘프랑스를 만든 나날’이란 학술토론회를 열어 그 결실을 묶어냈기만이 아니다. 12인의 학자가 참여했지만 지명과 인명 표기를 통일하는 등 균질하고 유려한 서술을 유지하는 것이 단독 저술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완성도가 높다. 또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사진, 귀한 그림, 공든 지도들이 더해져 책의 가치와 가독성을 더했다. 대혁명 이후를 다루는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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