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가지 이견, 질문 두 개
    [기자생각] 류호정 논란과 선거연합
        2023년 12월 15일 01: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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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류호정 의원의 신당 참여 선언 논란으로 정의당 내부가 뜨겁다. 당 전국위원회는 탈당·출당 권고 결의까지 했다. 비례대표 의원의 정치적 입장 변화, 탈당 권고를 둘러싼 정의당의 논란은 과거 2016~2017년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 사태와 같이 지루한 정략적 공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류호정 측은 의원직 유지를 위해서 출당을 요구하면서 끝까지 버티려고 하지 않을 거 같다. 다만 그도 정리의 수순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의당 측은 당의 여론을 ‘해당행위의 상징, 배신자 류호정’으로 만들면서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려고 하겠지만 결코 ‘출당’ 징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치적 시간의 중간지점 어딘가에서 정리가 될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의 분노 포인트는 류호정 의원이 지금 정의당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정의당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분이 저러고 있으니 열 받는 게 아닐까요”라는 누군가의 말은 씁쓸하고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이 가져야 할 정치적 책임감, 당원들의 기대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노선과 방향이 다르고 신념의 문제라고 자신의 행보를 정당화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자중하고 겸손하고 미안함이 먼저여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정의당 위기의 원인을 류호정이라는 비례대표 의원 한 명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나이브하고 책임 회피이다. 오히려 청년정치라는 이름의 정치 마케팅 그리고 류호정, 장혜영 등이 정의당 정치를 과잉대표하도록 만든 정치 지형, 구조, 당 리더십의 문제가 더 본질적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측면과는 별개로 류호정 논란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당의 정치노선, 선거연합신당을 둘러싼 지점에 있다고 보는데 이 쟁점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축소, 외면되는 차가운 의제가 되고 있다. 이 의제가 제기된 처음부터 진행 중인 현재까지도 그렇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지점에 대해 이견들이 있고 질문해야 할 것들도 있다. 여기에 집중해보자.

    ‘선거연합신당’이라는 뫼비우스의 딜레마

    나는 선거연합, 정치연합이라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선호하는 편이다. 정치적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연합해서 힘을 합치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연합정치에 유연하고 유능해야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자신의 기준과 노선에 근거한 최대연합 방향에 나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떤 세력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합할지에 대해 처음에는 녹색당, 이후에는 진보4당으로 확대된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하는 선거연합신당 방식에 나는 애초부터 비판적이었다. 그렇지만 평당원인 나의 개인 의견이었고 당 지도부의 의지, 의결기관의 결정 등이 중요하기에 지켜보고 사적인 느낌만 간간이 토로할 뿐이었다. 이 쟁점은 류호정 논란과도 이어진다. 누구와 어떻게 정치연합, 선거연합을 추구할지에 대한 이견이 류호정 논란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의당의 당론은 “진보4당과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하는 선거연합신당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파트너가 되는 세력들과의 협의 등을 통해 ‘합의된 선거연합신당 추진안’을 대의원대회와 당원총투표를 통해 확정하는 게 로드맵이다. 녹색당과 해야 한다, 진보4당과 해야 한다, 독자 돌파해야 한다, 새로운선택과 해야 한다는 등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당원여론조사’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선택 제외/ 녹색당과만 하는 방안 제외/ 진보4당과의 선거연합신당 추진’이라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추진 중이다.

    이런 당의 정치적 추진 방향에 대해 당원이기에 존중하고 따른다. 다만 나는 두 가지 이견과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의 단계에서 이런 이견을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는 게 해당 행위 혹은 당론을 위배하는 행위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두 가지의 이견이다.

    첫째, 선거연합신당을 제대로 하려면 나는 혹여 단기적으로 끝나더라도 즉 선거 이후 이혼·분리의 과정을 밟을지라도 ‘합당 혹은 통합’(법적으로는 신설합당)의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하는 변칙적 행보에 대해서 처음부터 비관적이었다. 예를 들어 녹색당은 따로 있고 녹색당의 일부가 정의당에 입당하여 상위 순번의 비례대표 후보가 되고 지역구 후보도 같이 낸다는 것은 결국 유권자 기망이다. 합당은 그 자체가 국민들에게 합당의 이유와 공동의 정책, 선거공약을 제시하는 프로세스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일부의 입당-출당 방식의 선거연합은 김준우 비대위원장이 “정의당의 1, 2번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국민들 눈높이에서는 “권력 혹은 지분 나눠먹기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나눠먹기의 방정식이 녹색당 하나가 아니고 노동당 진보당 등 더 많은 세력과의 관계에서는 당연히 더 복잡해진다. 복잡하면 논란과 부작용을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법률적으로는 ‘합당’이지만 당의 실질적 운영과 조직구성은 연합, 연방제 방식으로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통합력이 강화되고 축적이 되면 실질적인 통합정당으로 변모해가면 된다. 법률 규정이 다르지만 외국의 의미 있는 연합정당도 이러한 과정을 밟은 경우가 많다. 플랫폼 정당이라는 건 쉽게 말하면 하나의 모(母)당에 들어오면 비례대표 후보 등 혜택을 나눠주고 선거가 끝나면 나간다는 의미이다. 정당법 44조 1항 2호는 4년간 지방선거나 총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 정당의 경우 등록 취소된다고 규정한다. 즉 녹색당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플랫폼을 통해 비례-지역구 후보를 내더라도 다음 선거에서는 녹색당 이름으로 후보를 내지 않으면 등록 취소된다는 의미이다. 플랫폼 방식의 선거연합을 통해서는 통합력이 강화될 수 없는 이유이다.

    둘째, 진보4당이라는 프레임은 십여년 전 민주노총이 규정한 것이다. 진보4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민주노총과의 관계에서 수동적 굴종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근거지이지만, 그게 정의당 등 사회운동 진보운동을 규정하는 절대정신이 당연히 될 수 없고 그 프레임에 갇힐 필요도 없다.

    선거연합의 대상에 대해 민주노총이 금을 그어 놓은 진보4당을 벗어나는 건 반동이고 기회주의이고 반진보라는 규정에도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그런 프레임에 갇혀 있으니, 당원여론조사라는 퍼포먼스 항목에서 노동당 녹색당 진보당과 함께 새로운선택을 넣었다가, 여론조사 이후에는 사실상 거절했다는 이유로 선거연합 추진과 협의 대상에서 삭제하는 거다. 여론조사 항목에 넣는 건 동의 받고 넣은 것도 아니면서. 살아온 궤적이 다르고 새로운선택은 보수정치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의아하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진보당은 정의당을 두고 검찰독재에 부역한 정당이라고 하지 않았나. ㅇㅇ도 △△도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 등이 규정한 진보4당만이 진보정당이고 이 외의 정당은 진보를 참칭(^^)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오만하고 광오한 발상이라는 걸 제기하는 것이다.

    질문은 두 가지이다.

    하나, 정의당은 선거연합신당을 추진하면서 정의당 외부의 ‘임시가설정당’ 창당 방식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진보당은 이미 반(半)공식적으로 정의당의 선거연합신당 제안을 거부했고, 공식적으로는 민주노총이 주장해왔던 진보4당의 임시가설정당 방식 선거연합정당 창당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접점 자체가 불가능한 명백한 거부 의사 아닌가? 임시가설정당 방식도 선거연합 방식 중에서 협의 가능한 것으로 열어두고 있는 것인가?

    둘, 진보당이 거부한다면 녹색당 등 합의하는 세력과만 선거연합신당을 추진하는 것인가? 아니면 4당이 아니면 3당, 3당이 아니면 2당만의 신당 추진은 원래의 진보4당 대상의 선거연합신당이 아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가서 정의당 독자 완주의 노선으로 가는 것인가?

    그래서 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 3당이 추진한다는 ‘개혁연합신당’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도 나름 궁금하다. 정의당의 플랫폼 연합 추진과 비교가 되기에. 당연히 이들도 연합신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가능한 길은 세 가지밖에 없다. 신설합당 방식으로 3당이 하나의 선거연합신당을 창당하는 방식, 정의당처럼 기본소득당 등 하나를 찍어서 그곳을 플랫폼으로 하여 입당-출당하는 방식의 연합정당, 셋째는 정의당이 원천배제했던 3당 바깥에 임시가설정당을 만드는 방식…이들은 또 어떻게 합종연횡과 연합을 진행시킬지 궁금할 뿐이다.

    어떤 이와의 짧지만 여운이 남는 대화

    이번 총선에서 나올 수 있는 주요 정당의 숫자는 최대로 치면 8개 정도이다. 민주당/ 이낙연신당(비명계 결합)/ 기소당-열우당-사민당 블록/ 정의당/ 진보당/ 새로운선택/ 이준석신당/ 국민의힘. 여기서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이 어떻게 합종연횡할지 모르지만 일정한 규모가 된다고 봤을 때 또는 신당 추진하다가 회군할 수도 있다고 봤을 때 유효한 신생정당-소수정당은 기소당 블록, 정의당, 진보당, 새로운선택의 4개 정당 정도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두어 달은 이러저런 변수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기에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적응하고 대응하는 시간의 영역이 될 것이다. 상상력의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어떤 대화를 소개한다.

    “이 4개 중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게 ‘진보당’과 ‘새로운선택’이다. 진보당은 정의당 안을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받고 민주당과 무언가의 정치적 딜을 하기에는 민주당이 곁을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새로운선택은 신생당으로서의 인지도가 너무 약하고 이준석이나 이낙연 등의 흐름과 분리되었을 때는 독자로 버티기에는 아직 취약하고 정당으로 성장 발전하기에 시간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선거연합신당이 어떤 모양새가 되더라도 최소한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다. 기본소득당 블록은 민주당 의존적 전략에 의해 너무 변동성이 크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 같다. 내가 보기에 가장 어려운 처지는 ‘정의당’과 ‘새로운선택’이다. 새로운선택이야 당연히 어려운 처지이고 시간도 부족하고, 또 언급한 8개의 정당 중 원외정당으로 시작하는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정치적 위치가 위태롭다는 걸 모르는 건 위험하다. 정의당의 과거 포지션, 즉 친민주당 유권자들의 비례대표 투표에 상당 부분 의지했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그 정치적 포지션은 기본소득당 등 3당 블록이 차지할 것이다. 이미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용혜인을 치켜세우고 정의당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건 이미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정의당이 반민주당도 아니기에 그쪽에서 지지기반을 찾기도 어렵다. 진보당은 오랜 원외정당을 버텨왔고 자신들만의 조직력과 정치력으로 최악도 버텨내지만 정의당은 절대 못한다. 진보당은 민주당과의 직거래 또는 기본소득당 블록에의 참여, 또는 민주노총을 배경을 한 독자 플레이를 할 세력이다. 즉 친민주당-반국힘의 공간을 두고 기본소득당-정의당-진보당은 레드오션에서 경쟁할 것이고, 새로운선택이 이 3당과 구분되어 반민주당-비(반) 국힘의 공간을 어떻게 유능하게 확보할 것인지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정의당은 독자적으로 진보정치의 길을 가야만 한다. 다 무너지고 우회하더라도 정의당은 원칙적인 진보의 길을 가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비록 최악의 상황에서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더라도 그 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의지로 객관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정의당의 강점은 원내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 중 가장 중요한 세력이라는 점이다. 조직력, 이념성, 리더십 등에서 약점이 있더라도 원내에 일정한 고정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원외로 전락하더라도’라는 말은 의지를 강조하려는 건 알겠는데, 객관적으로 말하면 원외로 밀리면 정의당은 와해 가능성이 높다. 진보당과 다른 결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최소한 원내 정치세력으로 살아남고 확장할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 정의당 전략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헷갈린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부터 엇나간 것일까

    소설 <태백산맥>에는 없고 영화 <태백산맥>에는 있는 구절이 있다. 염상진과 김범우가 대면했을 때 피곤에 절고 피폐해진 염상진이 혼잣말처럼 말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장 치열했던 이의 독백이기에 더 무너지고 아득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의 시야를 과거와 미래 모두 조금 더 넓고 멀리 살피는 게 필요하다. 위기는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누적되었던 것이 밀고 온다. 그래서 위기의 해법 또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처방과 중장기적 해법을 함께 실천하고 그것을 축적할 때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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