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걷는 친구가 있나요?
    [그림책] 『걷는 사이』 (에바 린드스트룀 글그림. 신동규 역/ 위고)
        2023년 11월 14일 01: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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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사람과 무엇을 할까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과 무엇을 하고 싶나요?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요? 함께 영화를 보러 갈까요? 함께 산에 가는 건 어떤가요? 온천 여행은 어떨까요?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 분도 있을 거예요! 함께 책방에 가는 분도 있겠지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카페도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몸이 불편하다면 어떡하지요?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거든요. 바로 할머니 생전에 할머니를 모시고 산책조차 제대로 함께 다닌 기억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할머니는 너무 빨리 등이 굽고 거동이 불편해서 너무 일찍부터 집에만 계셨어요. 할머니는 언제나 집밥이 최고라며 외식도 마다하시고, 몸이 불편하시니 밖에 나가기도 귀찮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할머니랑 동네 마실이라도 다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할머니는 얼마나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을까요?

    나는 무세가 좋아요!

    무세는 개입니다. 그리고 나는 무세를 좋아합니다. 나는 미리 무세랑 나가 놀 준비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물어봅니다.

    “무세랑 나가 놀아도 돼요?”

    언제나 그래도 된다고 하니까요.

    나와 무세는 아주 천천히 걸어갑니다. 무세가 느릿느릿 걷기 때문입니다. 무세는 기둥이나 가로수나 울타리를 만나면 멈춰 섭니다. 한참 동안 냄새를 맡습니다. 가끔 무세가 나를 쳐다봅니다. 나는 다정한 목소리로 무세를 부릅니다.

    “꼬맹이 아저씨!”

    무세는 늙고 뚱뚱한 개입니다. 귀는 팬케이크처럼 얇고 넓습니다. 걸을 때는 꼭 꼬리를 흔들며 걸어갑니다. 무세는 나랑 있는 게 좋은가 봅니다. 나도 무세랑 있는 게 좋습니다.

    이웃집 개 무세

    어쩔 수 없이, 미리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흔히 스포라고 하지요. 놀랍게도 무세는 주인공 소녀의 개가 아닙니다. 이웃집 개입니다. 주인공 소녀는 무세가 자기 개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우리가 정말 소유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모든 물건을 모두 두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처음 올 때처럼 말이지요.

    하물며 생명은 어떨까요? 우리가 생명이 있는 누군가를 소유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모든 생명체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좋아하는 존재를 자기 거라고 착각합니다. 배우자도, 아이도, 집도, 차도 모두 자기 거라고 생각하지요. 안타깝지만 소유 의식은 완전한 착각입니다. 내 밖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도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과연 주인공 소녀가 무세를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요? 옆집에 살아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같이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는데도요? 소녀와 무세에게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고 있다는 증명서라도 필요한 걸까요?

    함께 걷는 친구가 있나요?

    오늘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산책했나요? 저는 보통 강연 때문에 집에 잘 없습니다. 하지만 별일 없이 서울에 있는 날이면, 짝꿍이랑 점심을 먹고 산책합니다. 물론 제가 먼저 걷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걷는 게 두렵거든요.

    저는 사십대 중반에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찰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혈압약과 고지혈 약을 처방받아 먹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니 걷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다이어트도 하고 8체질에 따라 체질식도 합니다. 다행히 조금씩 몸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걷는 건 두렵습니다.

    고맙게도 짝꿍은 저를 기다려 줍니다. 늙고 뚱뚱하고 느릿느릿 걷는 저를 기다려 줍니다. 때로는 너무 숨이 차서 제가 멈춰 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짝꿍은 그림책 『걷는 사이』의 주인공처럼 가만히 서서 저를 기다려 줍니다.

    경의선 숲길 공덕역에서 대흥역까지가 우리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작고 늙고 통통한 사람이 크고 아름답고 친절한 사람과 손을 잡고 산책하는 걸 보신다면, 이루리와 짝꿍일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이루리가 다이어트 중이라 많은 변신이 기대되긴 합니다.

    걷는 사이

    그림책 『걷는 사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서로의 속도와 취향을 존중하면서 함께 자연을 만끽하고, 함께 쉬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평화롭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도전을 하든, 우리 삶의 최종 목표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는 것임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이념도, 어떤 종교도, 어떤 철학도, 어떤 경제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소녀와 무세처럼, 오늘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기를 소망합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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