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당업자' 국가계약 입찰 제한 등
    부처 미협조, 법원 가처분 판결로 무력화
        2023년 10월 27일 08:5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산업재해로 인해 동시에 2인 이상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부정당업자로 지정해 국가계약 입찰 등을 제한하는 현행 국가계약법이 부처 간 협조 미흡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6일 종합감사에서 국가 계약 이행 중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보건 조치 규정 위반으로 동시에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경우 부정당업자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현행 국가계약법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해당 법령에 의거해 부정당업자로 지정한 조치가 1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지난 2021년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었다. 장혜영 의원은 당시 공공부문 산업재해 사망자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조달청에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당부한 바 있다. 이에 당시 조달청장인 김정우 청장은 관계 부처와의 업무 협조로 해당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올해 국감에서 확인한 결과, 해당 조항에 따른 부정당업자 지정은 전무했다. 조달청이 노동부에 공공부문에서의 동시 2인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정보를 요청했으나, 노동부가 ‘발주기관을 파악할 수 없고 각 중앙관서가 발주한 계약 이행 과정에서 산재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각 중앙관서에서 당연히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불완전한 자료를 회신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장 의원은 “고용노동부와 조달청이 업무를 서로 떠넘긴 2년 동안 응당 부정당업자로 지정됐어야 할 업체들이 계속 국가 계약을 수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공 계약 과정에서 부정당업자 요건이 발생했을 경우 전 부처와 상황 공유를 할 수 있도록 조달청이 적극적으로 업무 요청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전 부처 업무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윤상 조달청장은 국가계약 과정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 사고 업체의 국가계약 입찰 등을 막기 위해 전 부처와의 협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장 의원은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동시 2인’이어야 국가계약 입찰에 제한을 두는 현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1인 이상 사망’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서도 추 장관은 “규제 제재 강화 측면과 기업 부담 측면 모두를 조화롭게 검토하겠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불법, 허위, 부실 계약 등의 사유에 따른 조달청의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이 법원을 통해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가계약에 참여하는 업체가 조달청에 의해 부정당업자로 지정되면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받게 된다. 그러나 이 업체가 법원에 낸 제재 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이 인용되면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선 계약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 방법을 활용해 부정당업자로 지정되고도 계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위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달청에서 제출받아 이날 배포한 ‘부정당업자 제재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률’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가처분 신청 건수 35건 중 34건이 인용돼 인용률이 97.1%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당업자로 지정된 업체 97%가 법원에 제재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관급 계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재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인용 판결을 받으면,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계속해서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부정당업자가 대기업인 경우는 2020년부터 계속 100% 인용, 중견기업인 경우에도 2022 년부터 100% 인용 결과가 나오고 있다.

    최근엔 부정당업자로 지정된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A업체는 부실시공을 하다가 조달청으로부터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8개월간 관급공사 참여를 제한하는 처분을 받았다. 이 업체는 제재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인용 판결을 받아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관급공사에 참여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월과 7월에 각각 1명씩, 2명이 사망하는 인명사고가 벌어졌다.

    조달청의 제재 처분이 법원의 가처분 인용 판결로 무력화되면서 인명사고까지 발생한 셈이다. 이에 조달청은 지난 10월 법원의 집행정지 가처분신청 인용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취소신청을 냈다.

    이수진 의원은 “부정당업자가 국가와의 계약에 부정·담합 등 위법한 행위를 하고도 제재를 받지 않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 간다”며 “부정당업자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을 때 판결이 나오기 전에 적극적으로 의견제출을 하고, 인용 판결이 나더라도 바로 집행정지 취소 신청을 해서 제재가 무력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