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금지됐던 범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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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27일 05: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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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없어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일단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며, 이를 보복하기 위해 회장 경호원들이 회장 아들에게 폭행을 가한 자들이 있는 서울 북창동 술집으로 가서 보복폭행을 했다는 것인데, 그 양태가 자못 심각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전언이다.

   
  ▲ 한화 김승연 회장 (사진=YTN)
 

또한 그 자리에 김 회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달 8일에 일어난 이 사건은 두 달이 다 돼서 언론에 보도되었고, 경찰은 이제야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행사건이야 매년 무수하게 일어난다. 술을 먹고 사람들 간에 시비가 붙는 일 또한 다반사이며, 남자들 중에 이런 경험 한 두 번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경미하다면 파출소에서 화해되는 경우도 있고, 화해가 안 되면 쌍방이 벌금을 내기도 한다.

상대방이 많이 다쳤거나, 다수가 한명을 폭행하거나, 폭력조직이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병을 깨는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한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여 구속되어 중하게 처벌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법에 의해서 해결해야지 자신이 나서서 완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민혁명의 결과 생긴 근대국가 권력은 사적인 형벌이나 복수를 엄격히 금지시켰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세워 법에 의하여 구제 받을 수 있는 절차를 확립시켰다.

아니 근대사회로 갈 것도 없이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사적 복수는 엄격히 금지되었고, 이례적으로 부모가 폭행당하는 현장에서 분개하여 상대방을 살해하거나 간통현장에서 상대방을 살해한 경우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따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정도였다.

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등극한 포악한 인물이었던 이방원이 왕권을 다질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자기들의 수족과 다름없는 측근들의 사병을 혁파한데에 있다. 그 사병들은 왕권에게도 위협이 되었지만, 백성들 또한 얼마나 못살게 굴었겠는가. 사실 사병이라는 것이 권력과 결탁된 조직폭력배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재벌회장이 관련된 보복폭행 의혹과 경찰의 늑장수사는 한국이 근대가 아닌 전근대, 아니 심하게 말하면 조선시대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회장은 자신의 사병을 거느리고 와서 자신의 법을 집행했으니 고려와 조선시대에 초법적 지위로 군림했던 권문세가나 세도가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아무리 북창동이 대표적 유흥가라고 하지만 백주대로에 무법천지의 상황이 횡행하는데도 두 달 가까이 침묵을 지켰던 수사기관은 조선을 망하게 하여 일제의 손아귀에 권력을 쥐어준 탐관오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국가는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라고 통렬하게 비판했지만, 그래도 마르크스가 거명한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입장에서 일을 한다는 나름대로의 ‘계급적 합리성’(?)이 전제되어 있는 말이다.

한국의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입장에서 일하기는커녕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권문세족(재벌)을 위해 일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하물며 이들이 돈 없고 빽 없는 인민들을 위해 일하겠는가.

경찰, 검찰의 수사를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모습만으로도 한국은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근대적 법치국가가 아니라 봉건영주가 자신의 사병으로 실력행사하며 통치하는 전근대적 봉건국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까지 발효되면, ‘노란머리의 영주’까지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어쩌면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대선공약에서 ‘사병혁파’ 공약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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