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뉴스타파'를
    압수 수색한 진짜 이유는?
    [기고]가짜 인터뷰 논란과 뉴스타파
        2023년 10월 04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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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김만배와 신학림이 등장하는 대장동 사건 녹취파일을 ‘희대의 대선 공작 사건’으로 그 성격을 규정했다. 이른바 대선판을 뒤흔들고자 기획한 가짜 인터뷰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대장동 몸통 김만배와 전국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신학림 사이에 1억 6천 5백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거래가 오간 것은 부정한 청탁이자 허위 인터뷰의 강력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선거 나흘 전 인터뷰 녹취파일을 보도한 것은 오로지 윤석열 대선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기획된 가짜 뉴스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를 두고 김기현 당 대표는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쿠데타 기도로서 극형에 처해야 할 악질 범죄”라고 역설했다. 나아가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는 “치밀하게 계획된 1급 살인죄”라는 극한 표현을 쏟아냈다.

    『뉴스타파』는 9월 5일 즉각 반응했다. 김만배와 언론인 신학림 사이에 비록 책값이라지만 거액의 돈거래가 오간 것은 언론 윤리를 저버린 부적절한 행위였음을 공식 사과했다. 그리고 보도 경위를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즉시 구성해 조사 과정과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어서 대선판을 뒤흔들고자 기획한 허위 보도라는 국민의힘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만배-신학림 음성 파일 72분 분량 전체를 공개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 간 대화는 대선 6개월 전인 2021년 9월 15일에 있었던 대화였다. 그날은 대장동 사건이 막 시작된 시점이다. 당시엔 윤석열, 박영수는 물론, 대장동 몸통 김만배조차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다. 다시 말해 김만배-신학림 대화 파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50일 전에 이뤄진 녹취였다. 따라서 윤석열 특정 후보를 겨냥한 대선 공작 인터뷰라는 국민의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20대 대선을 6일 앞둔 9월 4일 신학림에게 녹취파일을 건네받고 『뉴스타파』가 검증과 고민 끝에 이틀 후 녹취파일을 공개한 것은 탐사 언론매체 본연의 역할이었음을 밝혔다. 진실과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매체의 당연한 모습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녹취파일을 건네받을 당시 『뉴스타파』는 김만배와 신학림 간 돈거래 사실을 몰랐다. 신학림은 언론노조 위원장을 그만둔 2008년부터 10년 동안 3,000-4,000권에 이르는 수많은 자료와 전기, 평전을 섭렵해 대한민국 지배층의 재벌-정치권-언론계 가계 혼맥도를 세밀히 분석했다. 총 세 권으로 완성했는데 신학림은 완성 초기부터 책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다고 한다. 대한민국 권력 지형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에 평소에 한 권 당 5천만 원 값어치가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값진 수고의 결정체라 해도 언론인이 이해관계에 놓인 취재원과 돈거래 한 사실은 명백히 언론 윤리를 저버린 행위이다. 더구나 김만배는 대장동 실체를 알고 있는 몸통인 만큼, 신학림의 처신은 취재원을 대하는 윤리에 어긋난 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함에도 국민의힘 주장처럼 녹취파일 배후에 더불어민주당이 있는 것처럼 표현하거나 『뉴스타파』를 “1급 살인죄”로 “폐간”을 운위하는 모습은 다분히 정치공세 그 자체다.

    뉴스타파 현관 앞

    『뉴스타파』는 이명박 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맞서 언론 정의를 위해 싸우다 해직된 기자, PD를 중심으로 2012년 출범했다. 언론인의 본보기가 된 고 리영희 선생의 ‘진실’ 추구 정신을 계승한 탐사 전문 매체이다. 2019년 네 번째로 둥지를 튼 충무로 『뉴스타파 함께 센터』 지하 1층엔 객석 60석 규모의 「리영희 홀」이 있다. 이는 마치 1988년 출범한 국민 주주신문 『한겨레』를 연상하게 한다. 『한겨레』 신문 창간 주체 역시 7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에 항거하다 쫓겨난 동아일보,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이다.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 사옥엔 「청암홀」이 존재한다. 1975년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다 해직된 동아일보 편집국장 청암 송건호 선생의 정신을 기념해 마련한 공간이다.

    리영희홀과 청암홀 모습

    놀라운 사실은 탐사 전문 저널 『뉴스타파』는 일체 광고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경영상 적자가 발생하면 존속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이 언론도 소비되는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좀 더 자극적이고 선정성 짙은 문구와 기사, 그리고 제목들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그런 세태와 달리, 『뉴스타파』는 수익을 창출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직 후원회원들의 십시일반 소액 후원에 의존하며 언론의 사명인 ‘진실’을 추구하고자 애쓴다. 그 길이 대한민국 사회 전체 공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YTN 해직 언론인 노종면 앵커가 『뉴스타파』 첫 방송을 시작했다. 프레스센터 18층 언론 노조 회의실을 빌려 첫 방송을 시작하며 더부살이를 한 것은 낡고 부족한 장비와 함께 방송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열악한 사정이 세상에 알려지자 2012년 말 25,000명에 이르는 후원자가 등장하면서 일부 어려움이 해소됐다. 비록 열악한 시설과 공간이지만 『뉴스타파』는 2013년 마포구 창전동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갖추게 된다.

    『뉴스타파』는 퓰리처상도 공동 수상한 뛰어난 탐사 전문 저널이다. 2012년 출범 직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 삼성 백혈병 문제, 4대강 문제, 그리고 민간인 사찰 문제를 취재해 보도했다. 2013년엔 전두환 장남 전재국이 해외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와 비밀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폭로했다. 국정원 댓글 공작을 통한 대선 개입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도 최초로 폭로했다. 2014년엔 세월호 참사를 심층 취재해 다큐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를 제작, 보도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물대포 현장을 단독으로 포착해 보도했다. 그리고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 담당 검사 이시원 검사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후 친일파 문제와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사진 자료와 민간인 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나아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 재벌 이건희 회장 성매매 사건도 보도했다. 그밖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의 경우, 해외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사실도 심층 취재해 보도했다.

    특히 30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이 사용한 입법·정책개발비 집행 내역을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통해 취합함으로써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나아가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이 언론인 134명과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과 조선, 동아 거대 족벌신문의 일제강점기 보도 실체를 규명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대통령 측근인 윤대진 검사장의 친형 윤우진 전 용산 세무서장이 구속되는 계기인 변호사법 위반 의혹을 최초 보도한 것도 『뉴스타파』였다. 게다가 『뉴스타파』는 윤석열 정권에서 양평 고속도로 종점을 기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한 문제를 심층 취재했다. 취재 결과, 강상면을 포함한 김건희 일가 양평군 땅 감정평가액이 125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도 전문가 취재를 통해 밝혀냈다.

    무엇보다 『뉴스타파』는 「세금도둑 잡아라」, 『경남도민일보』 등 3개 시민단체와 5개 언론매체와 연대하고 협업해 검찰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했다. 그리고 검찰이 먹칠로 가려서 공개한 영수증 사용 내역을 일부 밝혀내 검찰 특수활동비 사용이 목적 외 부정 사용이자 예산 오남용임을 밝혀냈다. 지난 9월 14일 검찰은 『뉴스타파』를 전격 압수 수색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은 『뉴스타파』가 검찰 특수활동비에 대한 기자회견이 예정된 날이었다. 기밀비 성격인 특수활동비를 검사실 공기청정기 렌탈비로 쓰거나, 휴대폰 비용으로 지급한 흔적도 밝혀냈다. 심지어 국정감사에 잘 대응한 검사를 우수검사 격려금으로 지급한 사례도 폭로했다. 『뉴스타파』 보도가 나가자 대검찰청은 특수활동비를 부정 사용한 65만 8,400원에 대해 국고로 환수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일부 시인한 내용이지만 검찰에게 『뉴스타파』는 눈엣가시였다.

    검찰 특활비 내역 검증 기자회견

    검찰 압수 수색 일주일 후, 9월 21일 『뉴스타파』는 회원을 초청해 시사회를 열었다. 영상물을 보는 동안 검찰이 압수 수색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사회 마지막 순간에 나이 지긋한 여성이 『뉴스타파』를 지지하며 지금처럼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격려했다. 자신이 70년대 동아일보 백지 광고에 참여하고 80년대 한겨레 창간 주주로 참여했듯이 오늘날 『뉴스타파』를 지켜주고 싶다고 응원했다. 오직 4만 회원의 소액 후원으로 버티며 진실을 알리는 『뉴스타파』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학교시민교육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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