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자기 한 장의 마법
    [그림책] 『보자기 한 장』(정하섭 글. 정인성 천복주 그림/우주나무)
        2023년 10월 04일 09:4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 시인과는 달리, 저는 부끄러워서 하늘을 우러러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살아남으려고 비굴하게 살았으며, 오만함에 갇혀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도 했고, 잘 모르면서 남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봉사와 자선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마흔 전까지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살았고, 마흔 이후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삶의 무게는 여전히 힘겹지만, 좋아하는 일이 삶이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뭔가 아쉽고 허전했습니다. 오늘 그림책을 보니,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와 보자기 한 장

    평생 옷감을 만들며 살아온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솜씨가 좋아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감사할 일이 많았습니다. 옷감 짜는 일로 인정을 받았고, 아내를 만나 세 아이를 키웠습니다. 큰 어려움 없이 평생을 살았으니 행운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남에게 충분히 베풀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할아버지는 보자기를 한 장 만들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색깔과 무늬가 달라 보이는 신비한 보자기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정성과 사랑과 바람을 보자기에 불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날아가라, 보자기야!”

    보자기의 여행

    보자기가 처음 도착한 곳은 어느 시골집 마당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할머니와 하얀 강아지가 함께 살고 있었지요. 할머니는 마침 딸네 집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보자기에 찹쌀, 참기름, 콩,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단감을 담았습니다.

    할머니는 보자기에 먹거리를 담아 도시에 사는 딸네 집에 갔습니다. 딸이 반갑게 할머니를 맞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보자기를 풀고 딸에게 가져온 음식을 하나하나 알려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딸과 함께 맛있는 저녁 밥을 먹었습니다. 마치 보자기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오늘은 유난히 행복했습니다. 이제 보자기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보자기 한 장의 마법

    할아버지가 만든 보자기는 살아 움직이는 보자기입니다. 그냥 살아 움직이는 보자기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보자기입니다. 보자기는 외롭고 힘들고 지치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전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보자기는 정말 단 한 장뿐일까요? 정말 할아버지는 보자기를 한 장만 만들었을까요?

    어쩌면 할아버지는 이미 수많은 보자기를 만드셨을 겁니다. 평생 정성으로 옷감을 만들어서 옷감으로 사랑을 전했으니까요. 할아버지가 만든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이며, 가방이며, 목도리에도 할아버지의 마법이 깃들어 있을 겁니다. 할아버지가 만든 옷감은 이미 많은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보자기 한 장은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든 사랑의 옷감입니다.

    책상형 인간

    제가 어릴 때부터 체육가였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해서 체육 성적이 언제나 ‘가’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른이 되어 저는 봉사도 책상에 앉아서 했습니다. 텔레비전에 봉사단체의 광고를 보면 눈물짓다가 회원가입을 하고 자동이체를 신청했습니다. 작은 후원금을 내는 것이 제가 하는 봉사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는 게 부끄럽습니다.

    다행히 저는 평생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에는 하루에 한두 번씩은 강연을 하며 전국을 다녔습니다. 지난 주만 해도 인제-서울-정선-서울-영광-서울-광양-서울-인천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글과 제가 하는 강연이, 할아버지가 만든 보자기처럼 사랑의 마법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자기 한 장이 세상을 바꾸듯이

    할아버지가 만든 보자기 한 장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가족을 구원하듯이, 우리는 모두 지금 우리가 하는 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동을 만드는 사람은 우동으로, 양복을 만드는 사람은 양복으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커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동과 양복과 커피에 사랑과 정성과 꿈을 불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할아버지가 보자기에 사랑과 정성과 꿈을 불어넣은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림책을 만들고 그림책 강연을 합니다. 저는 그림책으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제가 만드는 그림책과 강연에 더 많은 정성과 사랑과 꿈을 불어넣겠습니다. 그리고 책상에서 벗어나 더 많이 움직이고 실천하겠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내일은 하늘을 우러러 조금 덜 부끄럽기를 기도합니다.

    *<그림책 이야기>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