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콩강의 맹그로브, ‘크라이’의 위기
    [에정칼럼] 메콩/아세안환경위크라는 희망의 공간
        2023년 10월 04일 09:3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올해도 어김없이 태국 방콕에서는 ‘메콩/아세안환경위크(Mekong-ASEAN Environmental Week, MAEW)’가 열렸다. 2019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동남아시아 지역 내 투자와 개발프로젝트로 인한 인권침해, 환경문제, 사회적 영향를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라 할 수 있다.

    개발사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주민은 물론, 동남아시아 역내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학자, 언론인 등 다양한 그룹이 참여하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세안 통합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현장의 소외된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메콩/아세안환경위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역시나 댐 개발이었다. 티베트 고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미얀마,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을 걸쳐 흐르는 메콩강 본류 및 지류에 건설된 수많은 댐은 물론, 필리핀에서도 진행 중인 선주민들의 댐 반대운동을 세미나뿐만 아니라 시와 그림, 사진,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더 생생하고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2023년 메콩/아세안환경위크의 포스터.

    메콩강의 맹그로브, ‘크라이’가 보여주는 메콩의 위기

    이 중에서도 <크라이에게(Dear Khrai, From Nowhere)>라는 15분 길이의 다큐멘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댐 건설로 인해 사라져가는 ‘크라이’라는 나무, 그리고 메콩강과 함께 살아온 그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이 다큐멘터리의 배경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라오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태국 동북부 지방에 위치한 넝카이주의 반무앙이라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천 개의 바위, 십만 개의 크라이(판콧 쌘크라이)’라 불리는 명소가 있는데, 말 그대로 수많은 바위와 크라이나무가 작은 섬들을 이룬 것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크라이라 불리는 메콩강 한 가운데 살고 있는 이 나무는 강의 수위가 낮아지는 건기에 잎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으며, 강의 수위가 높아지는 우기에는 잎을 떨구고 물 아래에서 살아가는 굉장히 독특한 생존방식을 보여주는 나무이다. 메콩강의 물고기들은 크라이의 꽃과 열매, 그리고 뿌리를 먹으며 살아왔고, 수위가 낮아진 건기에 이 나무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강둑이 무너지지 않게 땅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왔다. 메콩강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과 사람들의 삶에 행복과 풍요로움, 생태계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이렇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 물속에서도 오랫동안 생존을 해내는 이 나무를 사람들은 ‘메콩강의 여왕’이라고 불러왔다.

    9월 24일 메콩/아세안환경위크에서 상영된 <크라이에게> 다큐멘터리

    ‘크라이’가 사라진 이유, 메콩강 상류 댐건설의 영향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메콩강의 여왕, 크라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이미 80%가 사라졌다. 강물 안에서도 수개월을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크라이가 이렇게나 많이 죽었다는 것은 메콩강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경고한다. 크라이가 사라진 이유는 기후변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메콩강 상류에 지어진 수력발전댐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메콩강 상류에 11개의 댐이 운영되고 있으며 메콩강 하류에도 9개의 댐 건설이 계획 중이다. 크라이가 사라진 이유는 바로 수위가 낮아져야할 건기에 상류에 건설된 댐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크라이가 강물에 잠겨있는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졌기 때문이다. 강물 안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나무라고 해도 생장을 해야 하는 건기에까지 물에 잠겨버리는 바람에 크라이는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9년 11월 기준 메콩강 본류에 건설되거나 건설 예정 중인 댐 현황(출처: https://www.stimson.org/2020/mekong-mainstream-dams/)

    *<크라이에게>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된 반무앙의 ‘천 개의 바위, 십만 개의 크라이(판콧 쌘크라이)’ 명소는 위 지도에서 Pak Chom댐(건설 예정)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크라이의 죽음은 단지 경관의 변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크라이와 함께 공존해온 메콩 생태계와 지역사회에도 그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댐 찬성론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오히려 물이 부족한 건기에 수량이 많아지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생태계의 복잡한 연결망과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은 ‘만약 당신이 크라이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주민이자 활동가인 한 분은 조금 쑥스러워하시며 ‘저는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하고 싶어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요.’ 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메콩강의 여왕’ 크라이가 버텨주는 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댐의 수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이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용도로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는 것은 투자자와 정부, 전력회사에게는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댐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 것이다. 크라이가 사라지고 있는 메콩강의 위기를 알리는 캠페인을 지속하면서, 불필요한 댐 건설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각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전력수급계획과 에너지전환 논의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메콩지역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13일 태국전력공사는 라오스정부와 빡뱅(Pak Bang, 912MW), 빡레이(Pak Lay, 770MW),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1460MW)댐에 대한 전력구매계약을 완료하였다.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메콩의 위기도 동시에 연장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메콩/아세안환경위크는 희망과 가능성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 중심으로 진행되는 아세안의 통합과 개발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동시에 지역주민과 활동가, 학자, 예술가 등을 연결하여 계속 싸워나갈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라이브로도 동시에 진행된 이번 행사는 유튜브 채널에도 영어동시통역과 함께 업로드되어 있다. 메콩/아세안의 환경,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듣고 싶으신 분들은 꼭 방문해보시길 바란다.

    페이스북 링크 / 유튜브 링크

    *<에정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태국 탐마삿대학교 사회정책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