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얄타체제' 해체의 의미
    [책소개] 『연결된 위기』 (백승욱(지은이)/ 생각의힘)
        2023년 09월 23일 06: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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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국제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냉정하고 분석적인 시도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세계는 크게 동요했다. 그에 앞선 11월 현대중국학회에서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동시에 중국이 대만의 일부 섬을 점령하고자 나선다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상상하는 이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이때 백승욱 교수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통치 변화 그리고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이 반영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 모든 위기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역사의 재해석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바로 보고, 국제정세 동요기에 한국의 현주소를 살피는 작업을 엄중하고도 찬찬하게 완수해낸 《연결된 위기》다.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와 마냥 무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뿐 아니라 중국의 대만 점령, 나아가 한반도 핵위기와 연결될 수 있다면? 심지어 한국 사회가 위기의 핵심 장소로 바뀔 수 있다면? 자칫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전, 1차 세계대전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저자는 여러 물음을 던지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세계를 매섭게 파헤친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이것이 동아시아에 가져올 충격 그리고 한국 사회에 도래할 수 있는 심각한 군사적 재앙의 가능성을 분석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역사 전반을 다시금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간 갖고 있던 익숙한 정치적 태도에도 비판을 제기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요컨대 많은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새로운 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냉전이라는 오독

    시간을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로 돌려보자. 많은 이들이 이를 세계질서의 대변동으로 여기며 두려움에 떨었고, 이런저런 분석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전쟁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이 국내외에서 여러 논쟁을 낳았는데,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미국 책임론, 러시아 책임론 그리고 양비론이다. 이는 세계정세를 ‘신냉전’이라 규정하고 냉전의 선입견에 비추어 현 상황을 재단한 데 따름이다. 그러나 백승욱 교수는 지금 이 동요란 “신냉전이 아니라, 20세기 질서의 수립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는 근본적인 위기”라고 진단한다. 고정된 냉전의 틀로 상황을 바라봄은 ‘오독’이라는 것이다(35쪽).

    이어서 진정 국제정세의 새로운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신냉전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시기 ‘열전’에 대한 전쟁 억제 기제가 유럽 내에서조차 무너지고 있고, 전쟁 억제의 중요한 축이었던 러시아가 오히려 냉전 ‘이전’의 ‘열전’ 방식의 중요한 도발자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리한다.

    또한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민주주의 대 독재’처럼 세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는 신냉전 사고와 달리 향후의 구도는 냉전 시기처럼 분명한 두 개의 진영 대립으로 전개되리라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냉전’에 대한 표준적 이해에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그간 냉전체제가 발 딛고 서 있던 세계질서의 기초 틀이 해체되는 과정으로서 현 위기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44쪽).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얄타체제의 해체’라 할 수 있다.

    얄타구상과 얄타체제: 단일 세계주의와 두 세계주의

    요컨대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세계질서인 ‘얄타체제’가 무너지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 백승욱 교수의 주장이다. 얄타체제는 2차 세계대전을 종결짓는 과정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이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여 합의한 전후 질서의 기본 틀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로 대표되는 다자주의 구도를 전제로 하여 식민주의를 배격하고 독립국가의 발전주의적 길을 바탕으로 삼은 이 새로운 세계질서는 사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순한 진영 대립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냉전하에서도 지속된 세계질서였고 강대국 간 전쟁은 이 틀을 통해 규제되었다. 그렇기에 냉전의 미-소 대립보다 얄타체제의 바탕에 있던 미-소의 불가피한 ‘협력’을 먼저 이해해야 현재의 변화를 직시할 수 있다고 백승욱 교수는 말한다(12쪽).

    가령 얄타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루스벨트의 태도는 결코 적대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얄타구상’의 바탕에 있는 루스벨트의 ‘단일 세계주의’는 소련을 전후 질서 수립을 위한 적극적 파트너로 수용하는 ‘네 경찰국’(미국·소련·영국·중국)이라는 야심 찬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전후 질서의 핵심을 탈식민지체제로 상정하고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강대국 합의에 의한 전쟁 억제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고 보았던 까닭인데, 이 실현을 위해서는 소련이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 또한 식민 열망을 버리지 않는 처칠을 견제하고자 장제스 국민당의 중국을 추가해 4강 구도를 유지해야 했다.

    이렇듯 담대한 구상은 1945년 4월 루스벨트가 사망하고, 트루먼의 ‘자유세계주의’(두 세계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해 두 개의 진영을 분리하면서 구심력을 잃는다. 그러나 백승욱 교수는 현실의 얄타체제란 루스벨트의 단일 세계주의에 트루먼의 두 세계주의가 덧붙여진 혼합물이라 분석한다. 먼저 단일 세계주의의 구상을 면밀히 살피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주고받은 서신을 중심으로 살핀다. 이들은 총 304통의 서신을 주고받았고, 평면적 이해와 달리 루스벨트는 소련을 특별히 중시하기까지 했다는 점이 그가 스탈린에게 보낸 서신들에서 잘 드러난다(162쪽).

    그렇기에 루스벨트 사후 곧바로 두 세계주의로 전환된 것은 아니었으며, 상당 기간 얄타에서의 합의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1946년 들어 독일의 전후 처리를 둘러싸고 미소 간 갈등이 본격화되었고, 이어 터키와 이란 전후 통치 방식의 합의 결렬, 폴란드 정부 수립, 동유럽과 발칸 문제, 일본 점령 지배 방식의 변경, 조선반도 정세 변화, 마셜플랜을 둘러싼 갈등과 뒤이은 베를린 봉쇄, 소련의 이탈과 코민포름 수립,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등 일련의 상승 작용이 뒤따르다가 결정타가 된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냉전의 진영 대립으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단일 세계주의 구상과 여기에 힘을 보탠 소련의 시도는 19세기 자유주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동상이몽일 수 있었다고 백승욱 교수는 말한다(222쪽). 두 세계주의의 한계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 결과 미국의 우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세계질서가 만들어지며 세계가 ‘미국화’되었다. 미국의 우위가 사라지는 1960년대 말 이후 내적 한계에 봉착하면서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체제 수호가 선호되었고, 우크라이나 위기는 그 모순의 폭발점으로서 ‘우리가 당연히 여겨온 얄타체제의 세계질서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묻는 것이라고 책은 진단한다.

    중요한 도전자로 부상한 중국과 시진핑의 신시대

    백승욱 교수는 얄타구상의 특이성 그리고 이것이 얄타체제로 변형되어 정착되어 가는 냉전 수립의 과정은 이후 역사적 궤적과 관련해 규명할 중요한 질문거리를 제기한다고 강조한다(216쪽). 그중에서도 냉전은 유럽에서의 대립으로 시작하였지만, 중국 사회주의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 발발로 오히려 동아시아가 새로운 냉전의 공간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동아시아의 냉전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한 일본의 전쟁 처리 종결과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으로 훨씬 더 체계적으로 제도화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항미원조의 주체이자 미국에 대한 ‘승전국’으로서 동아시아 지정학의 중심으로 올라서며 이후 비동맹 세력의 등장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중국에 주목한다. 얄타구상이 변형된 얄타체제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국혁명의 등장과 중국이 수행한 역할의 중요성을 배제할 수 없다.

    책은 개혁개방 시기 세계질서의 일부로 성장해온 중국이 왜 이제는 세계질서와 충돌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역사적 배경을 검토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한다. 중국혁명은 얄타구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얄타구상에서 얄타체제로 바뀌는 데 중국 변수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 그리고 이 변형이 반대로 중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묻고 답하는 여정이 이어진다(233쪽). 이는 지금의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당의 전면 영도’를 내걸면서 왜 대만 문제를 통해 동아시아 지정학적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깊이 있게 아는 데 꼭 필요한 작업 과정이다.

    한편 우리는 ‘시진핑 체제’의 등장 또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진핑 체제의 핵심은 ‘혈통론 집단의 세습권력’ 형성이다. 그 자세한 특징을 살피기 위해서는 문화대혁명 시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백승욱 교수는 이 시기를 단순히 ‘공포의 홍위병 세력 대 순진한 당 관료·지식인 피해자’의 구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123쪽). 홍위병은 단일 세력이 아니라 노홍위병과 조반파로 나뉘고, 조반파는 다시 급진 조반파와 온건 조반파로 나뉜다. 노홍위병과 조반파가 초기 50일 대립한 중요한 쟁점이 바로 ‘혈통론’인데, 혈통론을 옹호한 노홍위병은 주로 고급간부 자제들로 과거 반동세력과 그 자식들을 문화혁명의 타격 대상으로 삼아 솎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반파는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오히려 관료가 되어 사회특권층을 형성해 혈통론 같은 반동사상을 전파하니, 이들을 비판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오쩌둥이 혈통론을 반동사상이라고 규정하면서 혈통론자들은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리지만 세력이 몰락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며 조반파가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난다. 그런데 잊힌 듯 보인 바로 이 역사가 시진핑 체제 수립과 더불어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127쪽). 혁명 1세대 지도자의 자제들, 요컨대 세습된 엘리트 집단이 시진핑의 등장과 더불어 거대한 2세대 통치권력을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 일인 권력’인가, 아니면 ‘집단지도체제 유지인가’ 하는 논란은 잘못 제기된 논점이라고 백승욱 교수는 꼬집는다.

    또한 이들 지도부의 역사관과 이에 기반한 대내외 정책 방향 전환에도 주목해야 하는데, 바로 여기가 대만 무력점령 위협과도 이어지는 대목이다. 제3차 역사결의는 중국 현대사를 두 개의 100년으로 구분하고 지금까지의 100년은 ‘굴욕과 분투의 100년’, 앞으로의 100년은 당이 전면 영도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정의하는데, 이때 아편전쟁으로 빼앗긴 홍콩과 청일전쟁으로 빼앗긴 대만을 수복하는 과제가 중요해진다. 이미 홍콩 문제에 대해 ‘애국자 통치’의 관점을 취하고 있기에 대만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어렵지 않은데, ‘중국몽’을 실현할 현실 구상으로서 등장한 ‘강군몽’이 이를 뒷받침한다. ‘왜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의 영도가 타당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만이 매우 긴요해진 상황인 것이다. 이렇듯 중국의 부상이 기존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도전자 국가’의 전형적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하다고 백승욱 교수는 강력히 경고한다.

    한국 사회는 “연결된 위기”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책은 총 2부로 나뉜다. 1부는 현 국제정세의 위기 성격을 검토한다. 1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2차 세계대전 종결로 형성된 얄타체제의 기본 틀을 흔들고 해체하는 계기임을 확인한다. 이에 따른 동아시아 지정학의 변화와 함께 ‘연결된 위기’의 연동과 작동을 ‘얄타체제의 해체’라는 관점에서 규명한다. 2장은 동아시아 지정학의 동요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는 중국과 대만 위기에 집중하여, 앞선 시기와 다른 시진핑 체제의 특징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과거로 눈길을 돌려, 얄타체제가 형성된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얄타체제 해체의 함의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3장에서는 해체되고 있는 얄타체제란 과연 무엇인지 그 원점을 들여다보고, 강대국 사이 전쟁 억제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수립되었는지 이해한다. 2차 세계대전의 핵심인 독소전쟁으로부터 얄타구상의 등장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을 조명하고 이렇게 수립된 전후 질서의 함의를 살펴본다. 마지막 4장에서는 얄타체제 형성과 ‘중국혁명’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하고, 20세기에 전개된 ‘사회주의 혁명’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본문의 분석이 역사의 재해석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면, 에필로그에서는 이런 새로운 해석을 토대로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지 하나의 시론을 제시한다. 앞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 가지 경로 중 하나로, 다소 극단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반도 핵위기’를 예시로 들어 다각도에서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다(322쪽). 섬찟한 시나리오이지만, 가능성이 있는 위험이라면 쉽게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책이 종내 전하는 메시지이다.

    백승욱 교수는 “이 책의 주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해 대만 위기를 거쳐 한반도 핵위기로 이어지는 ‘연결된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 위기가 시작되는 문 앞에 우리가 서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밝힌다(336쪽). 지난 역사를 통해 확인했듯, 일단 위기가 연결되고 군사적 대립이 개시되면 상황을 되돌리기 어렵기에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연결된 위기’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제어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책의 출발점이 된 〈한겨레〉 인터뷰(2022년 3월 9일 자)에서 백승욱 교수는 “한국은 세계질서에서 주체적으로 대응한 적이 없고, 제도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역사를 일종의 ‘불변의 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제도의 위기, 정치의 위기, 사상의 위기라는 삼중 위기에 처해 있다는 그의 진단이 무겁고 엄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연결된 위기》는 이 삼중 위기의 결합이 격동하는 국제정세와 맞물려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을 직시한다. 우리가 처한 제약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려는 두터운 노력의 산물이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이해로 무장한다면 상이한 역사 경로를 찾아낼 수 있을지에 관한 사고 실험이기도 하다. 책에 가득한 논의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세계질서 논의에 상상력을 제공한다. 과거 역사를 되풀이해 다시 읽고, 거듭 해석하고,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통해 과연 한국 사회는 ‘연결된 위기’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냉정하고 차분한 분석과 사상적 모색이 더없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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