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범도 흉상 이전,
    육사 정체성 흔들고 국군 뿌리 부정
    [기고] 이전 아니라 그 옆에 최운산 흉상 세워야
        2023년 09월 14일 0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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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육사의 정체성은 육사 슬로건처럼 “조국을 가슴에 새기며”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키기는 데 있다. 그렇다면 육사정체성의 역사 속 뿌리는 당연히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와 북간도 봉오동사관학교여야 한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이회영 형제들과 최운산 형제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쏟아부어 독립군 무관학교를 세운 것에 그 정신적 뿌리를 두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그분들은 재산만 바친 게 아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혹독한 고문과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마저 바쳤다.

    이회영 형제들은 서울에서 경기도 양주까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부였다. 최운산 형제들 또한 북간도 땅을 3일 밤낮을 걸어도 다 밟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땅을 소유했다. 1960년대 부산 지역 6배 크기에 달할 정도로 북간도 제1의 대지주이자 거부였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두 쏟아부어 1911년에 신흥무관학교를, 1912년에 봉오동사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들 독립군 군관학교를 통해 배출된 독립군 장교들만 4,200명에 이른다. 그리하여 독립군들이 ‘제1회 독립전쟁’이라 부른 봉오동 전투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과 봉오동사관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치른 전투였다. 봉오동 전투 연장전인 청산리 전투 역시 이들 무관학교와 사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육사의 정체성은 신흥무관학교와 봉오동사관학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전투의 주역인 홍범도 흉상 이전을 이야기할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공간에 두 전투의 또 다른 주역인 최운산 장군 흉상을 하나 더 세워서 육사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운산 장군 78주기 추모 포스터(최운산 장군기념사업회)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 속 뿌리 또한 항일 의병 – 만주 연해주 독립군 – 군무도독부에서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인정한 최초의 정식 군대가 바로 최운산 장군 형제들(최진동, 최운산, 최치흥)이 봉오동사관학교를 통해 양성한 군무도독부이기 때문이다. 군무도독부는 러시아 교관을 초빙해 오랜 기간 실전처럼 훈련된 670명 규모의 독립군 최정예부대였다. 무기도 유효사거리가 500m에 지나지 않은 일제 아리사카 소총보다 700m에 이를 정도로 성능이 우수한 모신나강 소총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당대 최신식 맥심기관총과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모두 연해주 체코 병단으로부터 최운산 장군 형제들이 비밀리에 반입해 무장한 결과였다.

    모신나강 소총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고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으로 선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는 만주와 연해주 일대 모든 독립군 무장 부대들을 통합해 거대 독립군단을 형성코자 했다. 통합군대 실현을 위해 임시정부 대표로 안정근과 왕삼덕, 조상섭 3인을 만주와 연해주로 파견하기까지 했다. 모두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통합 군대로 일제와 독립전쟁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1920년 1월 임시정부 '국무원 포고 1호'와 '군무부 포고 1호'를 공표해 서간도와 북간도 청년들의 독립군 지원을 촉구했다. 당시 임시정부 분위기상 1921년 신년 하례식을 서울에서 치르자고 할 정도로 그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년 하례식

    바로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독립군 통합부대가 ‘대한북로독군부’다. ‘대한북로독군부’는 최진동 장군, 최운산 장군의 군무도독부를 중심으로 홍범도, 김좌진, 오하묵, 안무 등 6개 독립군 통합부대로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실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는 9종 검정 교과서 가운데 유일하게 씨마스 출판사 『한국사』 교과서에만 서술돼 나온다. ‘대한북로독군부’ 주력 부대는 최운산 장군이 봉오동사관학교를 통해 8년 동안 최정예부대로 양성한 군무도독부였다. 그러나 이런 역사 사실은 전혀 기술돼 있지도 않다. ‘대한북로독군부’ 사령관은 최진동 장군이고 사령관 부관이 안무, 참모장은 최운산, 제1연대장이 김좌진, 제2연대장이 홍범도, 제3연대장이 오하묵이다.

    최운산 장군이 대종교 서일 총재와 주도해 설립한 부대가 북로군정서이다. 북로군정서 숙영지인 왕청현 서대파 일대는 최운산 장군이 제공한 자신의 토지였다. 북로군정서에서 6개월 단기 사관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관연성소 훈련장인 십리평 또한 최운산 장군 소유지였다. 그리고 사관양성소 훈련 사관들을 실질적으로 관리, 감독한 주체도 대한민국 최초 정식 군대인 군무도독부였다. 이는 북로군정서 병사였던 이정(李楨)이 쓴 『이정의 진중일기』를 통해 제4차 학술대회(2019)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초로 인정한 군무도독부이다. 최진동, 최운산의 군무도독부는 1920년 경신년 1월부터 6월 초까지 36차례에 걸쳐 국내진공작전을 펼쳐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에 대한 일본군의 반격이자 독립군 소탕 작전이 삼둔자 전투,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로, 그리고 경신대학살 만행으로 나타났다. 봉오동 전투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연장전인 청산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청산리 전투 관련 일제 기록에도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운 존재’로 홍범도 부대를 언급할 정도였다.

    따라서 육군 사관을 길러내는 육사는 홍범도 흉상을 이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홍범도 장군과 이회영 흉상 옆에 최운산 장군을 하나 더 세울 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로 서간도에 이회영이 있었다면 북간도엔 최운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회영과 최운산 형제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와 봉오동사관학교가 아니었다면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북로독군부’는 탄생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수많은 항일독립지사들이 코뮤니스트, 아나키스트가 되어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다. 코뮤니즘, 아나키즘은 오로지 항일독립운동의 방편이었을 뿐이다. 항일혁명시인 이육사는 레닌주의 정치학교의 연장선상에서 건설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 졸업생으로 자신이 졸업작품으로 직접 쓴 연극 대본에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공산 사회’와 ‘일제 타도’를 부르짖었다. 이육사는 의열단 단원으로 나중에 코뮤니스트가 되는데 17번 옥고를 치른 열혈 항일 투사였다. 항일 독립운동에 좌우를 포괄할 때 우리 독립운동사가 풍부해지고 역사 속 진실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홍범도가 누구인가?

    일제가 조선 군인을 살상하고 침탈한 경복궁 점령 사건, 일명 갑오왜란(1894. 7)에 맞서 비록 모병 단계에 머물렀지만 항일 의병 활동 초기부터 활동했던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1895년 중기 의병 시절에도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 항거했다. 1907-1915년 후기 의병 전쟁 시절 일제의 잔혹한 학살 탄압으로 홍범도를 비롯해 항일 의병들은 고스란히 만주, 연해주 항일 독립군으로 변신한다. 그런 점에서 국군의 뿌리는 후기 의병 전쟁을 전개한 항일 의병들과 이를 인적, 정신적으로 계승한 항일 독립군들이다. 바로 그 항일 독립군의 결정체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 군대인 대한군무도독부였다. 그리고 대한군무도독부를 중심으로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가 최진동, 최운산, 홍범도, 김좌진, 안무에 의해 결성됐다.

    홍범도 장군은 의병 전쟁과 연해주 독립군 활동 과정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조국에 바쳤다. 대한민국은 해방된 지 73년 만에 흉상을 세워 그 정신을 기념했다. 그리고 해방된 지 76년 만에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현충원에 안장했다. 독립 국가로서 늦어도 너무 늦었다. 따라서 육사 교정에 흉상 열 개를 세워도 모자랄 지경인데 몇 년 전에 세운 흉상조차 철거한다니 패륜에 버금가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공화정체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탄생했다. 대한민국의 시작은 1919년부터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념을 들이대며 독립운동사를 축소·왜곡하려는 행태는 애국에 반하는 반국가적 행위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건국절을 운위하면서 이승만을 띄우는 것은 심히 몰역사적이다. 그런 숨겨진 의도에서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가 나왔다면 육사와 국방부, 그리고 윤석열 정권은 역사 속 패륜아로 남을 것이다.

    필자소개
    학교시민교육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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