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제대로 알고 얘기합시다"
        2007년 04월 17일 07: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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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정책조정비서관께서 16일 발표하신 「한미FTA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제안」에 대해 짧게나마 제 소견을 표합니다.

    김 비서관께서 말씀하신 “개방이 곧 신자유주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는 의견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한미FTA에 반대하는 것이 곧 개방 반대이거나 쇄국론이 아님도 인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 비서관께서 한미FTA의 정당성을 주장하시며 들고 있는 여러 사례가 매우 적절치 않은 것 같아 조금 지적해 보겠습니다.

    김 비서관께서는 “개방이 양극화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경제 개방도가 높으면서도 양극화가 확대되지 않는 나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스위스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라고 주장하십니다.

       
     
     

    개방 방식의 논쟁을 개방 찬반 논쟁으로 변질시켜

    첫째, 여기서 든 나라들이 이른바 ‘개방’으로만 나아가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사실이 아닙니다. 스웨덴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던 유로화(European Monetary Unit) 도입을 2003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고, 2005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유럽헌장이 부결되었고, 스위스에서도 미국과의 FTA가 2006년 국민투표에 의해 중단되었습니다.

    둘째, 김 비서관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스웨덴과 아일랜드에서는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되어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까지 사례 연구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고 있는 유럽 나라들의 예를 들며 ‘개방’을 역설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김 비서관께서는 울리히 벡이나 기든스, 자크 아탈리 같이 유명한 외국 사회민주주의 학자들을 거론하며 “유럽의 진보적 사회학자들도 이미 개방과 세계화의 추세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은 교조적인 진보주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십니다.

    악의적 오독 삼가해야

    서구 근대화 이론을 비판하고 ‘세계 위험공동체’에 대해 경고하는 울리히 벡으로부터 한미FTA의 정당성을 끄집어내는 것은 울리히 벡에 대한 악의적 오독입니다. 기든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울리히 벡과 기든스는 김 비서관이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개방은 대세다, 어쩔 수 없다”고 극단적 개방독재론을 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방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코스모폴리탄적인 국가는 일국의 정치적 결정을 그 나라의 경계 내외부에 있는 타자들에 대한 책임성과 연결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의 원칙을 부정하거나 저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 울리히 벡, <동아일보>, 2002

    “모든 국가들은 글로벌화와 관련된 논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자기 나라와 글로벌 경제제도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교섭 조건은 무엇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앤서니 기든스, 유민재단 기념강연, 2001

    김 비서관께서는 한미FTA 체결이나 개방이 곧 신자유주의는 아니라며 “신자유주의냐 아니냐의 여부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 소득분배 시스템, 복지와 삶의 질에 대한 투자 정도,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전적으로 올바른 지적입니다. 하나하나 짚어 보죠.

    우리 나라 GDP에서 정부 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멕시코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OECD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 축소, 시장 확대’가 신자유주의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정의에 따르자면 한국은 OECD 최고의 신자유주의 나라입니다. 예전 정부가 만들어 놓은 일이고, 노무현 정부는 그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전가의 보도를 다시 내놓으시지는 마십시오.

    신자유주의 최첨단 조세역진 국가

    “노 대통령이 ‘정부 혁신을 직접 챙긴’ 덕택에 기획예산처와 외교통상부와 노동부가 삼성인력개발원에 교육을 위탁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기치인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나 ‘동북아 허브’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안한 것이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간 것(05. 5. 16)”은, 노 대통령이 “기업이 바로 나라(04. 9. 20)”라는 소신에 따라 삼성에 국가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음험한 정경유착은 사라지고, 투명한 정경일치가 지배하는 것이 노무현 집권하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 이재영, 「대통령 퇴진을 고민해보자」, 2005

    김 비서관께서 드신 ‘소득분배 시스템’은 아마도 조세 제도이겠지요. 과세 전 지니계수에서 과세 후 지니계수로의 변화 정도를 보면 소득분배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이 지수가 100 정도, 가장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미국은 20 정도 됩니다.

    한국은 얼마일까요? 4.5입니다. 아예 나라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오히려, 소득에서 납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부자는 적고, 서민은 많은 최첨단 신자유주의 조세역진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한국에서 ‘복지와 삶의 질에 대한 투자 정도’ 역시 OECD 최하위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미FTA 체결 당일 저녁 노 대통령께서는 ‘비전2030’을 자랑스레 되풀이하시고, 김 비서관 역시 ‘비전2030’을 거론하며 사회복지가 확대될 것이라는 신념을 밝히셨습니다.

    믿을 것을 믿으라고 하라

    2030년은커녕 발표된 지 채 반 년도 안 지난 2007년 재정 계획에서도 보건 예산, 노인 예산, 장애인 예산 등이 무더기 삭감되며 흐지부지된 ‘비전2030’을 믿으라니요? 믿을 걸 믿으라 하셔야지요. “한 20년쯤 더 기다려 보슈”라고 말하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노동 유연성과 안정성’에서도 한국은 최고의 신자유주의 나라입니다. ‘전세계 CEO들의 필독서’임을 내세우는 <포브스> 2003년 발표에 따르자면,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OECD 3위입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자면 미국보다 한국의 노동유연성이 더 높아,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김유선, 「한국과 미국의 노동유연성 비교」, 2004).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세계 1위이면서도 실질임금 증가율은 일본의 절반인 나라가 한국입니다(미국 노동통계국, 「16개국 제조업 노동생산성과 임금비용 국제비교」, 2007). 노동 문제에서도 세계 2위를 멀찌감치 따돌린 신자유주의 1등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김 비서관께서 드신 “정부와 시장의 역할, 소득분배 시스템, 복지와 삶의 질에 대한 투자 정도,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니 네 기준 모두에서 노무현 정권의 대한민국은 단연 신자유주의 1등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대부인 미국도 강력한 조세 제도를 가지고 있고, 원조격인 영국도 한국과는 비교 안 되는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고 있으니, 한국을 그냥 ‘신자유주의’라 칭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울트라캡숑’ 정도는 붙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르는 건 모른다 말하는 게 도리

    김 비서관께서는 주장하십니다. “지금은 70년대 수출주도 불균형 발전전략을 채택한 이래 ‘개방을 통한 번영과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라고요. 도대체 박정희의 ‘수출주도’와 노무현의 ‘개방을 통한 번영’은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노무현식 개방은 수출주도가 아니라 수입주도입니까? 무역 규모도 역대 최고고, 무역 수지도 역대 최고고, 대기업 이익도 역대 최고인데, 내수 경기만 역대 최저인 ‘불균형’은 불균형이 아니고, 박정희의 수출주도만이 ‘불균형’인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왜 대한민국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런 식 해괴한 어법을 사용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조삼모사에 속아 넘어가는 원숭이라 믿는 것입니까?

    “개방에 대한 대결적 소모적 논쟁보다는 누적된 양극화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는 지혜를 발휘해 줄 것을 진보진영에 제안”한다니요? 협상 때는 체결된 후에 이야기하자며 뒤로 미루더니, 막상 체결이 되고 나니 뒷수습 이야기만 하자니요? 참 유치찬란하십니다. 청와대 밖에서는 보통 이런 걸 두고 ‘사기’라 부릅니다.

    한미FTA 같은 걸 제대로 해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더 잘하라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못하는 건 못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 말하는 게 사람된 도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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