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적 자원 약탈,
    유럽 근대문명 개화의 숨은 그림
    [정의 경제] '생태경제사'-2 : 카우보이 경제의 종말
        2023년 09월 07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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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경제적 풍요를 가능하게 해준 ‘카우보이 경제’

    일찍이 유한한 지구 위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의 불가능함을 알아차렸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1966년 유명한 논문 ‘다가오는 우주선 지구의 경제학’에서 기존의 자연 약탈적 경제 패러다임을 ‘카우보이 경제(cowboy economy)’에 비유했다. 이 경제는 지구를 무한한 평원으로 사고하며, 무모하고 착취적이며 낭만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들과 관련되어 있는 경제다.

    볼딩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알려진 한계를 넘어선 곳은 거의 항상 어딘가에 존재했으며, 인간이 지구에 존재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새로운 미개척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자연 환경이 악화되거나 사람들이 살던 곳의 사회 구조가 악화되어 상황이 너무 어려워지면 항상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고 진단하고 이런 사고에 기반한 경제를 카우보이 경제라고 부른 것이다. 물론 유럽인들에게 미개척지라고 간주된 곳은 사실 엄연하게 비유럽인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이미 개척된 공간이었지만 말이다.

    카우보이 경제는 특히 15세기 이후 최근까지 유럽인들의 경제 패턴을 가장 전형적으로 대변한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13~14세기까지만 해도 지구상에서 특별할 것이 없었던 중세의 유럽인들이 수세기 만에 근대적인 문명을 이루고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력과 기술, 지식을 소유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원인들이 작용했을까? 대략 1500년대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시대 600년 동안 유럽인들이 가장 난폭하고 거대한 카우보이 경제를 추구해왔던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자.

    유럽인들만큼 지구 역사상 특정 지역에 국한된 집단들이 자신들의 경계 범위를 뛰어넘어 전 지구적 자원을 동원하여 물질적 부를 쌓고 호사스런 문명을 누린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인들이 남북 아메리카 대륙은 물론, 아프리카 전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지구 전체를 ‘탐험’,‘개척’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아래 ‘지구적 자원수탈’을 해왔던 끝도 없는 목록 중에 몇 가지만 확인해보자.

    설탕에 얽힌 비극의 섬 마데이라(Madeira)

    우선 대항해시대 초창기 유럽인들에게 설탕 공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부터 살펴보자.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의 저자 라즈 파텔(Raj Patel)은 15세기까지만 해도 나무로 빽빽히 둘러 쌓였던 북아프리카 작은 섬 마데이라를, 초기 대항해의 기원을 열었던 포르투갈인들이 어떻게 사탕수수 농장으로 난폭하게 바꿨고 선주민들을 사탕수수 수확과 가공을 위해 동원했는지 그 잔혹한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탕수수 줄기를 설탕으로 바꾸는 데는 막대한 연료가 들었다. 사탕수수 즙을 끓여 설탕 1킬로그램을 추출하려면 목재 50킬로그램을 때야 했다” 마데이라 섬에 있는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잘라서 써버렸기 때문에 설탕 생산이 급감하자 투자자들은 신대륙의 목재를 연료로 삼고 노예를 더 대규모로 투입해 더 많은 설탕 생산을 했다. 이런 식으로 “유럽의 부자들은 설탕을 먹었고, 설탕은 마데이라섬을 먹었다”고 라즈 파텔은 평가한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신대륙의 카리브해 섬과 브라질 등으로 설탕 플랜테이션 농장을 확대해갔다. 그 결과 “간혹 맛보는 별식이었던 설탕은 17세기 말에 이르면 영국에서 소비가 4배로 증가했고 18세기엔 그보다 곱절로 늘어서 18세기 말에는 1인당 6킬로그램에 이르렀다“

    면화, 구리, 은 등 근대유럽문명을 일군 끝없는 자원들의 목록

    유럽인들의 지구적 자원 동원은 식량뿐이 아니었다. 당시 대표적인 의복 재료였던 면직물은 당초에 영국 등이 동인도회사등을 통해 발전된 인도의 면직물을 수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면화원료를 수입하여 직접 면직물 제조에 나섰는데, 특히 19세기 초가 되면 대량의 면화원료를 공급받기 위해 미국 남부지역에 흑인노예를 동원한 대규모 면화 플랜트를 건설했다. 그렇게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면화는 영국의 면직물 중심지인 랭커셔로 실어 나른다. 또한 이 면직물은 이제 역으로 인도로 역수입되어 원래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몰락시킨다.

    포토시 은광의 강제노동

    구리 등 광물 쪽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폐 주조의 재료였던 금과 은을 찾아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스페인은 16세기에 남미 볼리비아 지역에서 세계 최대 은광인 포토시(Potosí) 광산을 발견하고 선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은 채굴을 시작한다. 그 결과 16세기 후반에 포토시는 전세계 은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스페인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었다.

    특히 스페인은 은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미타(Mita)라고 하는 강제노동제도를 수백년 동안 지속하였는데, 이로 인해 8~50세의 인디언 남성 가운데 7분의1은 의무적으로 은광에서 강제노동에 투입되어야 했다. 그 결과 포토시 은광은 스페인에게는 부를 가져다 주는 산이 되었지만 선주민들에게는 ‘사람 잡아먹은 산’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자원을 약탈하다

    아마도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이 지구적 차원에서 자원, 특히 에너지를 대규모로 동원하여 자신들의 물질적 부를 팽창시킨 가장 극적이고 참혹한 사례는 ‘노예’의 동원이었을 것이다. 유럽 열강들은 유럽 밖의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담배, 쌀, 목화 및 설탕과 같은 작물들을 재배하기 위해 넓은 땅과 많은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시작했다. 플랜테이션은 중앙의 집중적인 감독 아래 강제 또는 노예 노동력에 의해 경작되는 대규모 농지다.

    미국 역사학자 브라이언 블랙(Brian Black)은 2022년 저술한 <에너지 세계사>에서 캐리비안의 섬들에서 플랜테이션에 노예들을 도입한 이후, 노예제도는 북아메리카로 넘어가 영국 식민지 시기의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및 조지아까지 확대되었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450여 년 동안의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으로 포르투갈이 45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수송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6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팔려간 18세기에는 약 25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거래한 대영제국이 최악의 범법자였다”

    그리고 블라이언 블랙은 이렇게 덧붙인다. “14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많은 지도자들과 상인들에게 원주민들이 권리나 노동자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경악을 금치 못할 사례는 교역을 주도하던 이들이 사람,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프리카인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우주선 지구의 경제 패러다임으로 바뀌다.

    서양경제사의 서술들을 보면, 통상 근대 자본주의 성립의 주요한 계기로서 유럽 안에서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인클로저 운동을 꼽고 이것이 원시적 자본축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간주한다. 반면 대항해시대에 유럽 밖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와 호주 등지로부터의 약탈해온 원료와 자원에 대해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시대 급격하게 이뤄진 유럽 자본주의의 번영에 대해서도 식민지와의 교역보다 유럽내 교역이 훨씬 큰 규모였다면서 식민지에서의 자원 약탈에 대해 저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화폐 가격으로 환산한 것일 뿐, 실제 물리적으로 기초가되는 요소들을 유럽 밖에서 공급받지 않았다면 유럽의 계몽주의와 근대화는 지금과 꽤 달랐을지 모른다.

    1700년 기준으로 10억의 세계인구가 지구상에 살았지만 유럽지역의 인구는 고작 1.6억이었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1/6이 전 세계 자원을 독식할 수 있다면 그 지역의 부가 특출하게 팽창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멈출 수 없는 탐욕을 위한 대규모의 자원을 공급해줄 거대한 미개척 신대륙이나 신천지는 더 이상 없다. 그래서 케네스 볼딩은 카우보이 경제가 ‘우주인 경제’로 바뀌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과 에너지 한계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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