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는 왜 하필 1만년전부터
    농경사회로의 전환을 시작했을까?
    [정의로운 경제] 인간종과 자연 <생태경제사>-1
        2023년 09월 04일 1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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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자연정복 능력 중심으로 서술된 기존 경제사

    인간의 지적, 기술적 능력이 커짐에 따라 일반적으로 경제활동 반경이 확장되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부과하는 근본적인 제약의 범위 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경제활동 영역과 규모를 급격히 팽창시켜온 경험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우리는 지나치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능력을 중심으로 경제적 생산과 소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기후위기가 발생해도 인간이 자신들의 지적, 기술적 능력으로 기후와 생태시스템을 능히 통제할 수 있다고 지금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생산을 위한 개조 대상으로 자연을 간주해왔던 기존 경제사 서술방식의 관성을 다시 성찰해야 한다.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관계 안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물질적 생존을 확보해왔는지, 인간의 자연개조 능력의 성장뿐 아니라, 자연 자신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는지도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종과 지구생태시스템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얽힘의 결과로 경제사를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생태 경제사를 새로 쓰는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를 대신해서 경제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는 몇 가지 사건들을 생태경제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본다면, 간단하게나마 그동안 인간 본위적인 경제사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그 허점 때문에 기후위기 시대인 지금도 여전한 결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계적으로 저평가하고 인간의 기술적 해법에 과도한 신뢰를 부여하는 해결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인류 역사의 99퍼센트는 수렵채집으로 일관되었는가?

    1991년 출간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녹색세계사>에서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은 “인류가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 200만 년 동안 최근 2~3천년을 제외하고 인간은 채집과 수렵에 의존해왔다”면서 결국 인류 역사의 99퍼센트는 수렵과 채집 경제였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정확히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이고 그로부터 상당 기간 수렵과 채집 관행을 병행하면서 ‘인공적으로 생태계’를 만드는 농경사회가 서서히 지구의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고 동물의 가축화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시점이 왜 하필 1만 년 전부터인가? 생각해보자.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이자 직립원인인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던 것은 200~300만 년 전부터라고 한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것도 20~30만 년 전이다. 이 오랜 세월 동안은 왜 농경사회로 진입하지 못했을까?

    기술이 부족해서? 조야한 돌도끼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200만 년이나 되었다는 것을 보면 인간의 손재주나 기술이 최근 1만 년 전에 급격히 상승했을 것 같지는 않다. 지식과 소통능력이 부족해서? 언어는 이미 20만 년 전부터 사용했다고 하니 이 역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동원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해서?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어떤 물리적 도구보다 인간 진화 역사에서 중요했던 사건은 불의 사용이다. 그런데 불은 대략 50만 년 전부터 이용했다고 알려졌으며 인간 주거지에 난로가 등장할 정도로 불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4~5만 년 전이란다.

    이렇게 보면 환경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 생활해왔던 채집과 수렵인들의 삶을 1만 년부터 끝내고, 본격적인 문명의 시원을 열었던 농경사회로 진입했던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 가지 확인할 것은 인간의 채집과 수렵활동이 완전히 자연 친화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알프리드 크로스비(Alfred Crosby)에 따르면 “농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인 1만 2천년쯤 되자 매머드, 말, 털코뿔소, 땅늘보처럼 덩치 큰 초식동물들의 거의 대부분 멸종했으며, 동반구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큰 동물들은 비슷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12천 년 전에 시작된 온화한 기후라는 선물

    인류사학자 제임스 수즈먼(James Suzman)은 2020년에 쓴 책 <일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 “1만 년 좀 더 전부터 시작하여 5천 년이 흐르는 동안 서로 무관하던 인간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역의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적어도 11군데에서 몇 가지 작물을 길렀고, 다양한 동물들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간다. “정확하게 이런 일이 왜, 어떻게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경이적인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우연으로 보였던 이 현상이 일련의 기상학적, 환경적, 문화적, 인구학적, 그리고 진화적인 운전자들에 의해 촉진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비록 다양한 원인을 지목했지만 그가 기후변화에 방점을 둔 것은 확실하다. 그에 따르면 수만 년 전에도 식량 재배 실험이 있기는 했지만, 온화한 간빙기가 시작된 1만 년 이전에는 “생산한 곡물들이 워낙 분량이 적어서 거두고 탈곡할 수고를 들일 가치도 거의 없었”는데, “특정 식물이 가끔 그것들을 거두어가는 인류의 운명에 영향을 줄 만큼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그 사이에 기후가 상당히 돌발적으로 크게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기후변화가 바로 1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태양의 아이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 알프리드 크로스비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지구 기온의 상승, 1만년 전 쯤에 있었던 농업의 탄생, 문명이라고 부르는 복잡한 현상의 출현 사이에는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빙하가 물러나면서 신석기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의 막이 올랐고, 인간은 이때 돌을 깨뜨리는 차원을 떠나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농업, 직조, 토기제조, 야금 등을 발명했고, 항구적인 정착지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 이슈는 기후과학자 요한 록스트림(Johan Rocstrom)이 2021년 저서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에서 확실하게 매듭짓는다. 그는 1만 1,700년 전부터 빙하기가 종결되고 간빙기에 들어갔던 홀로세에 대해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은 흔치 않은 이시기를 우리는 ‘에덴 동산’ 혹은 ‘골디락스 시대’라고 부른다“면서 농경사회의 결정적 분기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록스트림은 1만 년 전 홀로세가 가져다 준 기후라는 선물을 이렇게 표현했다.

    “날씨는 점차 안정되고 일정한 리듬을 타게 되었다. 건기와 우기, 계절의 변화가 수천 년간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인류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구 생태계의 모든 구성원은 이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끽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은 홀로세 내내 위아래 1도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고, 온도 조절기 역할을 하는 이산화탄소는 280ppm 수준을 유지했다. 축복 받은 환경은 산업혁명 전까지 계속되었다.”

    인류문명을 떠받치던 온화한 기후, 1950년대에 막을 내리다.

    에덴동산을 만들어준 기후 덕분에 “1만 1천년 전 지금의 이라크 지역, 즉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나타났고, 1만 전 전에는 중국과 중앙아메리카 내륙 지역에서 각각 농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8천년 전에는 인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부근과 다른 지역에서도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흔적이 보인다.”

    물론 농경사회로의 전환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절대 아니었고 수천년이 걸려서 4~5천 년 전쯤에 대략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진화한다. <에너지 세계사>의 저자 브라이언 블랙(Brian Black)은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 인간은 오늘날의 문명에도 필수적인 거의 모든 작물과 동물을 길렀다. 밀, 쌀, 보리, 감자, 개, 말, 소, 양 그리고 닭이 그 예“라고 말해준다.

    농경사회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인구도 폭발한다. 1만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서 인류의 인구는 고작 400만 명을 넘지 않았지만, 문명의 시원을 연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인구는 1천년 마다 두 배씩 증가하여 3천년 쯤 되면 이미 5천만 명이 되었고, 서기 200년 쯤 되면 약 2억 5천만 명으로 다시 늘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홀로세의 온화한 기후 덕분으로 인간이 농경 문명사회를 열었지만, 그러한 최적의 기후조차도 풍부한 농작물 수확을 거져 주지는 않았다. 그 후에도 수확량에 영향을 끼쳐 사회의 상태까지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여전히 기후였기 때문이다 ”종자가 발아할 때 기온이 차거나 비가 많이 온다든지, 작물이 한참 성장할 때 건조하다든지, 수확기에 비가 많이 온다든지 하는 기상이변이 한 가지라도 발생하면 수확은 크게 감소했다“ 그래서 농경사회에서도 기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계시설을 만든다든지 토지를 비옥하게 유지하려고 갖은 수단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인류문명의 기초에 대한 도전

    문제는 1만 년 동안 인간사회가 안정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게 했던 에덴 동산의 기후조건, 즉 평균온도가 위아래로 1도의 좁은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던 그런 홀로세의 시대가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록스트림은 당초의 계산대로라면 지구생태계가 인간에게 부여한 온화한 기후라는 선물(홀로세)은 앞으로 5만 년은 더 계속될 터였다. 그러나 1만 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는 1950년대에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인간사회가 폭발적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무한경제성장을 추구하기 시작했던 1950년대 ’거대한 가속‘이 시작되면서 지구의 평균온도은 빠르게 상승했고 현재는 1.2도 정도까지 올라왔다. 2023년 올해 6월과 7월에는 이미 1.5도를 넘었다는 잠정 추정치도 나와 있다. 이 같은 기후변동은 인간의 지식이나 기술로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여섯 차례의 IPCC보고서가 거듭 확인한 바가 있다.

    이와 같이 경제사를 재해석하게 되면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인류문명의 진정한 시련과 도전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현재 인류 자신이 자초한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인류는 자신의 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전제이자 기초가 무너지고, 그 위에 세워진 문명 역시 무너지는 참혹한 광경을 보게될 지도 모른다. 아마 예정대로라면 내년인 2024년 8월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학회에서 공식적으로 홀로세의 종결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인간의 경제활동이 기후는 물론 지구생태계의 지질학적 지층구조를 결정한다고 하는 인류세 진입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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