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가족이 가해자라면
    [그림책]『귓속말 게임』(마르텐 뒤르.소피에 루이세 담/아름드리미디어)
        2023년 08월 15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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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죽음

    한 사람이 학교에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전국의 선생님들이 거리에 모여 추모와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교사의 인권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권위적인 시절에는 학생들의 인권과 생명이 위태로웠습니다. 그리고 일부 가정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자녀들의 인권과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폭력의 문제는 학교나 가정이나 회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폭력은 가정이든 학교든 회사든 거리든 군대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SNS나 미디어에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에서 일어나든, 모든 폭력은 범죄입니다.

    소름 끼치는 귓속말

    베라라는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긴밀한 상담을 하는 것 같습니다. 베라의 표정은 어둡고 진지하고 슬퍼 보입니다. 이윽고 베라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쉬는 시간에 심심해서 게임을 했어요.”

    베라가 친구들과 한 게임은 ‘귓속말 게임’입니다. 여러 사람이 둥글게 앉고, 한 사람이 귓속말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마지막 사람이 자기가 들은 말을 발표합니다.

    “수프랑 미트볼 사랑해?”

    그리고 처음에 말한 사람이 자신이 말한 것을 알려줍니다.

    “소피아랑 매트랑 사귄대!”

    이렇게 처음에 말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엉뚱한 말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귓속말 게임은 재미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가 베라에게 처음으로 귓속말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안나는 거의 안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베라에게 속삭였습니다.

    “우리 엄마가 날 때려.”

    베라는 안나의 말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에 들은 야스미나가 말했습니다.

    “우리 언니가 내 딸이야?”

    친구들이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안나는 자신이 처음에 뭐라고 했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베라의 마음속에는 안나의 말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날 때려.”

    누군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안나는 분명 귓속말 게임을 통해 베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베라는 안나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설마 안나 엄마가 정말 안나를 때렸는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안나는 게임을 통해, 그것도 아주 작은 소리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날 때려.”

    며칠 뒤 안나 엄마가 학교에 왔습니다. 베라가 볼 때, 안나 엄마의 겉모습만 보면 결코 안나를 때릴 분이 아니었습니다. 베라는 안나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라는 안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안나 엄마가 이상한 행동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제야 베라는 안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하지만 안나와 같은 반 청소년인 베라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설사 베라가 어른이었더라도 친구 가족의 폭력 문제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가정과 학교와 회사에서 폭력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요?

    폭력은 사회와 제도가 막아야 하는 범죄

    거리에서 강도가 누군가에게 폭력과 위협을 가하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경찰에게 신고하고 경찰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군대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누구든 더 이상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폭력은 사회와 제도가 막아주어야 합니다. 교사나 학생이 학교에서 폭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가족이 가정 폭력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직장 동료끼리 폭력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폭력을 학교의 문제, 가정의 문제, 회사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제2, 제3의 안나를 예방하는 방법은 우리 사회가 나서서 가해자의 폭력을 막고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가해자라면

    폭력은 범죄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 가운데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과연 신고하거나 처벌받게 할 수 있을까요? 특히 가해자를 자녀로 둔 부모라면? 또는 부모가 가해자라면? 이때 이기적으로 생각한다면, 가족을 괴물로 만들고 정의는 가족의 이름으로 자취를 감추게 될지 모릅니다. 부디 무엇이 진짜 가족을 위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안타깝지만 『귓속말 게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 작품입니다. 인류의 문명이 이렇게 발전했음에도 그것은 인간의 행복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영혼의 성장과 행복의 문제는 개개인이 노력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림책 이야기>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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