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투표에라도 목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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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0일 0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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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노 대통령, 박정희 수준은 돼야 하지 않는가?”에 대하여 김보현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반론 “국민투표에만 목매는 것은 위험하다"를 읽고서 쓴다.

    무수한 선거제도 논쟁에서 벗어난 이상적인 민주주의 실현, 국민투표

    김 교수는 지난 글에서 국민투표에 ‘매달리는 것’을 두고 "근대사회들에서 국민투표란 제도 하나만으로 현실의 정치체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별반 없다. 한 정치체제가 국민투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또 실시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체제를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체제라면 당연히 그러지 않는 체제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비판했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중선거구제로의 전환을 주창하자 그간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꾸지 못했던 것은 소선거구제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도 하지만 중선거구제만이 유일선이라고 볼 수 없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의 핵심사안 중 하나인 선거구 크기(District magnitude)를 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인구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분명히 선거제도에 있어서 인구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을 확보하는 논쟁은 선거정치학, 비교정치론 영역의 뜨거운 주제이다.

    덧붙여 캐나다의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라는 강력한 양당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특유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서 이례적인 다당제로 정당이 구성되기도 한다.

    사설이 길었는데 요약하면 기존의 선거제도보다 좀 더 민주주의 이상에 다가섰다는 새로운 제도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정치환경과 구성원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구 크기, 정당제, 선거제도의 무수한 논란의 전제를 생각해보자.

    바로 국민의 대표성을 담지 할 수 있는 방식이냐가 관건인데 이러한 전제는 고대 그리스처럼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런데 만약 유권자의 의견을 고대 그리스처럼 직접적으로 반영이 된다면 앞서 사례로 들었던 무수한 논쟁들은 의미 없이 증발해버린다.

    국민투표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또 실시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체제를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 본래의 민주주의 이상에 다가서려 한다는 당위성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김 교수가 언급하듯이 국민투표가 히틀러나 피노체트 등에 의해서 남용된 사실이 있지만 ‘역사는 진보한다’는 테제를 긍정할 때, 지난 2002년 프랑스의 극우성향인 장 마리 르펜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었지만 결국 결선투표에서 떨어졌던 것이나, 미완의 완성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87년 체제’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의 명시적 확보 그리고 오늘날 87년 체제 이전으로의 역행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 할 때, 히틀러나 피노체트는 인류사에서 더 이상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설령 그러한 정치인이 있더라도 정권쟁탈이 쉽지 않는 사회문화적 양식을 신뢰하는 시대로 굳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중의 무능과 엘리트 정치에 대한 집착?

    이러한 선상에서 김 교수가 "작금의 실정은 국민투표란 카드를 섣불리 꺼내들 계제가 아니다.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치면 정국은 정말 어찌 돌아갈지 알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은 도저히 관리·통제가 불가능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며 국민투표를 우려한 것은 그 일면에 민중의 판단력에 의심을 갖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여기서 필자의 논지가 민중에 기댄 민중만능론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 당연히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한다고 볼 때 이러한 권리를 누리는 데는 분명 책임을 필요로 한다.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 문제일까. 오히려 민중의 판단이 파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법으로 두려움을 심은 김 교수의 변은 작금의 엘리트 정치를 공고화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간 국내언론에선 포퓰리즘으로 매도되었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최근에는 민중을 대변하는 표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차베스에 대한 기존 기득권세력이 주도한 반쿠데타와 자본파업 속에서 차베스는 하야될 위기였지만 그 자신이 설계 입안했던 국민투표제를 통해서 재신임을 받았다. 이후에 현재까지 볼리바리안 서클을 기점으로 궁극적으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직접정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차베스는 정치 입문 초기부터 직접민주정치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군인 출신인 차베스는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구체제에 대항하여 군대에 의한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중은 군대가 닦은 혁명을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에 변함없는 민중의 지지와 그 지지 배경이 민중으로부터 직접 창출된다는 점을 깨닫고 재개정된 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국민직접정치를 명문화하게 된 것이다.

    “제70조: 국민의 직간접적 참여에 따른 주권 행사는 공무와 관련하여서는 공직 선출, 국민투표, 여론 수렴, 국민 소환, 입법 청원, 국민 발의, 여러 사람이 결부돼 있는 사안에 대한 공개토론과 시민 집회가 있고 … 본 조항에 제시된 참여 수단이 유효하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법률로 정한다.”(이하 헌법조항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참고)

    이밖에도 한국의 최근 한미FTA 체결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큰 조항으로 제71조에는 "초국가적 중대 사안은 공화국 대통령이 제안하고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쳤을 때, 또는 다수결 투표를 통한 국회의 결정이 있을 때, 또는 호적과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선거권자 10% 이상의 청원이 있을 때, 국민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에 붙여진다."고 밝히고 있다.

       
      ▲ 한미 FTA협상이 타결된 이후 지난 7일 대학로에서는 1만여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사진=민주노동당) 
     

    우석훈이 국민투표에 목매는 이유는

    김 교수는 우 교수가 국민투표에 목맨다고 비판할 때는 우 교수가 국민투표를 언급하게 된 배경그림인 국민의 참여 없는 ‘참여’정부의 국정행태를 고려했어야 한다. 우 교수는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 펴냄)에서 비단 한미FTA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가 여러 중대 국정사안에서 닫힌 엘리트주의 정치를 표방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황우석 사태와 관련하여-필자주) 황금박쥐’의 핵심인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이건 나쁜 징조다. 좁게 해석하자면 청와대가 ‘닫힌 구조’를 고수하며, 자신들이 ‘무오류 집단’이란 최면에 깊게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징후다.

    … 그들은 새로운 진화 대신 ‘퇴행’의 길을 택했다. 그 순간 청와대의 ‘닫힌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황우석 사건의 연장선에서 그와 그를 둘러싼 몇 명. 즉 ‘대통령의 측근’들이 꺼내든 새로운 국면전환카드가 한미FTA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무오류 집단최면 시스템’이 끝까지 간 것이 스탈린 시스템이다. ‘당의 무오류성 원칙’과 ‘민주집중제’, 즉 전체가 선택하고 일단 선택한 것은 모두가 따른다는 두가지 원칙이 결합되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는지 인류는 이미 경험했다.”

    한미FTA 협상안에서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만 보더라도 이 제도로 인하여 이미 일국의 헌법체계를 휴지조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서 경고된 바 있다.(홍기빈의 『투자자-국가직접소송제』(녹색평론) 참조) 이렇게 국민을 보호해야 할 최후의 바이블인 헌법조차도 무효화되는 체결에 대해서 두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보아야 할까.

    또한 필자가 지난 2월 <한겨레>지면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관료와의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둘러싼 수차례 논쟁에서도, 정부 측 관료는 투자자-국가소송제의 진행 과정 자체의 비밀주의에서 비롯되는 반(反)민주주의적인 요소와, 해외자본에 의한 국내 공공성 무력화 그리고 간접적 수용해석에 따른 헌법 무력화에 대해서 끝까지 부정으로 일관하다가 논쟁은 중단되고 결국 투자가-국가소송제가 결합된 FTA 체결을 관철시켰다.

    더불어 한미FTA 체결과정에서 드러났었던 국민이 배제된 엘리트 관료주의적인 행태에 대한 언론 역할을 반추하면 김 교수가 말했듯이 “현재 우리사회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다. 여전히 제약된 부분들이 실재하나 과거에 비하면 표현의 자유들이 많이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FTA를 비롯한 중대사안에서 이들 대항매체의 매체영향력이 무력했던 게 사실이다.

    언론자유의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박정희 정권하에 <경향신문>, <사상계>, <창작과비평> 등에 대한 탄압을 오늘날에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현 정권의 언론정책이 <국정브리핑>을 만들고 수용 가능한 비판은 감싸 안으려는 ‘부드러운 통제’로 보는 또다른 문제적 시선이 요청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박정희 전문가인 김 교수의 입장에서 우 교수가 국민투표를 실시한 박정희를 예로 든 것을 풍부한 역사적 배경에 근거하여 학술상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 할 수 있겠지만 우 교수가 분신을 시도한 허세욱씨나 그밖에 수많은 이름 없는 민중들의 눈에는 박정희와 노무현을 동급으로 볼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절박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만약 이러한 의도적 설정으로 노 대통령이 박정희와 비교한 것에 대해서 노무현 자신이 치욕을 느껴서 혹시라도 FTA에 대한 신념에 변화가 생긴다면 우 교수의 전략은 성공이다)

    활성화될지 모를 민주주의의 두려움은 민중에 대한 두려움?

    "노무현은 자칫 거침없이 활성화될지 모를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하였고 또 못 하고 있다."

    김 교수가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노 대통령 머릿속의 ‘거침없이 활성화될지 모를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바로 김 교수 자신이 엘리트 정치에 대한 집착과 민중의 의사결정능력이 부재하다는 의식이 암암리에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사태, 대추리 사태, 이라크 파병 등과 더불어 한미FTA를 결부해서 생각해보면 노무현은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하였고 또 안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차베스가 반쿠데타와 자본파업에서도 민중의 판단을 믿었고 재신임을 받아서 국민직접정치의 기반을 닦은 것과는 대조되게 그와 비슷한 악화일로를 걸었던 노 대통령은 지난 탄핵정국에서 촛불의 불빛에 힘입어 대통령 권좌로 돌아온 이후 국민과 괴리된 오만한 행보를 보였다고 판단한다. 이러 오만한 엘리트 정치야 말로 ‘활성화될지 모를 민주주의’보다 더 두렵다.

    뒤늦었지만 국민직접정치모델 시도되어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는 소위 ‘새사연 모델’을 통하여 국민직접정치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를 두고서 스위스에서나 실현가능한 일이라며 비판받기도 했지만 베네수엘라 사례는 국민직접정치 실현이 한국의 정치지형에서도 가능함을 예증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진보진영 내부에서조차 국민직접정치에 대한 막연한 기피는 또하나의 레드 콤플렉스 같은 것은 아닐까. 아래 글은 김 교수 글의 마지막 단락이다.

    “국민투표는 우리의 선택지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부는 아니다. 국민투표 하나에 목매는 일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 더욱이 민주주의의 지평은 국민투표란 제도로 환원될 수 없다. 국민투표란 방식을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사태 반전의 길들은 다르게도 열려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 우려하는 바를, 즉 국민투표 자체라기보다 그것의 실시를 전후로 동반될지 모를 정황(제도 안팎을 넘나드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다층적 활성화)을, 국민투표 실시 여부와 상관없이 조성하고 확대시키는 일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국민투표를 전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지난 1년 동안 한미FTA 체결과정과 체결 이후에 대한 비판에 귀를 닫고 있는 참여정부에 대해서 결국 FTA가 체결 된 지금, 조금이나마 귀를 열고 참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민투표가 유효함을 제안했을 뿐이다.

    87년 체제의 미덕만큼이나 87년이 불행한 분기점이 된 것은 바로 민중과 시민 간 괴리의 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분기점에서 한미FTA는 국민이 87체제의 한계(진보개혁 성향의 정권창출에도 불구한 신자유주의 파국으로의 돌입)에 사회운동을 결합한 즉, 정당권력 쟁취와 사회운동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전술’적인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백승욱, 2006)

    국민투표에만 목매는 것은 위험하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비판과 위험의 경중이 잘못 측정되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국민투표 실시 주장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현 시점이야 말로 국민투표를 비롯한 국민직접정치 모델에 대해서 진지하게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사실 해방정국에서 몽양 여운형을 필두로 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이끌었던 조선인민공화국은 전국 각 지역 민중들의 자발적 조직인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중들 스스로 의사결정을 경험했었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당시의 기억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번지점프대 앞에서처럼 뛰어내리지 못하고 겁만 먹고 있어야 하는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뒤늦게나마 “국민투표라도 목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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