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지는 사회에서
    진보정치의 세 가지 전망에 대하여
    [정의 경제] 지금은 '위기의 시대' 넘어 '붕괴의 시대'
        2023년 08월 07일 0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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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사회, 무너지는 기후

    한국 사회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를 떠받치고 있던 크고 작은 하위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여파로 전세사기 등 주거시스템에 금이 가고 있고, 교육과 학교 시스템이 무너지는 중이다. 공적 공간의 안전시스템이 흔들리는가 하면 언론과 미디어 시스템이 흔들리는 징조도 보인다. 심지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기치 않은 대규모 세수 부족에 직면하는 등 국가와 재정시스템조차 흔들릴 정도다.

    여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징후가 뚜렷한 기후붕괴 현상이 사회붕괴를 증폭한다. 저명한 기후학자 빌 맥과이어는 사회적 붕괴와 함께 환경 재앙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면서 경고하고 있다. 이미 지난 7월이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면서 기후위기의 1차 방어선인 1.5℃를 넘어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굿바이 1.5℃’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온 것인데, 7월 폭우로 오송역 참사를 겪으면서, 8월 폭염과 잼버리 대회 파행을 보면서 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리스 국가의 면적만큼을 태운 캐나다 산불소식이나 체감온도 66.7℃로 결국 폭염 공휴일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이란 소식 등 헤아리는 것도 힘든 전 세계의 기후재난은 기후가 확실히 ‘미지의 영역(uncharted territory)’에 들어섰음을 확인시켜준다.

    흔히 잘못 알고 있듯이 사회붕괴나 기후붕괴는 한 번의 갑작스런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파블로 세르비뉴(Pablo Servigne) 등이 <붕괴의 사회정치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회붕괴는 당연히 잘 작동할 것이라고 간주되는 사회의 하부시스템들에서 이상이 생기고 덜컥거리기 시작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후붕괴도 마찬가지다. 팬더믹처럼 일시적인 큰 충격도 배제하지는 않지만, 안전한 영역이라고 간주되던 것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기후붕괴는 시작된다.

    더욱이 사회붕괴가 시작되면 기후붕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급격히 감소한다. 반대로 기후붕괴는 사회붕괴를 재촉한다. 그러면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우리의 삶을 상식적으로 뒷받침해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믿음들이 하나 둘씩 깨져나간다. 그래서 지금은 위기의 시대가 아니다. 사회붕괴와 기후붕괴의 시대다.

    허용 가능한 소득격차를 정하자

    사회붕괴와 기후붕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은 당연하게도 정치에서 나온다. 특히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를 바꾸려는 진보정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보다 기존사회의 결함과 취약성을 경고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정치는 현재 시점에서 기존처럼 단기적인 현안 대응을 넘어서 사회와 기후가 붕괴를 피하고 능동적인 ‘전환’으로 나갈 전망을 여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대 양당과 함께 진보정당도 사상 최악의 난국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붕괴의 중심에 정치붕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미지의 영역에 들어온 것은 기후만이 아니다. 정치도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미지의 영역은 기존의 상식과 지혜가 무력화되는 영역이다. 오직 관성을 넘어 ‘전환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 진보정치는 스스로 붕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면서 사회붕괴를 피할 전망도 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진보정치는 사회붕괴의 핵심 폴트라인(fault line)인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의 수많은 복잡한 불평등 대책을 다시 끝없이 열거하지 말자. 이제는 단 하나의 목표 ‘사회가 허용 가능한 소득격차’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시민들과 공감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최저소득과 최고소득의 격차를 30배 이내로 줄이는 목표를 불평등 해소의 1차 과제로 삼으면 어떨까? 100배, 200, 심지어 300배까지 올라간 불평등을 대폭 줄이지 않고서 사회붕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최고임금제, 누진소득제, 부유세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보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수단을 끝없이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확인하는 것이다.

    한편 로마클럽은 소득격차의 한계를 경제학자 호세 가브리엘 팔마(Jose Gabriel Palma)가 제안한 팔마 비율로 정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상위 10% 부자 ‘한 사람’이 버는 소득이 하위 40%에 속한 서민들 ‘네 사람’이 버는 소득을 넘지 않으면 감내할 만한 불평등이 될 것이라는 제안이다(대체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팔마 비율이 1이고 미국은 3이다). 물론 팔마 비율로 해도 좋다.

    어쨌든 이제부터 “서민소득의 30배 이상 소득은 100% 세금으로 회수하자”고 말하자.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크게 떨어뜨려서 연쇄적으로 사회붕괴 조짐을 막을 것이고, 심지어 기후대응과 녹색전환에 요구되는 사회적 신뢰를 구축할 심리적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소득격차에 한계를 두자는 제안이 능력에 따른 분배를 위반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능력주의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에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 보상을 많이 받고 돌봄에 능력을 보이는 이가 보상을 적게 받는 것은 지금 사회구조 탓이지 주식투자자가 돌봄 종사자보다 능력이 우월해서가 아니다. 이처럼 특정 능력을 우대하는 사회적 조건이 없다면 주식투자자가 크게 보상받을 수는 없다.

    또한 큰돈을 벌고 있는 AI나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이 아닌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에도 크게 빚지고 있다. 이처럼 특정한 이의 능력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 크게 작용한다. 당연히 보상도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로도 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귀속분은 자신의 능력이 사회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불평등을 막을 ‘제한적 능력주의’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를 넘어 사회생태국가의 비전이 필요하다

    소득격차의 명시적 한계를 정하여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붕괴를 막는 것과 동시에 기후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아예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틀어야 한다. 물론 석탄화력발전을 조기폐쇄하고 재생에너지 늘리고, 전기차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소비를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나열하면 끝이 없다. 이제는 이들 수단을 모두 모아서 어디로 이 사회가 가야할지 다시 정할 때다.

    진보정치는 지금까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사회가 나가야 할 기본 지향으로 삼았다. 그러나 복지국가 비전은 기후위기가 부상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모델이었고, 기후위기 시대에 비교적 나은 대응을 했지만 총체적으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20세기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지만 성장주의를 받아들였던 성장의존형 복지국가를 생태적 관점에서 전복시켜 탈성장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다. 최근 알로이 로랑 같은 일군의 정치경제학자들과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이제 복지가 경제성장이 아니라 생태전환과 손잡고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바로 기존 복지국가나 생태복지국가와 다른 ‘사회생태국가’ 비전이다.

    이제부터 기후대응을 위해, 더 안전한 미래를 위해 공공연하게 경제성장과 손절한 복지국가, 경제성장이 아니라 생태와 손잡은 복지국가, 특 사회생태국가로의 전망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현실에서 이미 경제성장은 스스로 우리의 반경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2023년 1.4% 성장 전망이 말해주듯이 한국경제도 이미 제로성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성장에 의존하고 싶어도 의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히려 기후재난에 더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불필요한 재난비용을 줄이는 편이, 무리한 성장으로 기후재난을 초래하고 얻는 이익보다 크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 성장도 극히 부진할 뿐 아니라 설사 성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가 예측했던 비경제적 성장(uneconomic growth)이 될 것이 뻔하다. 비경제적 성장을 버리고 복지를 탄탄히 한 생태국가로 가는 전망을 열 적기가 지금이다.

    젠더평등과 돌봄사회로의 전환

    1972년 <성장의 한계>를 출간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로마클럽이 50년 만에 <모두를 위한 지구>를 펴내고, 매우 종합적인 기후위기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5대 전략과제를 제안하였는데 그 세 번째 과제가 바로 ‘젠더평등’이었다.

    젠더평등에 대해 로마클럽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여성의 교육 접근성, 경제적 기회, 존업한 일자리, 그리고 이것들이 가져다주는 모든 삶의 기회를 증진하면 더 훌륭하고 탄탄하며 회복력 있는 사회가 구축될 것이다. 이는 또한 금세기에 인류와 지구가 밟게 될 경로도 결정할 것이다”

    젠더 평등과 온갖 차별철폐는 이렇게 불평등 해소, 기후위기 대응과 직접 맞물려 있다. 젠더평등은 고사하고 ‘여가부 폐지’라는 구호가 말해주듯이 차별을 기반으로 생존하는 정치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우리 현실이기는 하다. 차기 총선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될지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붕괴는 가속화되며 그로인해 약화된 사회적 대응력이 기후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점을 공유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무급노동으로 여성에게 의무 지웠던 돌봄을 모든 사회구성원과 사회가 함께 떠맡는 전환을 통해 사회붕괴를 막아내고 새로운 수준으로 복지를 재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학술단체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는 <돌봄선언>이라는 책에서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돌봄사회를 표현한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 해소와 성장 없는 사회생태국가로의 전환과정은 돌봄사회 뒷받침에 의해 더 강한 추진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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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역진하는 젠더차별, 그리고 터무니없이 지지부진하는 기후대응 탓으로 점점 더 시스템이 고장나고 교란상태가 잦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붕괴와 기후붕괴는 상호 악순환의 함정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그 가운데 유일한 해결책인 우리 정치마저 현재 붕괴를 전환으로 반전시켜내기 보다는 붕괴의 함정 한가운데로 휩쓸려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붕괴의 함정에서 정치가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붕괴경로 밖으로 열려있는 전환의 전망을 찾아내는 것일 테다. 이를 위해서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기본나침반으로 ‘소득격차의 사회적 한계’를 정하고, 한두 가지 대응을 넘어 아예 사회의 방향을 바꾸어 기후에 안전한 길로 가야 한다. 그리고 평등한 돌봄사회로의 전환은 사회붕괴와 기후붕괴를 막을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다.

    *<정의로운 경제> 칼럼 링크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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