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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10주년...정태춘 콘서트를 맞아
        2023년 07월 19일 0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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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부산 일반노조 등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던 남편, 정승철이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생명은 건졌지만 절반의 몸이 온전치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막막했을 때 어릴 때부터 함께 부산지역에서 활동해 왔던 한진중공업 박성호 지회장 부부가 전북 남원 만행산 자락에 있는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것도 몇 달을 있던 어떤 대가도 없는 무료라니 처음엔 믿겨지지 않았다. 박성호 지회장 부인과 아이도 아팠을 때 이곳에서 쉬었는데 너무 좋다고 했다. 박성호 지회장 부부가 직접 운전해 우리를 쉼터까지 데려다 주었다. 무엇으로 그 고마움에 답을 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큰 빚을 진 듯 고맙다.

    그렇게 남편은 2017년 여름에 귀정사 사회연대쉼터로 들어가 다음해 여름까지 1년간 긴 자가 요양 시간을 보냈다. 나는 생계를 지키는 직장생활로 인해 중간중간 짬을 내어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남원 쉼터를 찾으면 하루 내지 길어야 사나흘 정도 머문지라 기억도 소회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지만 덩달아 일상을 벗어나 누리게 되었던 쉼터의 기억은 새록새록하다.

    처음 쉼터에 도착해 보니 절 주변으로 여기저기 여러 채의 통나무집과 황토방이 있었다. 절 마당 앞 요사채에도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거동이 불편한 남편은 처음엔 ‘그분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짐을 풀었다. 방 이름들은 파견미술팀들이 와서 붙이고 예쁘게 각방마다 명패를 붙여주었다는데 재밌게 하자는 뜻으로 ‘그분’, ‘정분’, ‘연분’, ‘앞방’, ‘먼방’, ‘끼인방’ 등으로 붙여져 있었다. 쉼터 중간엔 이용자들의 편의 등을 위한 ‘숲속까페 그물코’도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남편은 혼신으로 자가 요양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지팡이에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는데 조금씩 눈에 띄게 좋아져 퇴소할 즈음엔 지팡이에 의지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나면 산 아래 요동마을까지 왕복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을 오가며 운동을 하고 아침은 공양간에서 스스로 챙겨 먹었다. 아침은 자율배식이었고, 점심 저녁 공양은 공양간 할머니께서 맛있게 준비해 주셨다. 틈틈이 절에서 가꾸는 텃밭 농삿일을 함께 하기도 하고, 틈을 내어 황토방 불을 떼기 위해 나무도 해 나르고, 몸이 조금 좋아진 뒤에는 공기 좋고 물 맑은 만행산 산행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계절 마다 바뀌는 산과 들에서 만나는 꽃이나 열매들과 절 풍경을 담아 보내 주기도 했다. 밤이면 꽃을 피우는 노오란 달맞이 꽃, 절 뒷마당 배롱나무꽃, 가을이면 마을의 감나무, 겨울엔 하얀 눈으로 뒤덮여 아름답기 그지없던 절 풍경 등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간직한 쉼터의 정경이 그 한 해 우리의 그늘진 마음을 곱게 펴주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유기농으로 지은 천연 농산물로 공양주 보살님이 각종 전통 음식으로 몸을 보살펴주니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나는 두어 달에 한번 정도 시간을 내어 다니러 갔는데 그곳에서 심신을 달래고 계시던 권 선생님, 초원 샘, 그리고 귀정사 허드렛일을 도와주시고 계시던 문 처사님 등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오랜 지기들을 만난 것처럼 그 시간들이 그렇게 평화롭고 편할 수가 없었다. 1박이라도 하게 되면 다음날 남편과 함께 마을 저 너머 천문대가 있는 곳과 근처 안숙선 명창 생가 마을까지 운동 삼아 다니곤 했다. 대나무 밭을 바라보며 쉬거나, 밤이면 칠흙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초롱초롱한 별빛들을 올려다보는 일도 마음을 소박하게 하는 경건한 일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절 마당을 내려다보거나 햇살 가득한 날 뒤뜰 줄에 널려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들을 보는 일도 마음 참 맑아지는 일이었다. 남편의 몸이 많이 회복되며 가끔 오르던 만행산 등산 등도 도심에서만 먹고 자란 나로서는 참으로 귀한 시간들이었다

    도법스님이 좌장으로 있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소속으로 ‘뭇 삶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귀정사라는 종교 시설을 기반으로 사회연대쉼터가 세워졌지만 이곳은 그 누구에게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용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강제함이 없는 곳이라 절 행사가 있어도 아무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있었지만 어쩌다 음력 초하룻날 법회가 열리는 날엔 스스로 마음이 끌려 마을 신도들과 부처님 전에 성의를 표하고 남편의 건강회복을 진심 어린 기도를 태어나 처음으로 하기도 했다. 다시 환속한 신분이셨지만 나는 그 어떤 스님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시는 중묵처사 님의 말씀이 세속화되고 신비화된 어떤 종교의식보다 경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 치료도 도와주시던 윤성현 순천 들풀한의원 원장과 공동대표로 상주하는 중묵처사 님은 귀의 전에 불교학생운동을 하고 민중불교 운동을 하신 분답게 민중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역사 발전의 주인임을 깨닫게 하는 말씀을 인도의 어떤 예를 들어서 쉽게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는데 잊을 수가 없다.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은 국가폭력, 사회폭력에 맞서다 심신이 병들거나 지치거나 쉼과 모색 등이 필요한 분들을 위한 무료연대쉼터였다. 마음 놓고 자연과 더불어 사시사철 자연이 주는 선물을 벗 삼아 산책과 운동을 하며 그곳에서 가꾼 무해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고 짧게는 며칠에서부터 길게는 몇 개월까지 어떤 대가없이 머물 수 있는 참 보배로운 곳이었다. 어느 특정한 누군가의 자선이 아니었다. 그간 사회적 전선에서 국가와 권력, 자본 등의 불편부당함에 자신을 아끼지 않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워 왔던 분들이 의기투합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조금씩의 후원과 노동력을 제공해 만들고 있는 공동의 연대쉼터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고, 그러기에 더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곳을 만드는 데 함께 한 이들은 2호 쉼터로 이후 서울 영등포에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 역시 만들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중요한 보루 역할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내가 남편을 만나러 사회연대쉼터에 가면 가장 자주 만나게 되던 이는 송경동 시인이었다.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며 자주는 못 내려와 있는데 인연이 닿았는지 나와는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노동운동이던, 예술운동이던, 여타 사회문제던 불편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곳이면 짱가처럼 나타나서 몸도 마음도 아끼지 않고 앞서 주는 분 .그래서 늘 미안하고 빚진 것 같은 송경동 시인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치고 아픈 동료들을 위해 사회연대쉼터를 만들고 지키는 데도 성심이었다. 쉼터의 취지와는 다르게 잠시도 쉬지 않고 쉼터 이곳저곳 손 볼 곳이 있으면 뚝딱뚝딱 맥가이버 마냥 뭘 고치고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대나무 의자는 일품이었다. 밤에는 못다 쓴 글도 쓰며 한시도 쉬고 있는 걸 볼 수가 없었다. 정작 누구보다 쉼이 필요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쉼터의 10년을 지켜 온 중묵처사, 윤성현 원장, 송경동 시인, 장병관ㆍ김진 집행위원장, 그리고 초대 쉼터지기로 고인이 되신 최정규 전 파독광부 선배님 등께 감사드린다.

    물론 사시사철 쉼터를 지켜주는 주인들은 또 따로 있다. 시골 친정 큰 오라버니 같은 김용만 시인의 싯구처럼 대숲과 계곡과 콩새와 온갖 꽃과 풀벌레들, 그리고 그들을 살리는 한 줌 햇살과 은은한 달빛이 주인으로 있으며 지치고 아픈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곳이 귀정사 사회연대쉼터였다. 그들에게 고마워하며 담벼락 양지쪽에 기대 쉬고 있던 우리 모두가 고행 중인 스님이자 주인인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물론 누군가 또 폭력과 차별, 불평등 등에 맞서다 지쳐 쉬러 와야 하는 이런 곳이 있을 필요가 없는 사회가 정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의 힘과 노력이 많이 모자란 탓인지 갈수록 팍팍하고 힘든 곳들이 너무 많아 어떡하든 이 자애롭고 놀라운 공간이 잘 유지되어 지친 삶들이 잠시라도 평안과 위안을 얻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연대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마침 10주년 만에 그간 잘 알려오지 않았던 쉼터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다시 10년을 함께 지켜나갈 분들을 모신다고 한다. 그리고 9월 2일 화창한 초가을날, 뜻깊게 가수 정태춘 님이 10주년 후원콘서트를 열어 주신다고 하니 신나면서도 눈물겹다. 그곳에서 1년, 남편은 중증이었던 뇌경색 치료를 모두 마치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열심히 또 우리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다. 가끔 남편과 부산 외곽 둘레길을 걸으며 쉼터에서 보낸 1년의 고마움을 이야기해 본다. 단 며칠이라도 나도 다시 온전히 쉬어 가고 싶은 그곳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너무 그립다. 그러나 우리 모두 너무 지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나쁜 절망이나 시름에 젖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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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부산. 교육공무직 비정규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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