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으로 만난 '예언자'
    [그림책] 『예언자』(칼릴 지브란 글/안나 피롤리 그림 | 책읽는곰)
        2023년 06월 29일 03: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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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판원 아저씨가 남기고 간 도서 목록

    저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조산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류동에서 살았습니다. 응골 뒷산의 꼭대기에서 세 번째 우물이 있는 집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그 산꼭대기까지 보따리장수, 넝마주이, 각설이, 염소 장수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전집을 파는 외판원 아저씨도 찾아왔습니다.

    물론 우리 집은 고가의 전집 도서를 사줄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학교 성적만 중요하게 여기고, 문학의 가치는 똥으로 여기는 분이셨습니다. 그래도 외판원 아저씨가 가고 나면 도서 목록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도서 목록은 저보다 여섯 살 많은 형에게 아주 중요한 장난감이었습니다.

    여섯 살 많은 형은 도서 목록을 펼쳐 놓고 저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작가는?”
    그렇게 형은 고등학생은 알아도 초등학생은 알기 어려운 문제를 내고는 제가 답을 못 맞추면 딱밤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책을 읽기 전에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외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은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그 목록 가운데에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도 있었습니다.

    그림책으로 만난 『예언자』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예언자』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 얇은 책이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저에게는 또 하나의 경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예언자』보다 더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어쩌다 마음을 다잡아 읽다가도 한두 장을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어쩌면 『예언자』를 읽기에 제 영혼은 너무 미숙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림책 『예언자』를 만났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지를 보았습니다. 그 동안 제가 본 『예언자』의 표지는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한 느낌이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고전적인 느낌이어서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림책 『예언자』의 표지는 너무나 화사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붉고 커다란 꽃과 파랗고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붉은 머리를 하고 등불을 든 예언자가 보였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지혜로운 예언자가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밝고 온화한 미소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화원에 빨려 들어가듯이, 저도 모르게 책장을 넘겼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알미트라가 말했다.
    “사랑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곧이어 알무스타파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사랑이 그대들을 손짓해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그 길이 험하고 힘들어도 말입니다….”
    -본문 중에서

    알무스타파가 사랑의 지혜를 전하는 페이지 또한 붉고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독자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알무스타파가 전하는 사랑의 지혜를 경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름답게만 보이던 붉은 색채는 놀랍게도 험하고 높이 솟은 바위산입니다. 그리고 그 험준한 바위산 곳곳에 사람들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누군가 던져준 밧줄에 기대어 암벽을 오릅니다. 또 어떤 두 사람은 이미 정상에 올라, 노란 해를 등지고 서 있습니다. 마치 사랑의 손짓에 이끌려 험하고 힘든 인생길에 오르는 사람들 같습니다.

    결혼에 대하여

    알미트라가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이시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알무스타파가 대답했다.
    “그대들 부부는 함께 태어나 평생을 함께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있는 순간에도 서로 거리를 두어 천상의 바람이 둘 사이에서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사랑으로 옭아매지는 마십시오….”
    -본문 중에서

    알미트라가 결혼에 대해 묻는 장면은 평화롭습니다. 두 그루의 커다란 나무 사이로 작고 예쁜 이층집이 보입니다. 나무와 나무를 이은 빨랫줄에는 하얀 옷가지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일 층 창문에는 남자가, 이 층 창문에는 여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일 층과 이 층 사이에는 작고 흰 구름이 떠 있습니다. 마치 한 집에서도 서로 거리를 두고, 구름이 두 사람 사이에서 춤추는 것만 같습니다.

    그림책에 대하여

    알이루라가 물었다.
    “그림책이란 무엇입니까?”
    알이루리가 대답했다.
    “그림책의 그림은 몸이고 글은 마음입니다.
    그림책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생명체입니다.
    눈으로 보고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림책과 사랑에 빠질 것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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