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주만에 죽는 영화 많다.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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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31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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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협상에서 스크린쿼터의 경우, ‘미래유보’인 지금 상황이 미국의 요구대로 ‘현재유보’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린쿼터가 ‘현재유보’로 분류되면 현재 73일인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하루도 늘릴 수 없다. 반면 ‘미래유보’는 이를 늘릴 여지가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영화계는, 지난 해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때와 마찬가지로 술렁이고 있다. 봉준호, 김대승 감독과 함께 영화감독조합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을 만나 스크린쿼터와 한미FTA에 대한 입장, 그리고 한국영화의 위기상황에 대해 들었다.

       
      ▲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아래는 인터뷰 전문.

    – ‘현재유보’로 가닥이 잡혔다. 영화계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 한미FTA 협상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다가 ‘미래유보’에서 ‘현재유보’로 변경된다고 해서 다들 들고 일어난 상태다. 지난해 스크린쿼터가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된 것도 억울한데 미래에 대한 가능성마저도 짓밟다니 부관참시(剖棺斬屍) 꼴이다. 기가 막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75%라며 스크린쿼터를 줄였는데 지금은 27%이다. 다들 이런 상황을 걱정하던 차에 스크린쿼터를 ‘현재유보’로 타결한다면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알아서 불씨를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영화계는 스크린쿼터의 ‘미래유보’를 지키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아니면 한미FTA를 막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가.

    = 물론, 한미FTA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 지난날 우리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할 때에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한미FTA에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는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문제로 결집해 운동했지만, 이 문제가 한미FTA 선결조건이라는 점을 인지하면서 결국 한미FTA가 원흉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한 작년에 싸움을 통해서 영화인들 내부에서 연대의식이 싹텄고 자기 밥그릇만 가지고 싸워봐야 이길 없는 싸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FTA가 체결되지 않는다면 스크린쿼터는 제자리로 돌아 갈 수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FTA의 문제가 두드러지는 데에 처음 역할을 했던 게 영화인들의 1인 시위였다. 배우들, 여러 영화인들이 인터넷에서 돌파매질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알려냈다. 우리 문제로 나섰지만 FTA에 대해 사람들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했다.

    –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영화는 어떻게 될 것이라 보는가.

    = 멕시코처럼 될 것이다. 멕시코는 NAFTA 이전에는 연간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NAFTA 10년 후에는 연간 4~5편이 만들어진다. 멕시코의 잘 나가는 감독들은 할리우드로 갔고 자국영화는 폭삭 망했다. 미국에 가 있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블레이드2> <헬보이> 등 할리우드 영화를 감독-편집자)은 멕시코로 다시 돌아와서 영화를 찍으면서 자국영화를 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도 그럴 수 있다.

    – 지난해에는 100편 이상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스크린쿼터가 본격적으로 줄어든 올해의 전망은 어떠한가.

    =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 정도인 50~60편 정도가 제작될 예정이다. 작년에 1천만 명짜리 영화가 <왕의남자>와 <괴물> 두 편이 나왔다. 다들 1천만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영화제작에 돈이 몰렸다. 시나리오를 더 만져야 할 영화들, 미숙아들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줄줄이 손해를 보았고 그 여파로 올해 와서 영화편수가 확 줄었다.

    대박이 터졌다 하면 돈들이 몰리는데 그 거품이 빠지면서 하강기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영화의 사이클이 하강기다. 관객들도 작년 영화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한 원인도 있다. 아울러 스크린쿼터도 축소되어 점유율도 확 떨어지게 되었다.

    – 현재 상황이 한국영화의 하강기라면 다시 점유율은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닌가.

    = 한번 한국영화에서 멀어지면 되돌아 올 때는 2~3년이 걸릴 수도 있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영화를 이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한국영화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영화 중에는 대작이 없다. 지금은 누가 봐도 한국영화는 헤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올해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성기가 될 것이다. 1~2년 후에 좋은 한국영화가 나오면서 다시 상승기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어떻게 견딜 것인가.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최소한 1년에 넉 달은 한국영화를 틀어주었던 스크린쿼터였다. 쿼터는 항상 위험할 때 필요하다.

    가장 좋을 때를 빌미삼아서 그걸 축소하거나 없앤다면 결국 하강기에는 위험해진다. 정부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문화주권을 위협했다.

    – 스크린쿼터가 73일로 줄어든 올해 극장들의 영화 상영 패턴에 변화가 있는가?

    = 지난해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자면 나의 영화 <좋지 아니한가>는 3월 1일에 170개 상영관으로 소규모 개봉했다. 개봉 둘째 주부터 70~80여 개 극장이 ‘교차상영’을 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번, 기껏 두세 번만 상영을 한 것이다.

    그것도 아침 일찍 조조나 맨 마지막 타임에 나눠서 상영했다.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다섯 시나 일곱 시 타임은 다른 영화를,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이나 <드림걸즈>와 같은 외화를 상영했다.

    결국 개봉 2주 만에 서울에서는 조기 종영을 했고 3주 만에 전국에서 종영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극장들이 연초에 얼추 두달은 한국영화로 채워서 숙제를 해 놓는 분위기였다. 올해는 그렇지 않다.

    반면 극장들은 연초부터 외화를 더 공격적으로 상영한다. 심지어 영화 <쏜다>는 <300>이랑 붙으면서 개봉 첫날부터 교차상영을 했다. 극장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대박 한국영화 두세 편만 틀면 73일은 쉽게 채운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그들 마음에는 스크린쿼터가 없다.

       
     

    – 스크린쿼터가 줄어든 점 외에 ‘교차상영’도 지적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 하루에 두세 번 틀어도 한국영화 전체상영일수에서 하루로 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50일 내지는 20일로 줄어 든 효과이다. 대박 나는 영화는 하루 종일 틀겠지만 웬만한 영화는 첫날부터 반씩만 트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로 치기 때문에 스크린쿼터가 1/4로 준 것이고 이 정도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교차상영’과 같은 극장의 횡포는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

    = 유통업자들인 극장들은 좋은 한국영화, <괴물>이나 <타짜> 같이 대박 나는 한국영화는 몇 백 개 씩 뿌려서 두 달 동안 상영해서 돈을 벌고, 개봉 첫 주에 1, 2등 안에 못 든 영화는 2주 만에 교차상영하거나 종영해 버린다. 마케팅비를 적게 들인 영화,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 영화, 색다른 장르의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심판받을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생산자들, 제작자나 투자자들은 한두 편 외에는 죄다 손해 보게 되어 대박 영화 아니면 만들어서는 안 되는 구조가 된다. 한 번 당하고 나니까 겁이 나서 나도 확실한 영화 아니면 감독 못할 것 같다. 30만 관객 동원 아니면 500만이다. 양극화 되는 것이다.

    또한 확실한 전작 영화를 찍은 감독, 배우, 확실하게 성공했던 이야기가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점점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볼 기회를 빼앗긴다. 광고를 보고 다음 주에 간다면 이미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만 상영한다. 나도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보러 오후 5시에 극장을 찾았는데 밤 11시에 상영을 했다. 그래서 결국 <황후화>를 봤다.

    – 외국영화는 한국영화와 교차상영을 해도 이득인가.

    = 외화들은 제작비가 드는 게 아니다. 마케팅비 5~6억만 들이면 한국영화와 같은 마케팅을 할 수 있다. 그 정도면 30~40만 명만 봐도 이득을 본다. 벌써 외국 영화들의 마케팅비용이 상승하고 있다. <트랜스포머>나 <슈렉 3>과 같은 6월에 개봉할 외화들이 벌써부터 광고를 하고 있다. 3월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예고편을 2월에 극장에서 틀 때 이미 <슈렉 3> 예고편도 함께 틀었다.

    모든 외화들은 첫 주에는 반짝한다. 마케팅이 약한 한국영화 중간 중간에 끼워 넣는 교차상영으로 반짝 따먹는 것이다. 기존에 2주 정도 교차상영 없이 상영일수를 보장해 주던 룰은 다 깨졌다.

    – 극장들의 횡포에 대응하는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 영화계 전체가 모여서 만든 스크린쿼터 감시단이 있다. 작년에는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때문에 감시활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이제는 하루에 몇 편을 몇 회 상영하는지 등 지속적으로 극장들을 직접 감시하는 활동을 할 계획이다.

    – 한국 영화산업의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한국은 유통업자와 투자자가 같은 사람이다. CGV나 CJ엔터테인먼트나 같은 CJ 소속이다. 쇼박스나 메가박스도 오리온 계열이다. 롯데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도 돈 가지고 영화 찍고 그 영화를 자기가 배급하는 것이다. 투자와 배급이 분리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들이 외화도 수입한다.

    돈 되는 건 다 하는 기업들이고 그 중에 영화제작도 하나 있는 것이다. 거기서 돈을 벌지 못해도 외화를 들여오거나 극장배급을 해서 돈을 번다.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 때문에 이미 30~40년대에 투자와 배급을 분리하는 법을 만들었다. 독과점 때문에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관객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는가.

    = 100개나 200개 상영관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에게 어떤 보장 장치를 두느냐가 중요하다. 즉, 빈자들을 위한 정책이 중요하다. 작은 영화들, 마케팅비를 적게 들인 영화들, 예술적인 영화들, 다양성을 추구한 영화들, 스타 파워로 포장하지 않은 영화들에게 처음 프린트 개수만큼 2주 정도는 상영 기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1주 만에 없어진 영화가 많다. 너무하다. 어떤 영화든 아무리 관객이 적어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을 위한 싸움은 유통망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거래를 유지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그것을 제정하는 싸움이다. 이것이 스크린쿼터 이후의 싸움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 극장의 횡포, 수출의 감소, 세 악조건에서 한국영화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몇몇의 유명 감독들의 몇 편의 작품으로 뚫고 나갈 수는 없다.

    – 한미FTA가 ‘현재유보’로 체결된다면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

    = ‘현재유보’로 된다면 희망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작년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싸워나갈 것이다. 작년처럼 외롭게 두들겨 맞던 상황과는 다르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외로운 싸움이 아닐 것이다. 조직적으로 한미FTA 국회 비준을 반대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투쟁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 많은 분들이 한국영화계가 외화와 경쟁을 해서 스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극장이라는 유통업자들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몬다. 그런 틀을 만든 것이 한미FTA이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교통질서를 지켜줘야 사람이 치어 죽지 않는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은 차는 찻길로 다니고 사람은 인도로 다니도록 규범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룰을 만들지 않으면 강한 자들만이 더 달리게 되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못 다닌다. 길에서 공정하게라도 경쟁을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룰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문명사회의 정부가 할 일이이다. 관객여러분들도 거대 재벌인 극장업자들과 중소기업인 제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울 때 공정한 경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영화 만드는 사람, 배우만 보지 말고 산업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진정한 공정성이 망가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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