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학에 대한 나의 믿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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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31일 08: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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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송은 『죽은 소설가의 사회』에 수록된 일련의 단편들을 통해 문학이라는 영토가 왜 그리고 어떻게 ‘오래된 미래’가 되어버렸는가에 대해 말한다.

문학 그 푸르른 날과 그 푸르름이 황폐화된 오늘의 실상이, 마치 박태원과 주인석의 ‘소설가 구보 시리즈’처럼, 윤남준이라는 작가의 분신을 통해 일련의 이야기들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단편 <한 장의 흑백사진>과 <죽은 소설가의 사회>는 그 양쪽 끝에 놓인 작품들이다.

<한 장의 흑백사진>은 낡고 빛바랜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여섯 친구의 인생사를 담담히 회고하는 내용이다. 이른바 문청시절에서부터 거슬러 현재의 시점까지 여섯 명의 라이프스토리가 있는 것.

   
  ▲ 호영송『죽은 소설가의 사회』 책세상
 

아라비아 숫자 1부터 6까지로 명명된,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며 각자의 고유명사를 갖는 그 친구들은 연극으로 뭉쳤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또 죽음을 맞는다. 그들 여섯 명의 각기 다른 삶을 묶는 것은 이른바 ‘따로 또 같이’. “그 젊은이들은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 침몰되기를 거부하며, 더 나가서 죽음과 망각을 이겨내려는 듯이, 그렇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남준을 쳐다보고 있다.”(p.103)

반면 <죽은 소설가의 사회>에서는 작가가 알지 못하는 집단에 끌려가 재미없는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린치당하는 국면에 이른 작가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요새 같은 세상에 무슨 지랄로 소설은 써가지고?”(p.166)라는 무지막지한 핀잔과 함께 갖은 굴욕을 당하는 한편 폭력과 섹스 그리고 판타지를 쓰라고 강요당한다. 참으로 참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호영송은 위 두 극단의 상황을 <죽은 소설가의 사회>의 마지막 대목에서 다음처럼 요약한다.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알던 소설은 우리에게서 이제 하나의 쓸모없는 노병(老兵)처럼 사라져가는 것인가?”(p.185)

그러나 호영송은 결코 ‘문학의 오래된 미래’에 대해 왕정복고의 착오적 한탄에 빠지거나 분기탱천해 마냥 핏대를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 인용에서 생략된 마지막 문장은 다름아닌 “그런데 여기에 대답할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 아닐까?”이기 때문이다.

곧 작가 호영송은 오늘날 작가로 하여금 다시금 삶과 문학을 고민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셈이다.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고 보니,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호영송의 소설이 그다지 대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그렇다. 『죽은 소설가의 사회』는 소설 혹은 문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고민하는 이야기이지, “TV나 영화, 개그맨이나 대중 연예인과 경쟁”(p.184)할 수 있는 오락을 던져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민이 오락이 되는 것이야말로 문학이라는 오랜 영토가 지닌 알파요 오메가이지 않을까?

그 알파와 오메가에 덧붙여, 책 말미에 실린 <한 장의 흑백사진>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평 한 대목을 읽어보시길.

“그렇지만 이런 다소 감상적인 꿈이라도 꾸지 못한다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겠는가.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 연극의 피에로들. 그렇지만 인생 자체가 한 편의 연극판이고 보면 무대는 항시 있어야 하고, 거기엔 누군가 등장하여 자기 고유의 몫을 온몸으로 연출해야 하는 법. 암이라든가 죽음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 실로 어리석은 믿음에 기생하여, 그 믿음을 양식으로 하여 생존해가는 것이 이른바 예술이 아니었던가.”

여러분은 그 ‘믿음’을 믿는가? 원컨대, 부디 믿으시기를! 나는 나의 궁핍한 삶으로 인해 이제 막 그 믿음을 놓고자 한다. 비록 여태껏 이름 없는 백면서생 독자노릇에 불과했던 바이지만, 어쩌면 이미 오래 전에 그 믿음을 놓았어야 보다 현명한 일이었으리라.

문학, 곧 읽고 쓰는 것으로 삶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소명 받은 자의 몫으로 이제는 보낸다. 나의 믿음은 삶-현실을 이기기엔 터무니없이 사소하나니 새치 머리와 주름진 이마, 시커먼 얼굴로 그저 살지어다. 잘 가라! 내 묘비명이고자 했던 벗이여! 그저 “사랑하라, 희망 없이Love without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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