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는 성장주의 송영길은 우국지사
        2007년 03월 29일 03: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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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 실세 김근태, 천정배 의원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단식에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타결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들어 ‘건강 단식’이라 비아냥댄다. 스무날 넘게 굶고 있는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를 생각하면 눈물겹지만, 적게 굶는다 비난하지 않는 것이 문 대표의 마음이리라.

    어떤 사람들은 대권을 염두에 둔 ‘정치쇼’라 비난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에게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댄스 가수가 하면 ‘댄스쇼’고 정치인이 하면 ‘정치쇼’다. 김근태와 천정배는 대권을 염두에 두면 되고,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반대 투쟁의 계기로 삼으면 된다. 정치인들의 단식은, 행정 관료들의 밀실 협상을 조금이나마 국민 정치의 장으로 옮겨놓았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이다.

       
      ▲ 한미FTA 반대하며 국회 본관 로비에서 2일째 단식중인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 28일 오후 한미 FTA를 걱정하는 지지자들에게 한미FTA 협상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근태 의원 홈페이지)
     

    그런데 김근태의 변(辯)에는 미심쩍은 게 많다. “정부는 오늘의 협상 결과가 또 다른 저성장과 더욱 심각한 양극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한미 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3월 27일)” 같은 말이 그렇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개 ‘양극화’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데, 김근태는 거기에 ‘저성장’을 보탠 셈이다. 물론 한미FTA가 더 악화된 ‘저성장’을 불러온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근태의 말에서는 왠지 성장주의의 냄새가 난다. 그는 작년 5월 4일 대한상공회의소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높은 성장입니다. 오늘 여기에 성장을 말하기 위해 왔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저는 성장론자입니다.” – 「한국경제, 고도성장과 사회적 대타협이 간절하다」

    열린우리당식 ‘성장’이 양극화를 불러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설사 한미FTA를 안 한다 할지라도, 한미FTA를 한 것과 똑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외연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한미FTA에 찬성하는 것으로 표변하게 된다. 이것이 문성현의 단식과 김근태 단식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김근태는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개성공단 아닙니까(<CBS 뉴스레이다>, 3월 29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가 이른바 NL 출신이므로 개성공단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20개 정도 기업에서 1만 3천 명이 일하는 개성공단을 ‘제일 중요한 것’이라 인식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이런 인식은 “2.13 베이징 합의 이전의 FTA 협상과 그 이후의 FTA 협상은 다르다 …… 마지막 정치적 타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개성 원산지 문제”라는 정동영의 한미FTA 찬성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를 교환 조건 삼아 미국의 북한 인정을 끌어내겠다는 노무현 정권의 한반도 전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 찬반 문제는 여러 정치인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정운찬은 28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강에서 “양국이 호혜적으로 관세를 인하해 자유무역의 이익을 증진하는 낮은 수준의 FTA를 이번 기회에 체결하자”고 주장했다.

    이른바 자유무역론쯤 되겠는데, 이런 정책을 가진 사람을 ‘개혁’이니 ‘진보’니 하는 상표를 붙여 팔아먹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노동당의 일부 간부들 역시 말로는 한미FTA에 반대하면서 정운찬 류를 몰래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신진보주의’니 ‘공격적 진보대연합’이니 ‘개방형 경선’이니 온갖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다.

    송영길이 가장 압권이다. “나름대로 그 분들이 단식하는 게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가 담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열린우리당의 전직 지도부들이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한겨레>, 3월 27일).”

    데모하고 단식하는 건 시민단체, 민주노동당이나 할 짓인가? 그렇다. 1980년대에는 열혈투사였고, 지금은 청와대와 여권에 들어 앉아 한미FTA 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들에게는 ‘우국지사’다운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민초 나부랭이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우국충정’은 예나제나 그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을 숭배했고, 좀 나이 든 지금은 박정희를 존경한다. 어쨌거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우국지사’이긴 매 한가지니까.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반대했다. 무슨 일이든 찬반이 있다. 그러나 국가지도자가 될 만한 분이라면 즉자적, 단기적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봐야 한다(<한겨레>,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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