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살아있는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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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6일 10: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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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에서 1주일간 머무는 동안 우리는 세 개의 공동체를 만났다. 그 중 산티아고 변두리에 위치한 ‘보스께(Bosque)’라는 마을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보스께 문화센터-배움의 공동체’가 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마을 사람들이 직접 투자하여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장기, 뜨개질, 춤 등의 문화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노인들이 사는 El-Bosque 공동체

우리는 이곳에서 3일 동안 30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탈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9살 난 아이부터 70세 가량 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이 섞여 있었다. 최소연령과 최고령자가 함께 하는 탈 워크숍은 우리로서도 처음이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성인문화, 어린이문화, 노인문화를 갈라치기 해놓고선 그것을 곧 상업적 전략으로 재생산하는 문화가 아니라 성인용ㆍ 어린이용 경계가 없는, 어른과 아이들이 더불어 배우는 그 통합의 문화가 보스께 공동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었다.

   
▲칠레 El Bosque 공동체와 함께 한 탈 워크숍. 석고붕대로 각자의 얼굴을 떠서 탈을 만들고(오른쪽), 탈의 이미지에 이끌리어 걸으면서 인물을 구축해가는 모습(왼쪽)이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탈을 만들기 위해 바닥에 눕고 석고붕대로 얼굴 모양을 뜬다. 나는 주름살로 가득 찬 할머니의 얼굴에 석고를 펴 바르면서 생각한다. 여기 계신 노인들은 ‘어떻게 하면 주름을 감출 수 있을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나의 주름이 아름답게 보일까’를 생각하는 분들이라고.

탈을 뜨느라 한 시간 가까이 반듯하게 누워 있어 피가 잘 안 통해서 그런지 할머니 한 분이 자신의 팔뚝을 주물러댄다. 나는 석고 묻은 손을 얼른 씻고 와서 할머니의 몸을 주물러 드렸다. 연약하고 물컹거리는 살이 내 손안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몇 명 낳아 기르면서 가난을 이겨내고, 고된 노동 속에서도 음악과 춤, 예술과 더불어 살아온 나는 이렇게 늙었으나 여전히 희망한다고…

자신들의 얼굴에서 떼어낸 각자의 탈을 바라보는 얼굴들에 수줍음이 배어있다. 이 탈은 당신들이 죽어서 이 땅에 없을지라도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대대로 대물림되어 천 년을 살 것이고 당신들의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지킴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자 탄성을 지르며 놀라기도 하고 더러는 엄숙하게 탈을 바라본다.

나는 이곳의 노인들이 한지로 탈의 안쪽에 내면의 색깔을 바르고, 바깥쪽엔 다양한 색깔로 탈의 꿈을 표현하는 동안 그들의 주름진 손에서, 포근한 미소를 머금고 작업에 집중하는 얼굴 주름살에서 아름다운 삶의 결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스께 공동체는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매일 같이 탈 워크숍 시간을 기다리는 행복한 마음들, 그들이 직접 만든 주머니와 양초, 종이를 접어서 만든 카드에 에스파냐어로 정성껏 써 준 편지들, 그리고 우리가 회복해야할 지역 공동체의 원형을 만나게 해주었다.

O’Higgins에서 만난 춤 공동체

칠레 남부지역에 위치한 플로리다의 O’ Higgins라는 마을은 춤 공동체로 정평이 나있다. 6살 꼬마 아이들부터 60세 가량 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 마을 사람들은 칠레의 전통 춤을 중심으로 지역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마을이 춤 공동체가 되기까지는 무용 선생님 ‘루이스’의 열정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칠레의 국립발레단의 무용수였는데 그의 사회주의 정치 성향 때문에 해고되었다고 한다. 그는 국립발레단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이 지역 공동체 사람들과 교류를 해왔는데 해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들어와 살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춤을 가르쳐주었고 마을 축제를 만들어냈다.

   
▲춤 공동체의 아이들(왼쪽 사진)과 어른들의 춤 공연(오른쪽 사진). 이들의 의상은 공동체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란다.
 

무용수 ‘루이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운동의 기반에 대해 생각했다. ‘지역 공동체’에 기반을 두었던 그는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되었지만 복직투쟁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삶과 운동이 일체할 수 있는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춤’의 씨앗을 뿌려가며 자기 운동의 생명력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가난한 민중의 삶에 문화예술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공동체 사람들은 우리의 공연을 관람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춤과 노래를 선사하기 위해 1시간이 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추는 칠레 원주민 ‘마푸체’의 춤, 청소년, 어른들, 노인들이 갖가지 춤 의상을 갖춰 입고 다양한 춤을 선보였다. 소박함과 화려함이 어우러진 의상들은 이 지역 공동체 아주머니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들에겐 우리의 공연과 교환할 자신들의 문화를 갖고 있었다. 초청 공연료나 밥과 잠자리로 공연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계 너머의 다른 경지를 보여줄 수 있는, 교환할 수 있는 문화를 키워가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선물로 받은 칠레 원주민들의 깃발과 목걸이, 허리띠를 만지작거리며 간절히 기원했다. 이들의 생기 넘치고 행복한 춤 공동체가 건강하게 지속되기를, 그리고 한국 땅에서 근대화의 이름으로 철저히 파괴된 지역 공동체의 전통 문화, 사라진 대동 춤, 계절의 주기에 따라 공동체가 함께 했던 놀이 문화가 회복되어지기를….

슬럼가에 뿌리를 내린 힙합그룹 LEGUAYORK

산티아고에 있는 또 하나의 공동체. 이곳은 소문난 빈민지역으로 마약, 알콜 중독자가 많고, 폭력, 도난사고가 빈번한 곳이라고 했다. 가로등 없는 어두컴컴한 밤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를 안내하는 마리셀라가 카메라와 가방을 보이지 않게 하고 절대로 혼자 떨어져서 걷지 말라고 계속해서 경고한다.

이 마을에서 우리는 힙합그룹 Leguyok을 만났다. 그들은 칠레에서도 꽤나 유명하고 국제적으로도 공연을 하러다니는 힙합그룹이지만 자신들의 명성과 음악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 빈곤하고도 위험한 마을에 살면서 지역문화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힘쓰고 있었다. 그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음악들을 공급하고 칠레는 물론 국제적인 사회 문제들도 전해주고 있었다.

Leguayok은 우리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스튜디오로 올라가라고 했다. 낮은 천장 아래로 놓여진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간 2층의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그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생방송이라는데 어찌나 자유스럽고 편안하게 진행을 하던지 우리들 역시 아이들 놀이처럼 인터뷰를 했다.

칠레에 대한 소감, 우리의 남미 투어에 대한 계획, 한국의 문화예술, 한국의 정치문제들, 한국의 진보적인 운동…등에 대해 질문들을 던졌다.

우리가 에스파냐어로 소통을 하지 못해서 마리셀라(칠레 문화활동가 그룹 CENDES의 의장)가 영어 통역을 하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도 그들은 묻고 싶은 것을 다 물으면서도 유쾌하게 진행하는 여유를 보였다.

   
▲Leguayok의 방송국에서 인터뷰(왼쪽)하고 그들의 연습실에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모습.
 

라디오 인터뷰를 마치고 그들의 연습실이자 텔레비전 방송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칠레 원주민 마푸체의 전통악기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재미있는 악기들을 하나씩 들고 춤을 추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Leguayouk은 이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쉼터와 문화센터도 만들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청소년들이 이 곳에 와서 책도 읽고 인터넷도 하고 음악, 미술 활동도 한다고 했다.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와 더불어 존재하고 전 세계의 억압받는 이들에 대해 노래하는 Leguayouk의 힙합을 들으면 누에바 깐시온의 전통을 현재적으로 변형하여 계승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비올레따 파라, 빅토르 하라, 유빵끼 등으로 이어지는 누에바 깐시온의 정신을.

“예술가에게는 예술과 삶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미래에 투사하고, 모든 국가의 민중이 절규하는 사회 변혁을 위한 끊임없는 요구를 지원할 기회가 있다. 누에바 깐시온 운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로 이끄는 모든 것들과 나란히 있어야 한다. 계급이나 국가가 없는 예술, 그 예술이 주는 메시지는 희망과 인간다움이 지닌 가장 고결한 이상인 것이다 ” – <누에바 깐시온 결성선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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