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람들"
        2007년 03월 25일 09: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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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리 속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인정하지 않아. 촛불은 자기 몸을 태우잖아…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말든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그게 촛불이잖아. 난 인정하지 않아… 인정 안해."

    935일째 대추리 촛불 행사에 참여한 방효태(71)씨는 촛불이 다 타들어가고 참가자들이 모두 떠나도 마지막까지 남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서울로 나서는 기자를 배웅하면서도 연신 “(투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세상 사람들이 대추리를 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방효태 할아버지는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매일 촛불을 들었다. 정당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대추리 주민들을 범대위에 놀아난 빨갱이로 매도하는 정부와 언론을 향해 인간의 기본을 벗어났다며 꾸짖어 보기도 했다.

    추수를 앞둔 지난 가을. 그는 곡식에게는 해롭고 지나가는 행인에게는 좋은, 동부새(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가 불어와 안 좋은 징조라며 불안해 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차마 ‘마지막’ 이라는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은 그는 약주 한 잔을 걸치는 것으로 속울음을 대신했다.

       
      ▲ 김영녀(81) 할머니가 지난 해 찍은 주민들의 단체 사진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촛불 집회가 끝나자 몇몇 주민들은 서로 부등켜 안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그간 같이 싸워온 사람들이 행여 마음을 쓸까 연신 웃으려 했지만 자꾸 빨개지는 눈시울은 어쩌지를 못했다. 노구를 이끌고 싸우다 울어도 보고, 세상을 향해 꾸짖어 보기도 하고, 매일 밤 촛불을 들었건만 그는 결국 4대 째 살아오던 대추리를 떠난다. 

    갈퀴 손이 되도록 일궈낸 황새울 들판이, 바람이 머무는 능선과 붉은 노을이, 평화로웠던 대추리의 공동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4일 오후 7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지난 4년간의 투쟁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촛불 행사를 열기 위해 마을 농협 창고로 모였다. 야만의 공권력 앞에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야 했던 주민들에게 촛불 행사는 투쟁의 원동력이자 삶의 근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심정’에 대한 말을 아꼈다. 말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지난 4년간의 투쟁 속에서 온 몸으로 체험했던 터라 더 이상 할 말도 또 말할 기력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떠나려고 하니 자꾸만 눈물이 난다. 젊은 사람들에게 정말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평화’이다. 우리는 이기지 못했지만 이제 젊은 사람들이 꼭 되찾아 달라. 여러분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같이 싸웠던 분들에게 보답을 못하고 고향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던 이 심정을 여러분이 잘 알아 줬으면 한다. 주민들을 대표해서 사과하고 또 정말 고맙게 생각 한다"

    주민을 대표해 인사에 나선 대추리 노인 회장 방승률(71)씨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누르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당신의 허탈함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보다도 같이 싸웠던 이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안겨주지 못한 것에 더 가슴아파 했다.

    그는 "다시 또 죽을 힘을 다해 사는 것 말고는 별 수가 없다"라며 "군사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현 참여 정부의 민주주의가 참 이상하다"고 했다.  전 대추리 이장 김지태씨의 아버지 김석경(78)씨도 "같이 힘들게 많이 싸운 사람들에게 보람을 주지 못해 많이 미안하다"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걸 보니 마지막인 것 같긴 한데… 내가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라며 씁쓸해 했다.

    지난 4년간의 투쟁은 김석경씨에게 두 그룹의 ‘웬수 집단’을 만들어 줬다. 하나는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정치권이며 또 하나는 먼저 고향을 떠난 이들이다. 김씨는 "민주노동당만이 우리와 함께 싸웠다"면서 먼저 고향을 떠난 이들에 대해선 "안 좋은 감정이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아물지 못한 상처를 드러냈다.

    김영녀(81)씨도 착잡하긴 마찬가지. 주민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씨는 "이젠 탈탈 털어버려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어떡해든 서로 다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대신했다.

    그러나 촛불 문화제가 마지막이라고 해서 투쟁마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평택범대위는 앞으로도 계속 미군기지 이전 비용 문제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토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새로운 대추리 투쟁을 전개 할 예정이다.

       
      ▲ 24일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935일째를 맞이하는 마지막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김택균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은 "그간 촛불 문화제가 있어 오늘까지 뭉치며 투쟁 할 수 있었다"라며 "비록 지금 촛불이 꺼져도 우리의 땅을 다시 되찾을 때까지, 또 우리가 계속 대추리 도두리를 기억하는 한 우리 마음속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정현 신부도 "1천일 가까이 처절하게 싸운 주민들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라며 "곧 평택미군기지확장을 추진한 부끄러운 자들이 심판 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만은 대추리나 도두리의 땅을 잊지 말아 달라고 감히 호소 드리고 싶다"라며 "국회 통외통위 의원으로서 늦었지만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라도 청문회를 열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촛불 문화제가 끝나자 곳곳에선 참아왔던 울음들이 터져나왔다. 항상 투쟁의 선봉대에서 주민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던 문정현 신부는 목놓아 우느라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또 한쪽에선 어머니들이 서로 부등켜 안고 눈물을 닦아주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떤 이들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느라 성급히 담배를 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의  웃음과 울음이 올올히 새겨진 농협 창고는 한동안 낮은 울음 소리와 짙은 한숨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투쟁을 기약하는 이들의 외침과 다짐이 메아리가 되어 다시 농협 창고를 메우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9월 1일부터 시작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대추리 도두리의 촛불 문화제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한편, 이날 행사엔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김은진 최고위원, 김용한 경기도당 위원장, 민주노동당 인권위원장 이덕우 변호사,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의장, 통일연대 대표 한상렬 목사 등 각계 시민 사회 단체 관계자 400여명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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