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 앙뜨와네뜨 같은 노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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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3일 08: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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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한

    많은 국민과 많은 정치인들의 삶도 지난 1년 간의 한미 FTA 협상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겠지만, 내 삶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국민투표라는 최후의 안전판을 생각했던 것은 작년 1월이고, 스위스 사례를 검토한 것은 2월의 일이다.

    급하게 대외경제연구원의 CGE 모델의 정합성을 검토한 것은 3월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YMCA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여론을 모으기 위해서 몇 달간 강연을 다녔고, 결국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가 되면서 강연에서 했던 얘기들을 모아서 책을 냈다.

    그동안 남들이 보는 협상 자료보다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흐름에 대해서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편이고, 지나치게 선동적이거나 넘겨짚은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편이다.

    이제 돌아와서 생각하면 회한이 많이 든다. 원래 생각했던 연구들이 뒤로 밀렸고, 내가 잡아놓은 공부 계획들도 뒤죽박죽이 된 상태이고, 그렇다고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1주일이 지나면 그 어떤 형태로든 한 가지의 결말이 나게 될 것이고, 파국일까 아니면 또 다른 출발일까를 놓고 복잡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또 다른 흐름 위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그 1년을 회상하면서, 그리고 마지막 1주일을 생각하면서 지난 외국의 사례들과 지난 시간에 봤던 자료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2. 첫 번째 생각 : 한국은 OECD 국가가 아니다

    10년 전에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YS가 조급하게 OECD 가입을 추진했다. 그 후에 우리나라가 받은 경제적 상처와 함께 그래도 시스템이 진화하게 되는 두 가지 효과가 동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OECD 가입에 대한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고자 했던 편이다.

    한미 FTA 추진과정을 보면서 한국은 아직 OECD 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다. 이런 정부는 OECD 내에 없고, 또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보도매체에 의존하면서 대충 결정하는 국민도 OECD 내에 없다. 있다면 한국과 같이 OECD에 들어간 멕시코 정도이다.

    EU 통합과정은 물론이고 화폐 통합 혹은 그 근간이 되는 ‘마스트리히 조약’ 같은 대부분의 주요 내용이 국민투표 과정을 거쳤고, 그 속에서 아주 복합적인 계급적, 계층적 해체와 재조합 같은 것들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우리는 그저 대처주의의 신봉자들 정도로만 알고 있던 영국은 화폐통합을 거부하고 아직 파운드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건 국민들의 선택이었다. 당연히 EU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스위스는 아예 EU 가입 자체를 거부해버렸다.

    형식적인 청문회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그런 소소한 절차의 문제를 지금 묻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이든 의원내각제이든 OECD 내의 선진국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경청하려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노동대책을 강화하면서 기존의 노동부를 노동-연대부(Travail et Solidarité)로 바꾼 것이 좌파 정부 아래에서인가? OECD 국가 내에서는 우파 정부도 사회적 연대 정도는 추진하며, 이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OECD 정부 아니고, 우리나라 국민도, 미안하지만 아직 OECD 국민 아니고, 대통령은, 박정희 시절과 전두환 시절부터 하나도 바뀌지 않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상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아버지이길 자처하는 전지전능한 시스템의 영도자, 그것은 87년 체계의 정신은 아니다.

    87년 체계는 호민관을 원했지, 영도자를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가 국민소득 1만달러 이전에 보았던, 그리고 OECD에 가입하기 전에 보았던 바로 그 영도자의 모습이다. 이순신이길 원하고, 세종이기를 원하고, 때때로 주몽이기를 원하는, 그런 영도자는 이미 우리가 지난 87년 체계의 호민관과는 다르다. 역사는 이미 20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

    3. 마리 앙뜨와네뜨와 노무현 대통령

    나는 개인적으로 마리 앙뜨와네뜨를 좋아한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로 악명 높은 그녀도 시스템의 희생자이고, 이 말이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녀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하는데, 민중들에게는 그런 말이 퍼졌다.

       
      ▲ 마리 앙뜨와네뜨의 초상화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 왕가 사이에 정략 결혼한 그녀가 가졌던 사상 속에는 아직도 볼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것은 사상사의 영역에서 하는 말이다.

    당시의 프랑스 민중은 마리 앙뜨와네뜨를 정말 싫어했다. 단두대에 결국 루이 16세가 올라갔지만, 그 시절에도 재판이 있었다. 루이 16세는 단 한 표 차이로 처형이 결정되었다. 역사는 그를 혁명의 악인으로 재단하지만, 실제 재판에서 그는 간발의 차이로 그는 처형됐다. 만약 한 표만 더 얻었어도 추방되거나 강등되는 정도로 끝났을 만큼 애증이 갈렸던 인물이다.

    그에 비해 마리 앙뜨와네뜨의 처형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그만큼 싫어했다는 말이다. 외국인이 왕비였던 것도 싫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도 싫고, 오죽했으면 사실이 아니라고 나중에 역사가들이 얘기하는 동성애 사건까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겠는가.

    마리 앙뜨와네뜨가 했다는 "바게트가 없으면…"이라는 말은 삽시간에 파리 시민에게 퍼져나가서 자녀들을 먹일 수 없는 어머니들이 그 날 바로 걸어서 한나절은 족히 걸리는 베르사이유궁으로 달려갔고, 그날 오후의 남편들이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시 궁으로 달려갔다.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근대의 출발이라고 하는 바로 그 프랑스 혁명의 출발 사건이다.

    "도대체 농업 말고 어느 분야에서 양극화가 일어나고 누가 일거리를 잃느냐,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앙뜨와네뜨를 머리에서 떠올렸다. 일부 국민은 아주, 그리고 일부 국민은 조금 대통령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 말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과 정확히 똑같은 말이다.

    당장 농업만 망한다고 하더라도, 농업에서 몰려나온 인력들 그리고 지금까지 국민경제의 버퍼 역할을 해준 농업의 역할이 실종되면서, 소위 도시빈민 경제나 서민경제 같은 것이 연쇄적인 타격을 받는다. 국내 시장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정부도 예상하는데, 그 부문에 해당하는 종사자들 역시 자신의 직장에서 보다 열등한 직장으로 밀려나거나 거리로 나앉게 된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전제하듯이, 아주 고강도의 기술혁신이 벌어져야 한다. 희망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까지는 길거리에 나앉게 될 사람이 대미수출이 늘어나는 -섬유업도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부 부문을 빼고 경제 전부문에서 발생하게 된다.

    도대체 어디가 망하느냐? 이렇게 물으면 나는 공무원 빼고는 일단 다 위험하다고 말하겠다.

    결국은 GDP가 증가할 것 아니냐?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간까지는? 이런 사회적 질문에 대해서 "그런 건 없다"고 말하면, 마리 앙뜨와네뜨가 했다는 "고기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과 완전히 정보값이 일치하는 문장이 된다.

    4. 생존권, 오 생존권!

    전체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노무현의 정치주의가 상당히 많은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된 상황이 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인권탄압도 아닌데 정책 가지고 단식해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서 대표적인 단식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새만금 때의 단식, 지율스님의 단식, 농업에 대한 강기갑 의원의 단식, 그리고 비정규직과 관련된 KTX 여승무원들의 단식, 이 모든 것이 "곤란하다"는 상황인식일까? 이러한 인식은 그야말로 "매우 곤란하다." 이런 모든 것들은 정책과 관련된 단식이었다.

    국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법치주의에서 국민들에게 부여하는 권리가 몇 가지 있다. 그리고 국가의 권리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권리가 있다.

    한국의 역사가 발전했을까? 전두환 정권 시절, 정확히 말하면 1987년 6월, 사람들은 기본적인 인권과 관련된 민주주의를 위해서 떨치고 일어났다. 그만큼 고급스러운 권리를 20년 전에 이 땅의 사람들은 외쳤던 셈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100명이 넘게,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이 단식의 행렬이 그렇게 고급스러운 인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인가? 오히려 "배 고프다"는 그야말로 생존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협상의 결과를 알려달라거나 더 투명하게 해달라, 이런 제도 개선과 같은 고급스러운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이 지금 동조단식을 하거나 집회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이것이 일부 직업 운동가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단히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얘기라서 그렇지만 이건 운동을 안해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간단한 기자회견 혹은 평화로운 서명운동을 하더라도 ‘동력’이라는 것이 모이지 않으면 하기가 어렵다. 일부 극렬한 직업 운동가들이 자기들끼리 결정해서 단식을 할 수 있는지 아시는가? 아무리 ‘하꼬방’의 엉터리 모임 같은 시민단체라도 운영위원회나 집행위원회가 있고, 그 뒤에 회원들이나 지지세력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서 최소한의 동력이 나오지 않으면 기자회견 하나도 하기 어렵다. 운동의 현실이 그렇다.

    지금의 단식과 집회, 이 동력은 바로 민중 생존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민주노동당이 한미 FTA를 명분으로 정치적 성장을 할 것인가? 불투명하다. 김근태나 천정배가 한미 FTA로 대통령과 각잡는다고 해서 갑자기 엄청난 정치적 권력이 생길까? 그렇지 않다.

    이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름 아닌 대중적 동력이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5년만에 비정규직이 지금 800만명이 넘는다. 그나마 노동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일하는 청소년 알바를 빼고도 그렇다. 이런 비정규직의 세전 평균소득이 월 119만원이다. 실제 집에 가지고 가는 돈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0만원도 안된다.

       
     

    이런 사람들의 식구가 세 명이라고 생각해보자. 2,400만명이다. 국민의 절반이 지금 ‘서민’이라는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절대빈곤 수준이다. 국민소득이 2만불이면 뭐하는가? 지금 절대빈곤이 국민의 절반인데 말이다. 이 정도면 국민경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봤을 때 완전히 위기다.

    국민통합이니 국론분열이니 그런 고급스러운 용어나 인권 같은 얘기할 상황이 아니라, 절반이 이미 부자나라 한국에 ‘계약직 노예’ 같은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이 수치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그런데 한미 FTA로 이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운명이 나아지거나 인생이 구제될 것인가? 이 사람들이 값싼 미국산 소비자에 의해서 경제적 삶이 나아지겠는가? 이미 대형할인매장과 프랜차이즈에 의해서 완전히 분해된 서민경제가 다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되겠는가?

    여기에 350만 농민 중 절반이 붕괴된다고 생각해보자.(내 계산으로는 장기적으로는 이보다 많이 농업에서 퇴출된다) 한 농가가 2명씩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350만명이다.

    2,400만명에 350만명을 더하면 2,750만명이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삶이 곤란해지고,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즉 최소한의 거주권과 보건권 그리고 배고프지 않을 권리를 확보하는게 어려워지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한미 FTA로 "또 다른 기적을 만듭니다." 경제가 무슨 정신으로 무장된 국가대표팀이 히딩크를 만나 일궈낸 기적처럼 박수만 치고 응원만 하면 세계4강에 한 번에 올라가는 운동경기인줄 착각하시는가.

    지금 한미 FTA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단식의 동력은 바로 생존권이다.

    "나, 배고파…"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는 국민경제도 아니고, OECD 경제도 아니다. 단기 투기자금이 환율을 최대한 올려놓고 마지막 시점을 바라보며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폭발 직전의 상황이다.

    이게 한미 FTA에 대해서 걱정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경제적 실체다. 평균적으로 119만원을 받고 서울이나 수도권 같은 대도시에서 800만명의 사람들이 이 협상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87년 6월과 모든 상황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간선제를 지키겠다는 전두환의 호헌이나, 이미 하기로 한 것이니 일단 협상은 끝내겠다는 노무현이나 내 눈에는 다를 바 없다. 그 때에도 집회의 자유는 없고, 막는데도 불구하고 거리로 사람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오면 구속시키겠다는 것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고, 그 날의 언론이나 지금의 언론이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인권과 민주화를 외쳤던 대학생 대신에 ‘생존권’을 외치는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이 그 단식의 대열을 채우고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생존권, 가장 무서운 인간의 권리다. 2007년 3월, 민중을 움직이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고급스러운 권리가 아니라 바로 생존권 그 자체이다. 여기에 미국산 쇠고기는 불안해서는 자식들에게 못 먹이겠다는 보건권, 그 고급스러운 권리 하나가 첨가된 것이 다른 점이다.

    생존권을 무시하고 버텼던 정권은 인류 역사에 없다. 지금 그런 전환점에 있는 것이다. 민중들과 모든 비정규직, 그 경제적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임금 인상이나 인권 같은 고급스러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에 의한 최소한의 직업안정성, 그 삶의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요구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요구에 "엣따, 한미 FTA"를 답이라고 던져주는 이 엉뚱한 국가운영과 경제운영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마리 앙뚜와네뜨의 답변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4. 폭발할 것인가?

    지금 상황은 민중직접행동이나 국민저항권 같은 대통령의 하야를 염두에 둔 국민적 폭발로 갈 것인지 아니면 ‘협상 2차 국면’으로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분기점이다.

    정말로 배가 고픈 민중들이 스스로 단식을 결심하는 순간, 정권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껍데기 정치주의자’들이 설 자리는 없다.

    지금의 정권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최소한의 생존권을 해결하는 ‘국가의 정부’로서의 자격도 없다. 폭발의 에너지는 지금 한껏 부풀어 올랐고, 대통령은 여기에 기름을 붙는 앙뜨와네뜨형 답변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정확히 20년 만에 역사는 반복되는가? 30일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을 들으면서, 역사의 반복 혹은 87년 체계의 복원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배고픈 민중은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 이런 명제는 경제학에서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명제이다. 배고픈 일이 있으면 안 되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시정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법전에는 그런 명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소위 ‘한미 FTA 협상 1차 국면’을 평가하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경제가 얼마나 고장나 있고, 사람들의 실질적 삶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면서 경제운용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순간이다. 그 평가가 다 끝나고 국민적 논의와 최소한의 합의 속에서 다시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4~5년 가는 협상이다. 이제 그 첫 번째 1년, 그리고 그 첫 번째 격돌을 사용했을 뿐이다. 길게 가는 협상에서 2~3번의 파국적 충돌은 국제 협상사에서 늘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하기로 한 것은 해야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면 지금 생존권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마치 20년 전 전두환이 했던 "호언선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지금 그 파국의 기로에서 길거리에 나서서 단식하는 사람들이 웃고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정권을 위해서나 대통령을 위해서나 혹은 민중을 위해서도 좋다.

    20년 만에 똑같은 상황이 된 2007년 6월을 보고 싶은가?

    현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한미 FTA 협상안은 절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국민생존권이 발동한 6월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굶지 않으려는 자, 죽지 않으려는 자의 외침을 막고도 움직이는 OECD 국가는 없고, 건국 이후의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그런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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