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 신화 뒤에 은폐된 이주노동자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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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19일 01: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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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3월 10일은 미국 LA 및 워싱턴 D.C.등 각지에서 대규모 반이민법시위가 벌어졌다.
     

    현재 약 80만 명, 즉 전체 인구의 2%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을 벗어나고자 독일, 미국 등으로 이주노동을 떠났던 우리가 80년대 중반부터 제조업과 건설업 등에 외국 인력을 도입하기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데올로기 눈으로 이주노동자 바라보기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구성원들을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받아들여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아직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이주노동자는 그저 지하철에서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일 따름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이주노동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살벌하고 야만적인 한국 사회의 속살이 보인다. 그 야만의 대열을 이끄는 건 당연히 자본과 정부의 동맹이다.

    더럽고 위험한 업종에서 일해 줄 기계로서의 싼 노동력은 필요하나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은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이 정부와 자본의 속마음일 게다. 이는 불법 노동자의 구조적 양산, ‘보호’라는 이름의 장기 구금과 같은 제도로, 또 임금 체불과 폭언 폭행 등 ’70년대식의 억압적 노동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시민사회는 어떨까?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지역 노동단체와 종교단체 등의 헌신은 참으로 거룩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보통 시민들은 오랜 세월 익숙해진 ‘단일민족의 자부심’이라는 이데올로기나 검은 피부에 대한 비틀린 우월의식에 근거해서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본다.

    "뭔가 얻을게 있으니 기를 쓰고 오는 거 아냐?" 하는 경우는 꽤 점잖은 외면이다. 대규모 실업이라는 현실적 위협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영세기업 힘들다고 노동기본권 유린해선 안돼

    지난 달 발생한 여수 외국인보호소의 참사는 지금 이 땅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둘러싼 이러한 폭력적 구조가 만들어 낸 필연적 현실이다. 일회적으로 발생한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책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 인권유린의 온상으로 지적받는 산업연수제도의 폐기와 아직 미진하기 짝이 없는 고용허가제를 대폭 개선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압도적 지배하에 있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 영세중소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그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법적 신분 및 근로 기준에 관한 기본적 제도 개선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고려 사항이 있다. 바로 ‘더럽고, 위험한’ 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장 환경 개선문제이다. 실태 조사 자료를 보면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는 업종은 건설 현장과 식당 등 서비스업, 그리고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 등이다.

    특히 화학물질을 다루는 영세 공장들은 비용 문제로 인해 제대로 된 안전장치를 가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안전의식의 미비, 그리고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치명적인 환경 재해를 유발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2004년 발생한 이주민노동자들의 노말헥산(N-Hexane) 중독 사건은 작업장 유해 환경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이들의 기본권 확보에 있어서 놓칠 수 없는 핵심 분야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LCD, DVD 부품 제조업체에서 발생했는데, 출하 직전 제품을 노말헥산이라는 독성 유기용제로 세척하는 작업을 담당 해온 8명의 타이 여성노동자들이 독성 물질에 중독돼 하반신이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밀폐된 검사실에서 하루 평균 10시간~14시간동안 마스크나 장갑, 안경 등 보호 장비 없이 7개월~3년 동안 작업을 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 신화 뒤에 감춰진 이주노동자들의 고통

    작업장 유해 환경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피해는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온 나라가 들떠 있던 ’88년 7월에 일어난 온도계 공장 15살 소년 노동자 문송면의 수은 중독 사망은 ‘세계 속으로 도약하는 한국’이라는 화려한 수사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노동 현실이었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수백 명의 직업병 환자를 양산한 원진레이온이 공장을 폐쇄하고 기계를 중국으로 수출한 게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그처럼 위험한 일은 주로 이주노동자들의 몫으로 넘어 갔다.

    물론 이주노동자들이 더럽고 유해한 작업에 집중적으로 종사하는 경제 구조가 우리나라만의 현실은 아니다. 현재 1천2백만에 달한다는 미국의 불법 이민자들 역시 불평등한 노동 환경에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다.

    캘리포니아 남부 농장 지역은 엄청난 양의 농약을 투여하는 화학 농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맹독성 농약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농사일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라틴계 이주노동자들의 몫이다.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신화 역시 한 발자국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역시 이주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지 한 톨 없는 초정밀 전자 부품은 손놀림이 민첩한 아시안계 여성노동자들의 독성 화학 물질을 사용한 세척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필리핀, 대만 등 아시안계 여성 노동자들은 암과 출산 및 생식 장애라는 직업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주노동자 작업장 환경권 보장돼야

    과거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사회에 이처럼 유해한 환경으로 인한 위협이 특정한 계층이나 인종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환경 부정의’로 규정하여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 할 것을 대통령 훈령으로 의무화했다.

    실리콘밸리 생산 현장은 많은 경우 소수의 백인 관리자와 다수의 아시안 및 라틴계 이민자로 이루어진 생산직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 이주 노동자들이 독성 화학물질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피해를 입어 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환경 부정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규모면에서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 역시 소수의 한국인 관리자와 다수의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영세 사업장들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존재한다. 80만 이주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유해 작업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치와 적절한 정보 없이 노동을 하고, 그 결과 심각한 직업병을 얻게 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계층, 인종, 국적의 차이가 모조리 환경적 불평등으로 귀결되는 이 야만적 ‘환경 부정의’ 구조를 어찌할 것인가.

    이주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 제도적 대응에서 작업장 환경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 헌법상 환경권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땀 흘리고 있는 80만 이주노동자에게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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