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성 떨어져 vs 비전 철학 안 보여
    2007년 03월 12일 12: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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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출마선언문에서 자신의 비전과 구상, 대선전략을 처음 체계적으로 밝힌다. 출마선언문에 제시된 비전과 구상, 전략이란 후보자의 경쟁력이 무엇이며 장차 어디를 주로 공략할 것인지 면밀히 계산한 결과로 나온다.

때문에 출마선언문을 보면 후보자측의 자기평가의 내용과 그에 따른 대선 전략의 얼개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건 노회찬, 심상정 의원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의 출마선언문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둘은 이번 대선의 목표를 다르게 규정한다.

   
  ▲ 사진 왼쪽부터 각각 지난 11일과 7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
 

노 "진보정당 집권" vs 심 "정권교체 아닌 시대교체"

노 의원의 출마선언문 제목은 "’진보정당 집권의 꿈’을 실현하겠습니다’이다. 노 의원은 "최초의 민주노동당 출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군에서 ‘정치적’ 현안에 대해 가장 순발력있게 대응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현실 정치 이슈에 관한 한 대중적 영향력에서도 가장 앞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노동당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은 ‘정치’를 중심으로 폭넓게 형성된 이미지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의원이 출마하면 ‘대통령 당선을 노릴만큼’ 많은 득표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본선경쟁력에 대한 강조의 논리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심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또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를 이루겠다고 했다.

노 의원이 정치구조의 변화를 불러올 적임자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심 의원의 강조점은 좀 더 토대 쪽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심 의원의 기존 의정 활동과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경제에 강하다.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대중적 이미지가 형성됐다. 부동산 문제나 한미FTA, 론스타, 출총제 문제 등이 그렇다. 

‘시대교체’는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다. 긴 호흡으로 역량을 투자하며 가야 한다. 이는 심 의원을 ‘투가가치가 있는 정치인’으로 보는 심 의원측의 자기규정과도 닮았다.

노 "집권 위한 반신자유주의 전선" vs 심 "시대교체 위한 세박자 경제론"

대선의 목표가 다르다보니 그에 연관되는 정책의 강조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노 의원의 출마 선언문에선 ‘정치전술’의 내용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노 의원이 그를 위한 방법적 모색을 강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노 의원은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구축하여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했다.

반면 심 의원은 ‘시대’를 교체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제시에 공을 들인다. ‘국내 서민경제론’, ‘한반도 평화경제론’,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세박자 경제론’이다.

심 의원은 "우리 진보운동이 지니고 있던 분배경제모델, 일국모델의 한계를 넘는 미래 비전을 세우고자 한다"고 했다.

노 "민생이슈의 정치화" vs 심 "시대교체의 각론적 대안"

두 사람은 공히 민생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있다. 그러나 민생회복을 위한 방법론에서 둘은 색깔이 좀 다르다.

노 의원은 ‘분배’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사회양극화해소특별법’, ‘부유세법’, ‘사회복지세법’ 등 민생관련 9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백만장자와 대기업으로부터 매년 20조원을 걷어 650만 빈곤층에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노 의원이 제기한 이슈는 민생의 이슈이지만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체감 지수가 높은 것들이다. 정책의 수혜자가 바로 보이는 이슈들이다. 그만큼 찬반 양론도 분명히 갈릴만한 것들이다.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쉽고 대선의 득표에 영향을 줄만한 것들이다. 

심 의원은 ‘자산재분배’, ‘풀뿌리 경제의 그물망 구축’, ‘서민은행 설립’,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한 기업 민주화’ 등을 제시했다. 이들 정책은 주로 경제의 체질을 민주적으로 개조하는 데 강조점을 두는 것들이다.

노 의원의 민생정책이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에 대한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면, 심 의원의 정책은 ‘시대교체’를 가능케하는 각론적 대안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띠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도 둘은 조금 다르다. 같은 맥락이다.

노 의원은 정치적 선이 분명한 행동계획을 제시한다. ‘남북한 지상군 병력 10만 감축’이나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 성사’ 등이다.

반면 심 의원은 좀 더 체제론적인 틀에서 접근한다. 심 의원은 "최근 밀려오는 한반도 해빙의 물결을 경제공동체로 승화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혁신해야 한 목소리

두 사람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분야가 있다. 바로 민주노동당의 혁신이다. ‘집권’을 위해서건 ‘시대교체’를 위해서건 민주노동당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가 장차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정체성만 빼고 다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심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치를 자임했지만 아직 일하는 사람의 희망과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면서 "이번 경선에서 저의 최대 화두는 민주노동당 그 자체이고, 민주노동당의 혁신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최고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구체성이 떨어진다" vs "비전과 철학이 안보여"

그렇다면 양측은 상대방의 출마선언 내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각자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노 의원측은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심 의원측을 평했고, 심 의원측은 "비전과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고 노 의원측을 평가했다.

노 의원측 한 관계자는 "새로운 담론을 세박자 경제론이라는 브랜드로 제시한 것은 평가할만 하다"면서도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담론의 부재가 아니라 구체적 대안의 부재에 있다"고 했다.

심 의원측 한 관계자는 "노 의원만의 철학과 비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담론체계에 입각해 개별 사안에 대한 대안이 배치되는 것인데, 개별 정책들이 산만하게 나열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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