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와 사랑'이 소원인 브라질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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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02일 08: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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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의 해안지역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 APAM(Association of Parents and Friends of Children and Adolescent) 공동체가 있다. 이곳은 지역의 학부모와 지역주민, 문화활동가들이 함께 운영하는 교육공동체로, 교육은 물론 지역의 갖가지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곳이다.

    특히 이 지역은 성매매, 마약중독, 폭력 등의 문제가 빈번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우리가 APAM으로 가던 날도 경찰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바로 전날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APAM의 아이들은 부모님이 일터에 나가 일하는 동안 학교에 가기 전과 방과 후에 이곳에 와서 미술, 연극, 춤, 노래 등의 예술 활동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다. 정규 학교가 2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APAM의 교육프로그램도 연령에 따라 2부제로 움직인다.

    브라질에는 이와 비슷한 공동체와 보육시설들이 가난한 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교육비는 정부에서 전액 지원한다고 한다. 국공립학교의 무상교육, 보육과 문화예술 교육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있다.

    교사들의 월급도 일부 지원받고 있으나 대부분의 교사들이 경제적인 목적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발전과 사회를 위한 봉사를 목적으로 일한다고 했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은 그 지역의 대학교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그 지역에 대해 연구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험한다. 대학생들의 프로젝트 운영비 역시 대학과 정부에서 지원하면서 지역공동체 연구자와 활동가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은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에 두고 제3세계 국가들의 민중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사상가가 거목처럼 서있는 나라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들의 지식에서 출발해 민중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그들을 안내하고, 그 과정에서 기꺼이 함께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프레이리의 교육 전통이 오늘날까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오전 10시경, 우리가 APAM에 도착했을 때, 건물 바깥쪽의 작은 놀이터에는 5-6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평화롭게 뛰어놀고 있었고, 교실 안에서는 7 – 9세 정도로 보이는 30여명의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서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후 부네 탈과 솟대, 닥종이 인형 등을 보여주며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에 대해, 우리의 연극 작업에 대해 소개했다. 

       
    ▲ ‘부네 탈’을 써보면서 즐거워하는 APAM의 아이들
     

    아이들이 부네 탈을 만져보고 써보면서 공연을 보고 싶어 하자 배우는 계획에 없던 공연을 즉석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소원지를 나누어 주면서 각자 소원을 써서 그릇에 넣으라고 했다. 음악반주도 APAM 아이들이 평소 연습하던 타악기들로 직접 연주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특별히 약속하지 않아도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한다.

    역시, 아이들은 즉흥에 강하다. 부네가 걷기 시작하자 부네의 걸음에 집중하면서 타악 연주를 시작한다. 부네는 천천히 걸어서 APAM의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소원지가 담긴 그릇 앞에 앉는다. 부네가 아이들의 소원지를 하나씩 꺼내면 APAM의 선생님 라파엘이 포르투갈어로 적힌 아이들의 소원을 하나씩 읽어주었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PAZ(평화). 그 다음이 amor(사랑)… 그리고 공동체가 오랫동안 함께하길, 건강하게….
    일곱 여덟 살 밖에 안 된 아이들의 소원이 이렇게 크고,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공연을 했을 때, 부자 되게 해달라는 소원이 가장 많아서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다. ‘돈’과 ‘일등’이 최우선하는 가치를 너무도 빨리 습득하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이 떠오르자 씁쓸해졌다.

    어디, 아이들 뿐인가, 자기 앞의 좁은 공간만 보고 살지 총체적으로 생각하거나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모두가 되짚어야할 지점이다.

    다같이 공유한 소원지를 불로 태웠다. 평화, 사랑, 공동체의 영원함…
    APAM의 소원이 연기가 되어 하늘까지 닿아 지구촌 모두의 소원으로 반드시 실현되길 소망하며 불을 붙인다.

    불길이 타오르자 연주를 맡았던 아이들이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리듬으로 타악기를 연주한다. 앉아 있던 아이들도 손과 발을 앞으로 내밀며 주문을 외우듯 함성을 질러대며 흥을 돋군다. 사냥을 앞두고 불 앞에서 춤을 추는 원주민들처럼, 디오니소스 봄 축제에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중들처럼 아이들과 함께 신이 난 부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공동체를 위해 춤을 춘다.

    APAM 아이들은 우리의 방문과 공연에 보답하고자 자신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브질의 전통 민요와 전통춤이 섞여있는 연극공연으로 농부와 소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소와 사람을 잡아먹는 용과 인형, 동물가면들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 APAM의 아이들이 직접 만든 소와 용을 쓰고 연극하는 모습.
     

    소 역할을 맡은 아이의 역동적인 몸짓에 종이 상자로 만든 소가 살아나서 벌판을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맑고 투명한 노래 소리와 함께 소, 원숭이, 용 등의 동물이 뛰어노는 공연을 보는 동안 나는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동화와 마법의 세계 같은.

    내가 브라질의 아이들과 젊은 문화활동가들에게서 눈여겨 본 것은 이들이 ‘허구’와 ‘실재’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삶과 더불어 놀이와 예술, 상상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열린 몸은 언제나 놀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의 공연이 살아있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자본의 욕망이 아니라 소외받거나 억압받는 이가 없어야 한다는 공동체의 소망이 모든 것을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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