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얼굴의 파리를 다시 만나다
    By
        2007년 02월 28일 09:56 오전

    Print Friendly

    일년 반 만에 다시 돌아온 파리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급격히 ‘사르코지화’ 된 파리가 단박에 느껴졌달까.(사르코지: 집권 우파정당의 실세로 상식을 깨는 자신만만한 우파적 신념과 그 화끈한 실천이 매력(?)포인트. 4월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인물) 

    나름 양식있는 시민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잘 다스리고 있던 잠재된 인종차별적 의식이, 그의 선동으로 스멀스멀 분출되는 듯했고, 최근 몇 년 새 앞다투어 민영화된 공기업들이 여전히 형편없는 서비스를 유지하면서도 미친 듯이 가격만 올려댔다. 

    에피소드 하나 "끔찍한 프랑스텔레콤"

    우리나라의 한국통신에 해당하는 프랑스텔레콤. 역시 민영화된 이 회사에 ADSL을 신청하였다. 설치해 주는 사람은 없고, 3주만에 모뎀만 덜렁 날아왔다.

    낑낑대며 설치하고 나니, 잠깐 되던 ADSL이 갑자기 작동을 멎는다. 하루종일 통화중인 프랑스 텔레콤. 천신만고 끝에 통화된 직원이 알려주는 건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려면 6만원 가량을 내라는 것. 그게 싫으면, 그냥 계약을 해지하라는 것.

    처음부터 작동도 안됐는데 무슨 돈? 열 받은 희완이 “너네 이래도 장사가 되니” 라고 묻자 다른 경쟁사도 다 똑같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별 지장없다는 뻔뻔한 대답.

    반송하는 비용마저 이미 내버린 계약금에서 가져가 버리자 뚜껑열린 희완이 26개의 소비자보호운동 단체에 편지를 썼는데 3군데서 온 답장은 가입회원들에 대해서만 업무를 처리해 준다고.

    희완보다 쪼금 더 현실에 민감한 내가 2군데만 편지를 보내라고 말렸건만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희완은 보름간의 에너지를 성과없이 태워버렸다. 

    이 격렬한 반동적 흐름이 적나라하게 피부 속을 파고들었던 건 일차적으로, 프랑스가 이제 더 이상 막연히 남의 나라이지만은 않은 나의 실존적 변화에서 비롯된 현상임에 분명했다.

    내 아이가 지니고 살아갈 두 개의 사회적 정체성 중 하나, 앞으로 남은 내 생애 많은 부분에 배경이 되어줄 이 사회는 더 이상 멋진 영화의 세트장 같기만 하던 그들의 사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긴 수도꼭지를 틀면 오렌지 쥬스가 나와” 라고 편지에 적던 파리 체류 초기의 인식이 시간이 가며 진화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내 것이 되었을 때, 현상에 대한 명징한 자각이 비로소 손톱 끝으로부터 아프게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희완 역시 수세기 동안 수많은 피와 땀으로 이루어 놓은 사회주의적 원칙들이 사람들의 묵인 속에 서서히 공중에 산화되어가고 있는 사실에 광분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변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 자체이기도 했다.

    가우디를 만나러 바르셀로나로

    신자유주의가 망치로 부셔대고 있는 듯한 이 사회를 하루하루 아프게 목격하던 중, 우리는 전환을 위한 시간을 한 꼭지 마련한다. 한국에서부터 계획해 왔던 바르셀로나 여행이 그것이다.

    바르셀로나 전체를 기존의 건축공법과 미학의 전통에서 동떨어진 매혹적인 섬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들, 그 도시가 뿜어낼 자유와 희열의 공기를 뱃속의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임신 8개월에 이른 나의 몸이 비행을 하는데 무리가 없을지 희완은 잠깐 염려했지만, 그를 설득하기 위해선 “이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언제나 충분했다.

       
    ▲ 위쪽 왼편으로부터, 까사 밀라의 굴뚝, 까사 바띠요의 지붕과 정면, 구엘 정원,
    마지막이 까사 밀라의 전경이다.
     

    박물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같이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며, 존재 자체로 도시 전체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면에서, 위대한 건축은 가장 거대한 울림을 주는 창작물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1세기 전에 지어진 그의 건축물 속에 발을 딛는 순간 난 엄마의 뱃속에 슬그머니 발을 디뎌 놓는 듯한 신비를 경험했다. 그의 건물의 구석구석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정교하게 서로 조응하며 호흡하고 있었고, 각자의 디테일은 저마다 중심의 아름다움을 지닌 생태계처럼 그 안에서 또 다른 우주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엉겨붙어 구불대는 스파게티 면발을 연상시키는 테라스,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두리번거리는 듯한 모습의 굴뚝, 상상의 동물의 앙상한 뼈다귀 같은 창틀. 한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힘든 그의 건축물에서 모태의 신성을 느겼던 건 단지 내가 태아에게 열렬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희완과 나는 그의 건축물을 보며, 끊임없이 놀이를 만들어내며 날밤 새는 줄 모르고 거기에 빠져 즐거워하는 아이 같은 가우디의 모습을 똑같이 연상했다.

    간혹은 보는 이를 깔깔대게 하는 오버도 서슴치 않고, 문고리 하나, 수도꼭지 하나, 심지어는 하녀들 방에 나있는 창문까지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닿는 어느 곳이든 “남들 하는 대로”의 고정관념에 방치된 공간은 없었다. 하나도.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던 그는 남루한 옷차림에 기차에 치었어도 택시기사가 태워주지 않아 쓸쓸히 죽어가야 했지만, 가장 화려한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고 간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멍청하게 높기만 하고 지루하게 네모나기만 한 건축물들이 대단한 무엇인 양 바라봐야 했던, 그래서 감금될 수 밖에 없었던 상상력…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설명을 대신하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로 애시당초 기를 꺾여왔던 지난 삶이 새삼스럽게 눈물나게 다가왔다.

    나와 희완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어떤 사회적 억압, 고정관념도 아이가 물려받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태도이다.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관습의 폭력과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끊임없이 재생산 해내 온, 인간 스스로의 존재를 갉아먹는 자본중심의 가치관들.

    부지불식간에 그 모든 것의 포로가 된 것을 자각한 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쏟아 부어야 했던 그 엄청난 에너지. 그 소모적인 시간들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운 자아를 구축하게 해 주는 일이었다. 가우디의 뛰는 심장이 느껴지는 곳곳에서 나는 칼리에게 말했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현혹되지 말고 자유롭고 줄기차게 너의 인생을 누리거라."

    프랑스 운동권이 만든 릴라 산부인과 병원 (Maternité des Lilas)

    비행기가 2시간 연착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지불한 항공료 이상을 돌려받는 횡재까지 경험하며 바르셀로나에서 돌아온 우리는 본격적으로 아이낳기 과정에 착수했다. 임신하자마자 등록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는 유명한 릴라 산부인과에 희완이 어인 일로 동작 빠르게 예약을 해 놓았기에, 이제 그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녀야 했다.

    의학적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노련한 산파들을 중심으로 최대한 자연스런 출산을 유도하는 소위 산부인과 계열의 운동권들이 만든 릴라병원은 68세대들이 당시의 혁명적 기운에 힘입어 창설한 병원으로 당시 의대를 갓 졸업한 의사들은 지금 희완처럼 희끗한 머리를 휘날리는 지긋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출산까지는 두 달 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의학적인 검진은 별로 할 게 없었다. 초음파 검사도 딱 한 번을 했을 뿐이다. 그것 밖에? 한국에서는 해산이 다가오면 2주 단위로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는 잦은 초음파 검사가 결코 아이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에선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임신기간 중 4~5번 정도로 제한한다고 한다.

       
     ▲ 두 개의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칼리가 어떤 사회적 억압도 받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부모는 바랬다. 모든 아이들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칼리의 출산은 말로만 듣던 사회보장제도를 몸소 체험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사진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필자의 모습.
     

    정기검진은 없었지만, 나와 희완은 여러 가지 강좌를 들으러 수시로 릴라병원에 드나들어야 했다. 고통을 줄이는 요가, 호흡법 강의에서부터 임신 전후에 오는 정신적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심리학 강의, 모유 수유법, 심지어는 아빠들만을 위한 심리학 강의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모든 것은 무료로 진행되었고, 대부분 부부가 같이 들을 수 있었지만, 심리학 강의는 남녀를 구분해서 진행되었다. 육체적인 부분 뿐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까지 사회가 적극적으로 보살피려는 태도는 일찍이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공공서비스의 영역이다.

    한국에서 가장 쉽게 간과되는 동시에, 치솟는 자살률과 정신질환율을 생각할 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임산부에게는 임신, 출산과 무관한 영역에서도 처방전을 써준 모든 약품을 무료로 구입할 수 있는 혜택도 주어졌다. 임신을 하는 순간, 출산을 하고 병원의 입원실을 나설 때까지, 심지어는 출산을 하고 나서 몸이 제자리를 찾도록 물리치료를 받는 비용,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피임시술을 하는 비용을 모두 국가가 지불하였다.

    게다가 출산 한 달 전에 이르자 통장에는 980유로(한화로 120만원정도)가 출산준비물 구입비용으로 입금되었다. 내가 한국인이건 프랑스인이건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아무런 차별도 없음은 물론이다.

    아이의 출생과 양육을 완전히 사회적인 과업으로 인식하는 이 사회. 인권과 생명존중에 대한 전(前) 세대가 이루어 놓은 이 견고한 합의가 작금의 위험천만한 조류 속에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세상 어디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사회적 투쟁은 단 한순간도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육중하게 발 앞으로 다가섰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