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여성의 또다른 이름이기를
    2007년 02월 12일 02: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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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치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여성정치 시대의 세계적인 흐름과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각국의 여성정치인은 ‘여성’의 또다른 이름이 바로 ‘진보’임으로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미첼 바첼렛 칠레 대통령, 미국의 힐러리 민주당 상원의원, 프랑스의 루아얄 사회당 대선후보 등이 그러하다.

이런 여성정치인들은 ‘진보녀’ vs ‘보수남’의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 남았거나 살아 남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여성단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진보녀’ 여성정치인을 지지하고 나선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여성정치 담론’ 속에 항상 ‘보수’를 상징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루아얄,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한국 한나라당의 박근혜. 현재 많은 세계 여성들이 그녀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녀들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 여성은 우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리더십으로 ‘모성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같은 모성적 리더십은 정치적 아이덴터티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의 정치적 아이덴티티는 굉장히 다르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루아얄 후보는 사회당 후보이고, 힐러리는 민주당 후보이고,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이다. 그녀들은 좌파, 중도좌파, 우익적 보수정당의 후보라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모성적 리더십은 곧 돌봄과 보살핌을 갖춘 리더십을 의미한다. 가족청소년장관과 환경장관을 지낸 바 있는 루아얄은 대선 주요 공약으로 복지 정책 개혁,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 무주택자와 실업자 등의 주거 문제 해결을 들고 있다.

특히 그녀는 “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이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다”며 국가의 엄마와 같은 보호자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모성적 리더십을 통한 모성정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힐러리 역시 영부인으로 있을 때 의료개혁위원장을 지낸 바 있고, 1995년 북경 UN여성대회에 참석해 “여권은 곧 인권이다”고 발언한 바 있다. 힐러리는 복지, 여성, 어린이 등 마이너리티 문제에서 감수성이 뛰어난 모성적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7% 성장론 공약을 내면서 정치권의 논쟁의 불을 지폈다. 현재 5%를 밑도는 성장 잠재력에 외교 안보 역량 강화만 이뤄져도 성장률을 2% 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근혜노믹스’의 경제성장 전략은 외교안보 강화를 꾀하는 것인데,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힘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가부장적인 리더십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른바 ‘여성성’, 즉 사회적 성(gedner) 문제에 있어서도 이들은 다르다. 박 전 대표는 독립적인 정치적 존재로서 대한민국 정치사에 등장하거나 성장하지 못했다. 대권 도전 후보로 나서는 데 있어서도 박정희의 딸로서 후광효과를 얻고 있는 셈이다. 그의 여성성은 가부장의 또다른 얼굴을 한 여성성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루아얄은, 결혼은 자본주의의 억압적 기제라며 공식적인 결혼을 안 하고 동거를 하며 아이 넷을 낳아서 키운다.

힐러리 역시 클린턴의 아내라 불리기보다는, 오히려 클린턴이 힐러리의 남편으로 불리우고 있다. 힐러리는 한 기자가 힐러리의 첫사랑이 주유소 사장이라는 점을 들어, “만약 당신이 당신의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면 당신은 주유소 사장의 부인이 되었겠네요?”라고 질문하자, 힐러리는 바로 “아니요. 그러면 그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 되었겠지요”라고 당당히 말한 바 있다. 힐러리는 자신이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권력에 무임승차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프랑스는 대권 후보의 경쟁 구도가 ‘보수남’ 대 ‘진보녀’의 구도(루아얄 사회당 후보 vs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이고, 미국 역시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보수남’ 대 ‘진보녀’의 구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권후보가 될 경우, 한국에서는 ‘보수녀’ 대 ‘진보남’의 대결구도가 펼쳐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대통령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여성리더, 여성 대통령의 등장은 ‘성’이라는 잣대로 구분 짓던 권력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여성은 권력을 박탈당한 자, 남성은 권력을 가진 자라는 여성주의적 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짐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의미에서는 또다른 경계의 허물어짐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성, 세대, 계급, 인종 등의 구별짓기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여성대통령 시대가 열리는 것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민주주의 1단계)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민주주의 2단계)로의 이행을 거쳐, 수평적 분산적 민주주의(민주주의 3단계)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와 같은 ‘보수녀’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는 민주주의 3단계로의 이행이 아니라, 0.5단계 정도만 민주주의가 후퇴하거나 전진할 것 같다. 우리나라 여성단체가 드러내놓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진보녀’가 여성의 또다른 이름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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