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총수 일괄 사면복권,
    최소한의 정의도 부정하나
    [기고] 자본권력으로 '면죄부' 사나?
        2022년 07월 22일 1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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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황제보석’ 논란 등으로 비리 재벌로 지목된 곳으로 최근에는 2천억대 횡령 및 업무상배임으로 고발된 자이다!”

    2019년 9월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성동 현 국민의힘 대표의 일성이었다. 그 당시 자유한국당은 병보석의 악용을 막기 위한 ‘이호진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었다.

    그 후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이 언론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법부의 구속수감 판결을 무려 7년간 병보석으로 회피한 희대의 재벌 총수에 대한 면죄부 거론이 꽤나 의문스럽다. 게다가 태광그룹은 배임횡령의 검찰 수사와 일감 몰아주기 재판,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불충족 등 관련 기관의 심판과 제재가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 태광그룹 주요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방사성폐기물 은폐와 누출을 일으켰고, 흥국생명은 보험금 부지급률 꼴찌는 물론, 보험사 지급여력(RBC) 비율이 업계 최하위권으로 건전성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총수의 부재로 그룹이 멈췄다’는 재계의 습관적 엄살은 태광그룹에 적용되지 않고, 적용되어서도 안된다.

    이호진 전 회장이 작년 10월에 3년형 징역형을 살고 만기출소한 이후, 태광그룹의 계열사 대표 전원이 교체됐고, 임원의 대다수가 해임됐으며, 직원들은 정리해고의 공포에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총수가 10년만에 자유를 얻었으나 노동조합이 새로이 결성되는 등 내부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재계 사면복권의 명분인 경제 살리기가 아닌 직원 죽이기가 즉각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2020년 4대 기업집단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무려 48.5%에 달했고, 71개 대기업의 명목 GDP 비중은 80%를 넘긴다. 이러한 불균형의 경제구조에서 극소수 재벌 총수 몇 명에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린다면, 세계 10위의 경제국인 우리나라가 중세 왕조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기업은 총수 개인의 결정이 아닌 이사회와 임직원들이 집단지성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미증유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신냉전 시대를 맞이하여 경제현장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미 자유를 얻어 경영을 주도하는 재벌 총수에 부여될 완전한 면죄부, 사면복권이 미칠 영향은 경제 성장도 민생 안정도 아닌 명확한 유전무죄의 확인일 뿐이다.

    과거에 특별 사면복권을 앞두고 나오는 정부여당의 시나리오는 여론 조성과 타진의 두 가지 목적으로 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전례를 고려해봤을 때, 재계 일괄사면의 카드 역시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아울러 정권 첫 특별사면임을 감안할 때, 거론된 인사들 대부분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타당하다.

    삼성부터 현대차, SK, LIG를 수사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정부가 재계 대사면, 일괄 사면복권을 검토한다는 사실은 시대의 퇴보이자, 사회의 몰락이다. 이미 여러 차례 ‘공직 인사의 기초’가 무너졌고, 일방적인 발언들로 ‘국민 소통의 기본’도 사라졌으며, 공정과 상식, 법치확립을 가장 내세우던 정부가 ‘사법 정의의 기준’까지 형해화한다면 경제적 침체를 넘어선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태광그룹의 황제보석, 유전무죄처럼 중세시대에 헌금으로 살 수 있었던 면죄부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낳았다. 재벌 면죄부, 사법 카르텔, 정치적 로비가 구조화된 이 시대에 검찰개혁의 필요성은 16세기에 이미 입증이 된 진리이다. 자본 권력으로 면죄부를 살 수 있는 시대, 중세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필자소개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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