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소비지리학』『김용균, 김용균들』 외
        2022년 07월 16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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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지리학> – 소비 장소의 탄생

    줄리아나 맨스벨트 (지은이),백일순 (옮긴이) / 앨피

    지리학자들이 소비의 역사, 공간, 연결, 대상, 상업적 문화와 도덕에 관해 진행한 흥미로운 연구를 담은 책이다. 소비지리의 주요 분야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동안 심층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광고와 집단 및 제도적 소비는 물론이고, 문화경제와 농촌 공간, 서비스, 작업 지형에 대한 연구 등 소비(장소)에 관한 흥미진진한 연구들이 망라되어 있다.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와 구매 그리고 사용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건 및 장소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들여다본 ‘소비의 지리’에 관한 책이자, 지리학자들이 이러한 일들을 해석하는 관점을 다룬 ‘소비 지리의 관점’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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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균, 김용균들> –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권미정,림보,희음 (지은이),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 오월의봄

    한국 사회의 일터에서는 한 해에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다. 2018년 12월 10일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4살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도 그 비현실적 숫자의 하나가 되었다. 그가 화력발전소에서 일한 지 3개월만의 일이다. 비용과 안전을 저울질하는 이 사회의 단면이 드러났고, 산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높인다며, 위험을 외주화해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전가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고유명사이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위험의 외주화, 산재 사고 피해자를 지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김용균재단이 기획해 선보이는 첫 단행본인 《김용균, 김용균들》은 다시 이 김용균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한다. ‘기업의 살인’과도 같은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용균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기억하고 살아내고 있는 김용균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용균을 호명했다.

    김용균 씨의 주검을 발견한 후 산재 트라우마와 함께 삶을 살아내는 또 다른 생존자이자 피해자인 하청업체 동료 이인구 씨,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산재 피해자 가족이자 유족으로, 또 노동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김미숙 씨, 발전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로 김용균투쟁이 자신의 싸움이 된 이태성 씨가 그들이다.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죽음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싸웠는지, 그 싸움의 구체적 면면들은 어땠는지가 그들 각각의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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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은이) / 창비

    국가인권위원회에는 한해 동안 1만건이 넘는 진정이 접수된다(2021년 기준). 인권위에 소속된 조사관은 진정인이 접수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직접 조사하는 일을 담당한다. 조사관들은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매해 수십수백건의 사건을 파헤친다. 2002년부터 인권의 최전선에서 인권위 조사관으로 일해온 저자 최은숙 역시 무수한 사건을 담당하며 결과 보고서에는 차마 다 쓰기 어려운 억울한 마음들을 마주해야 했다. 『어떤 호소의 말들: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에는 이처럼 저자가 20여년간 조사관으로 일하며 만난 피해자들과 그 사연을 바라보는 다정한 마음을 담았다.

    저자 최은숙은 글을 읽고 쓸 줄 몰라 간단한 민원도 제출하기 어려운 노인, 말이 통하지 않아 정신병원에 감금된 이주 노동자, 관행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참고 견디는 운동선수,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권위를 찾았지만 끝내 세상을 등진 이까지, 재판 결과나 뉴스 기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개개인의 속사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법률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한편 조사관 개인으로서 느끼는 한계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저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인권위 조사관의 일이라면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삶의 다양한 무늬를 헤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권의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소수와 약자를 향한 저자의 용감하고 솔직한 목소리가 독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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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김태홍입니다> – 어느 재일 한국인의 옥중 생활기

    김태홍 (지은이),박수정 (정리) / 후마니타스

    짓지 않은 죄로 기약 없는 수감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김태홍은 잊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을 취조한 국군 보안사령부 수사관들과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기억했다. 교도소에서 만난 교도관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같은 방에서 지내거나 통방하며 알게 된 양심수, 일반수, 도움을 주고받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들이 한 행동, 그들과 겪은 일, 그들에게 들은 사연을 기억했다.

    집필이 허가되지 않았고, 허가된 뒤에도 검열을 피할 수 없던 곳에서는 기록보다 기억이 정확했다. 석방되고 일본으로 돌아가 정착한 뒤, 15년 동안 기억한 시간을 2년에 걸쳐 기록했다. 일본어가 더 익숙한 그가, 한국어로 나누며 기억한 이야기였기에 한글로 적었다는 원고는 그대로 20년 가까이 간직되다가, 이후 재심 변호를 맡은 조영선 변호사의 제안과 박수정 르포 작가의 정리를 거쳐 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옥중 기록이 대체로 필자의 주관이 강하게 드러나는 일기, 편지글, 탄원서 등의 형태를 띠는 데 반해 이 책은 건조하고 담백한 관찰 기록에 가깝다. 감정과 주장을 내세우는 대신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을 주로 담았다는 점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길어 낸 성찰과 사색에 기초해 집필된 기존 출판물과도 사뭇 다르다.

    <나는 김태홍입니다>는 민주화의 전망이 싹트는 동시에 (사회는 물론 저자 개인에게도) 여전한 불안이 남아 있던 1980~90년대 한국 사회의 풍경과 교도소 안에서 마주친 인간 군상의 삶을, 부러 과장하거나 앞서 판단하지 않고 기록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떤 순간들에는 한 시대의 역사가 깃들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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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 제국의 그라운드 제로, 흥남>

    차승기 (지은이) / 푸른역사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부교수인 지은이는 문헌 자료, 생존 일본인 노동자 인터뷰, 다양한 문학 텍스트 분석을 통해 흥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적․경제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곳에서 살아가던 조선인들은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촘촘히 드러낸다.

    문학을 전공한 지은이가 흥남을 보는 눈은 독특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제국 자본과 식민 권력이 일체화되어 선주민들을 추방하고 요새 같은 공장을 중심으로 주변 세계와 인간을 새로운 생산체제에 편입시켰다는 점에 주목해, 저자는 흥남을 식민지/제국의 그라운드 제로라 명명한다.

    읽고 나면 이 책이 과연 역사인지 문학인지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가의 전유물이 아니며 역사는 하나의 틀로만 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을 어떻게 드러내고 거기에서 무슨 의미를 찾아내느냐 하는 것일 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흥남의 ‘두 얼굴’을 그려낸 이 책은, 아프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단면을 담아낸 의미 있는 성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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