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미친듯이 신당 창당에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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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2월 05일 10: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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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눈물이 흐릅니다. 혹여 누가 볼까봐 딴 짓하는 척하며 방문을 슬그머니 닫습니다.

    11월 19일,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현실문제로 고민하면서, 이른바 분당기획문건이라 불려진 「진보신당을 건설하자」는 글을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80일째가 되는 오늘(2월 5일)까지, 참으로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진보신당 창당투쟁을 기획하고 앞장선 저에게 자주파의 여러 동지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러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는 민주노동당을 어떻게 해서든 평등파와 자주파가 공존하는 당이 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위해 자주파의 많은 동지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이런저런 구상도 함께 해보았습니다.

    정파갈등의 상징이었던 용산에서는 몇몇 평등파 동지의 반발을 무릅쓰고 동거체제가 형성되도록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왜 분당을 기획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미친 듯이 행동했는지, 핵심 이유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당시 벌어지는 상황을 종합하면서, ‘자주파가 곧 민주노동당을 민족자주당으로 만들고야 말겠구나’ 하는 확신을 했습니다. 2012년 안에 당헌이 바뀌고, 보수야당과의 선거연합이나 연립정부 구상이 실현되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노동자의 정당이 아닐 것이고, 어차피 평등파와 자주파는 서로 결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먼저 치고나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민주노동당 안에서의 공정한 노선경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확인한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당비대납 대리투표는 몰상식이 아니다?

    자주파 안에서도 심상정 비대위를 세워 분당을 막아보고자 노력했던 동지들이 있습니다. 비대위의 혁신안이 나온 뒤, 그 중의 한 동지를 만났습니다. 대표적인 패권주의 종파사건으로 기록된 용산 사태에 대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용산 사태란 평등파가 어렵게 만들고 이끌어가던 용산 지구당을 장악하기 위해, 자주파 중의 한 세력이 100여 명에 이르는 무리를 이끌고 주소 이전, 위장 전입 등을 감행했고, 결국 지역당권을 장악한 사건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직에서는 언제든 크고 작은 패권이 발생한다. 그런데 평등파가 자주파를 향해 패권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주파가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비 대납, 대리 투표 등의 몰상식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상식과 몰상식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이이다. 평등파에서는 몰상식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몰상식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신당창당 투쟁을 시작할 때의 제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셋째, 적과 싸우다가 적을 닮아간다고 합니다. 패악질에 가까울 정도로 몰상식한 자주파의 당권장악에 맞서 싸우다가 평등파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평등파도 대리 투표를 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자주파와의 당내투쟁이 진흙탕 개싸움처럼 되고, 그 속에서 평등파도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민주노동당에서 운동성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권력놀음과 정치술수만 판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그 고리를 깨부수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환멸이었습니다. 저는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평등파가 저지른 다양한 부정행위를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운동의 법정 앞에 범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보신당 창당투쟁에 앞장선 것은 진보정치운동의 법정에 스스로를 고발하는 반성의식이었던 겁니다.

    진보신당 창당투쟁에 앞장서기로 처음 결심했을 때, 저를 짓누른 것은 절망에 가까운 외로움이었습니다. 이 투쟁의 성격상,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기로 결심한 저의 영원한 ‘위원장’ 단병호와도 단절될 수 있다는 예측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엄습한 것은 신당창당이 실패해서 쓸쓸하게 운동을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모든 동지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다행히 단병호 위원장님과 단절되거나, 쓸쓸하게 퇴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모든 동지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단병호 위원장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특히 심상정, 노회찬, 두 분 의원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근원, 손낙구, 신언직 세 동지에게 그동안의 제 행동과 발언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당 대회가 있기 열흘 전쯤에 김형탁, 조승수 동지와 저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만약 당 대회가 파탄 나서 비대위와 혁신파가 신당 창당을 결심하게 되는 상황이 왔는데, 우리 세 사람이 신당의 창당에 걸림돌이 된다면 뒤로 물러서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흔쾌하게 결의했습니다. 모든 신당파 동지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제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영광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신당파와 혁신파라는 울타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신당파와 혁신파는 2월 3일 당대회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한 방법론의 차이였을 뿐입니다. 지금부터는 서로를 향해 비난의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혁신파 중에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동지들이 있다면, 그 감정의 화살을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감정의 갈등을 유발한 주요 원인이 실제로 저에게 있습니다.

    끝으로,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을 몇몇의 자주파 동지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며, 탈당계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에서의 공존을 함께 고민했던 방석수 동지, 저의 오랜 벗 최석희 동지, 그리고 영화인대책위 활동과정에서 만나 신뢰했던 송상훈 동지, 미안합니다.

    이제 모든 눈물을 거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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