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관심과 예견된 몰락
    [기자수첩] '다당제' 호소의 공허함
        2022년 06월 03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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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이 ‘참패’라면 정의당은 ‘몰락’이다. 민주당의 완패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대선 패배에도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수완박을 강행 추진해 문재인 정권 덧씌워진 ‘일방 독주’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 그것도 모자라 대선 패배에 책임 있는 인사들이 명분 없이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만들어 유권자의 피로도를 더하고, 김포공항 이전이나 서울코인 같은 철학도, 인기도 없는 무리수 공약을 남발하며 전체 선거판에 오물을 뿌렸다.

    더 심각한 쪽은 정의당이다. 민주당의 패배를 예상할 때, 과연 정의당이 받아들 성적표에 관심을 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우선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해 패배했다는 분석은 맞지 않다. 꽤 괜찮은 성적을 냈던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당선자가 나오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원내정당 소속 후보자들이 무소속 후보 수준의 미미한 득표율을 보인 점이다. 권수정 서울시장 후보는 1%대에 그쳤고, 황순식 경기도지사 후보는 1%대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제2당 입지를 굳혀온 광주에서 장연주 광주시장 후보는 15%를 넘긴 주기환 국민의힘 후보보다도 한참이나 뒤쳐진 4.71%에 그쳤다.

    전·현직 당대표들의 득표율은 또 어떤가. 경남도지사에 출마해 중앙에서 선거를 이끌었던 여영국 대표는 4.01%, 지난 총선 때 인천 연수구을에 출마해 20%에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득표력을 과시한 이정미 인천시장 후보는 3.17%에 머물렀다.

    후보들이 받은 이 참담한 득표율은 과연 후보 개인 역량의 문제일까. 아니면 강화된 양당체제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양당에만 관심을 두는 언론 때문인가. 모두 주요한 패배 원인으로 분석될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로 광역·기초의회 의원 35명은 9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원외정당으로, 정의당보다 한참이나 언론 노출도가 낮고, 여의도 정치에 개입조차 못한 진보당은 울산 동구청장 당선을 비롯해 광역·기초의회 지역구 21석을 거머쥐었다. 정의당의 이 초라한 성적이 강화된 양당체제라는 정치구도나 언론의 편애 때문이라면,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진보당의 성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의당의 몰락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

    정의당은 대선에서 참담한 결과를 받고도 그 책임이 있는 지도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민주당처럼 정신 승리할 만한 깻잎 한장 격차의 패배도 아니었고, ‘졌잘싸’ 분위기가 아니었는데도 당 지도부가 자리를 보전했다. 그럼에도 그 이유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선 평가나 지도부 총사퇴와 같은 결과에 대한 성찰이나 당의 쇄신, 체질 개선 같은 근본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보단,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라고 봤을 거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선택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

    정의당은 여전히 민주당과 함께 ‘조국의 강’에 바지를 적시길 원한다. 조국 법무부 전 장관 임명 찬성으로 최대 고비를 맞고도, 민주당의 독주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거나 그러지 못한다. 오히려 자진해서 그 강에 함께 빠지길 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모습은 중앙당이 검수완박의 당론을 정할 때 여실히 드러났다.

    검찰개혁 과제에 대한 진보정당으로서의 독립적인 입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검수완박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 어떤 의원들은 무관심했고, 또 어떤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관리 때문에 민주당에 편승했다. 그 과정에서 정의당 주재로 원내정당 지도부들의 만남이 성사됐을 땐 찰나와 같은 존재감에 만족하는 초라한 모습까지 보였다. 진보정당만의 검경수사권 분리 방안도 없이 정의당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일부 내용을 조정하는 데에 흡족해하며 관성대로 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심지어 법안 단독 강행 처리를 위해 민주당이 시도한 회기 자르기 편법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양당과 국회의장이 합의했기 때문이란다. 그 합의에 정의당은 주체로 서지도 못했지만 그 합의를 떠받들며 민주당의 온갖 편법과 독주에 면죄부를 주는 데에 동참했다. 정의당은 ‘민주당 유사품’으로 보여지기를 자처했고 당 지지율은 그렇게 바닥을 쳤다.

    선거가 어떤 구도로 짜여 있건 후보들에게 정당의 지지율이 큰 밑천이다. 거기에 지역 활동 등 후보의 경쟁력이 더해진다. 소수정당에 속한 무명에 가까운 후보들에게 정당 지지율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오히려 당의 이름이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국회 여당’인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했던 사람이 ‘민주당 유사품’에 표를 줄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도 싫고 민주당도 싫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도 번번이 민주당 지지층의 비위를 맞추기 바쁜 민주당 하위정당에 표를 줄 리 만무하다. 아무리 지역 활동을 열심히 하고, 진보정당만의 선명한 목소리를 내도 중앙당이 만들어놓은 민주당 하위 파트너 정당 이미지를 벗기기 어렵다.

    당 지도부는 선거 막바지까지 기득권 양당체제가 아닌 다당제로의 정치개혁을 외쳤다. 중요한 순간마다, 정치쟁점화된 사안마다 민주당과 손발을 맞출 정당이 왜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하나. 양당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왜 다당제 정치를 호소하나. 선거철마다 양당이 버릇처럼 반복해온 무릎 꿇고 절하고 읍소하는 구태스러운 모습까지 따라 하는 정의당이 광주에서 제2당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정의당의 다당제 정치개혁이 공허한 이유다.

    실망을 넘어 무관심의 경지에 이르렀다. 완패가 아니라 몰락이다. 정의당은 지금이라도 노선을 정해야 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정한 민주당 2중대로서 그 지지자들에게 비례의석이라도 구걸해야 할지, 아니면 진보정당의 선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민주당에 완전히 독립한 진보정당으로 다시 나아갈지 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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