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연대전략 비판의 문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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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8일 0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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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싸고 여러 비판이 있다. 사회연대전략이 노동자 임금양보론에 다름 아니고, 노동자계급의 분열을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이 주요 내용이다. 향후 생산적인 논의를 기대하며 이에 대하여 몇 가지 의견을 밝힌다. 

       
     
     

    사회연대전략은 투쟁-소득-임금연대 포함하는 상위 개념

    사회연대는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상호의존성을 강화하는 사회운동적 활동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권위주의 정권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항해 왔던 한국 진보진영에게 사회연대는 ‘투쟁을 통한’ 연대와 동일시되어 왔다. 투쟁연대는 사회연대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연대가 투쟁연대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사회연대는 투쟁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행해질 수 있다. 진보정치연구소에서 제안한 소득연대도 사회연대의 한 영역이다. 스웨덴에서는 연대임금정책도 선보였다.

    이렇게 사회연대는 투쟁연대, 소득연대, 임금연대 등 다양하게 실현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사회연대적 제도인프라가 취약한 탓에 아직까지 이를 체험하지도 제대로 제기하지도 못해 왔다.

    민주노동당에서 추진하는 국민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이하 국민연금지원사업)도 넓게 보면 소득연대에 해당된다. 광범위한 연금 사각지대 저소득계층을 공적연금 틀 안으로 포괄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의 기여를 요청하는 사업이다.

    현재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친 사업은 국민연금 지원사업이고, 진보정치연구소의 세금 및 사회보험료를 통한 소득연대사업은 정책팀 선에서 검토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 나는 물론 소득연대에도 찬성한다.

    시장임금론 인식틀 벗어나야: 시장임금 양보와 사회임금 참여

    아마 진보진영에서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싸고 찬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처음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의아해 할 것이다. 사회연대는 진보운동이 추구해야할 당연한 의제이지 않은가?

    이것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공공재원 마련에 노동자도 일부 참여하자는 ‘참여적’ 사회연대전략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논점은 ‘참여’에 있다. 이 ‘참여’가 진보운동에서 용인되는 것인지, 혹 용인되더라도 그 참여방식이 적절한 지가 쟁점이다.

    임금양보론, 정규직 책임론 정확한 비판 아니다

    사회연대전략을 비판하는 쪽은 이 참여를 노동자의 임금양보론 혹은 정규직 책임론으로 간주한다. 나는 이들의 선의와 우려를 존중한다. 나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다른 노동자의 임금을 양보하라는 주장이 있다면 이에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지원사업의 실체에 대해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국민연금 지원사업은 노동자 임금양보론으로 폄하될 수 없다. 오히려 진보적 방향에서 사회임금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두 가지 재원으로 살아간다. 하나는 노동시장에서 고용주에게 받는 시장임금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나 공공부문을 통하여 얻는 사회임금이다.

    만약 아동수당이라는 사회임금을 10만원 받는다면 이는 임금협상을 통해 고용주로부터 10만원 시장임금을 인상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이 제공되어 현재보다 임대료를 20만원씩 절약할 수 있다면 그만큼 시장임금을 올린 것과 같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의 재원 형성과정이다. 시장임금은 기업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자본의 이윤과 나눈 몫이다. 그래서 시장임금에서 노동자의 양보론은 진보적 입장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정규직 임금을 쪼개어 비정규직에게 지급해도 노동의 몫은 불변이다. 정규직 책임론이라는 이데올로기만 득세할 뿐이다.

    반면에 사회임금의 재원은 자본이든 노동이든 부가가치에서 ‘분배’받은 자신의 몫에서 다시 일부를 공공재원으로 ‘재분배’하여 조성된다. 누진적 세금을 통하든 사회보험료로 납부하든 고소득자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설계되는 것이 보통이다.  

    노동자 사회임금 기여는 양보가 아닌 참여

    하지만 사회임금이 다양한 제도 형식으로 존재하기에 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재정 기여는 불가피하다. 세금의 경우 계층별 세율이 정해져 있고, 사회보험료도 가입자가 기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동자 기여분의 크기는 계급간 역관계에 의해 정해지겠지만 기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면에서 사회임금에서 기여는 양보가 아니라 참여이다. 그냥 박탈당하는 돈이 아니라 사회임금이라는 형태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재분배될 돈이기에 그렇다. 이 때문에 사회임금 재원 형성을 위한 노동자들의 참여를 시장임금 양보론이라는 인식틀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회임금에서 실제 쟁점은 참여 자체에 대한 찬반보다는 계층별 소득세 누진율, 사회보험료율 수준 및 노사부담 비중 등 참여 몫을 둘러싼 것이어야 한다.

    사회임금의 재원 참여가 부유세 운동에서 후퇴한 것이라는 비판도 동의하기 어렵다. 비록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부유세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부유세처럼 최상위 계층에게만 책임을 부가하는 세목도 있고,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소득세나 사회보험료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입자에게 후하지만 비가입자에겐 냉정한 국민연금

    국민연금에서 사업장 가입자들은 이미 연금 보험료로 재원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미래 급여를 인하하거나 보험료를 더 내라니 이것은 과도한 것 아닌가? 참여가 지나치면 사실 양보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논의해야할 논점은 현행 사업장 가입자들이 사각지대 노동자의 연금보험료 지원을 위해 추가로 부담하는 것이 그리고 그 금액이 과연 적절한가에 있다.

    나는 현행 국민연금이 가입자와 미가입자에게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가입자가 얻는 제도적 수혜는 매우 후한 반면 미가입자에겐 아무런 혜택도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자신이 낸 본인부담 보험료에 비해 평균 5배 가량 연금을 받을 예정이다.

    (사용자가 보험료를 절반 부담하고 계층별 누진수익비가 적용되어 최상위계층은 3.5배, 하위계층은 7배 이상 받게 됨. 예를 들어, 1999년부터 20년간 가입했을 경우, 월 소득 159만원 노동자는 약 1,850만원을 내고 노후에 약 8,300만원을, 월소득 360만원 노동자는 약 4,200만원을 내고 1억 4천만원을 받음. 보험료 및 급여총액 모두 실질가치 금액)

    연금 가입자 제도수혜분 지원은 ‘참여적 사회연대’

    국민연금이 지닌 핵심 문제는 2,400만 경제활동인구 중 공적연금(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에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1,000만명 이상의 사각지대 서민들이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차별에 이어 나중에 공적연금에서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해 노후빈곤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이들을 공적연금을 포괄하기 위하여 현재 가입자들이 자신의 제도 수혜분 일부를 보험료지원 재원으로 돌리는 일은 참여적 사회연대라고 판단한다.

    이 사업에서 약 644만명의 저소득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소요되는 재원은 약 13조원이다(국민연금 신규가입에 따른 사업주의 법정부담금 4조원을 포함하면 총 17조원). 이중 노동자가 실제 참여하는 금액은 미래 급여율 인하분 3조원, 360만원 초과소득자 누진 부가보험료 중 약 1조원 등 총 4조원이다. 나머지 9~13조원은 국가와 자본의 책임 몫이다.

    미래급여 인하를 통한 재원 참여는 상징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사업장 국민연금 가입자 850만명 중 월소득 117만원(중위임금 대비 90% 소득) 이상 노동자 약 600만명(2006년 기준)이 자신의 미래 연금액에서 월 1,700~3,200원(평생 37만원~70만원)을 보험료 지원재원으로 전환한다.

    미래연금 소득 2천원 덜 받는 연대, 그 효과는 심대

    종종 117만원 노동자의 급여도 깎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현행 시장임금을 인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제도 수혜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가입자 대부분을 재원마련 주체에 포함시켰다. 이 과정에서 가입자와 미가입자 사이에서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편 과세소득 기준 360만원 이상 소득자(실제소득으론 연봉 5천만원 수준)에게 누진 부가보험료를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 제기되는 정규직 책임론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 상한선 소득인 360만원은 건강보험의 5,080만원에 비해 턱없이 낮다. 사회보험 원리에 따라 이들이 소득에 맞추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책임이다. 특히 누진 부가보험료율이 적용됨에 따라 보험료 부담은 고소득층일수록 더욱 커진다.

    굳이 책임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정규직 책임론보다는 부자책임론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선 소수이지만 연봉 5천~7천만원 구간 노동자들이 월 2천원~1만4,000원씩 보험료를 더 내게 될 것이다).

    진보적 헤게모니정치 구현하고 계급주체 형성 계기 마련

    비판자들은 사회연대전략이 진보운동의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나온 수세적 전술이라고 평한다. 현재가 위기 국면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사회연대전략이 그 때문에만 제안된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임금 혹은 사회복지 확대에 동의한다면 참여적 사회연대전략은 진보운동이 수행해야 할 기본활동 중 하나다.

    우리 운동에서 실종되어 왔던 활동을 복원하는 것이며, 진보진영이 신뢰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라 더 절실할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사회임금은 매우 취약했다. 국가재정도 빈약하고 사회구성원의 복지체험도 미미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진보진영이 참여적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사회임금 확대투쟁을 선도할 수 있다면 이것에서 얻는 사회운동적 효과는 막대하다.

    사회연대전략의 사회운동적 효과 막대

    사회임금은 기업별 지불능력 테두리를 넘어서고, 재원마련과 지출과정을 둘러싸고 계급간 이해를 확연히 드러내며, 모두 법과 제도로 정해지기에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급여이다. 지금까지 진보정치가 놓쳐 왔던 주요한 계급정치적 의제인 것이다.

    종종 우리가 요구한다고 국가와 자본이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 우리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운동의 압력이 거세지 않는 한 이들이 우리의 요구를 순수히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 아니다.

    이 전략의 본령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노동자 내부의 대화이며, 이를 기반으로 진보운동이 사회적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데 있다. 국가와 자본의 양보는 이것의 결과로서 나타날 뿐이다.

    나는 참여적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진보운동의 헤게모니정치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분절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다독이고, 사각지대에 속한 대중들과 실제 이야기를 나누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의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진보정치 말이다.

    이러한 진보적 헤게모니정치가 확대되는 과정은 다수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원들, 즉 노동자들이 하나의 의식,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진보진영이 비로소 대중을 선도해 나가고, 노동자들은 조금씩이나마 공통의 정체성을 지니는 계급주체로 형성되어가는 진보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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