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보다 조봉암 농지개혁에서 배워라
    By
        2007년 01월 09일 12:45 오후

    Print Friendly

    진보진영에서는 브라질의 룰라를 필두로 하여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등 남미의 새로운 물결에 많이들 주목한다. 심지어 흘러간 인물이라고 생각되던 니카라과의 오르테가(산디니스타)까지 재집권을 했으니 말이다.

    남미에 대한 관심과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 

       
      ▲ 남미 전도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실험을 한다면 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나,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가로막을까 두렵다.

    특히, 타협적인 노선을 걷는 것으로 보이는 룰라에 비해 거침없는 반미 발언을 쏟아내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대한 관심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뜨거운 것 같다. 그러나 차베스나 남미 정부의 노선이 과연 한국에서 참고할만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규모의 차이다. 한국은 GDP는 세계 10위권으로 전체 경제 규모가 한국과 비슷한 나라는 남미에서, 인구와 국토가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브라질(GDP 8위) 정도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이미 구매력 기준으로 2만달라는 넘어 섰는데, 남미에 한국과 비교되는 나라는 없다. 반면 유럽을 보면, 1인당 GDP가 한국과 비슷한 나라는 체코와 그리스 정도인데, 전체 경제규모는 한국과 비견할 수 있는 유럽국가는 스페인 정도다.

    즉, 한국은 경제적으로 보면 소위 말해서 선진국의 초입에 있는 나라임에는 분명하나, 특별히 비교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나라가 마땅치 않다는 의미도 된다.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그는 민주주의자인가? 

    사실 남미의 좌파정당이 성공하는 것을 한국의 진보진영이 부러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관심의 대상에 그쳐야지 그들의 경로를 참고할만한 것은 많지 않다. 차베스의 예를 들어보자.

    만약 한국에서 베네수엘라처럼 석유가 나온다면, 사실 차베스식 반미노선을 취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베네수엘라는 테러를 사주한 것도 아니고, 이란이나 북한처럼 핵무기를 만들었거나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도 아니니 이 나라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무리 무도한 미제국주의라고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작년 2/4분기 경제성장률이 9.2%인데 이는 상당부분 석유가의 고공행진에 힘입은 바 크다. 만약 한국에 석유가 나왔다면 IMF 위기 때도 한국이 배짱을 부릴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국가재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는 별다른(?) 부담 없이 모라토리움 선언을 했고, 지금 러시아 경제는 역시 7.4%(작년 2/4분기)의 높은 성장률을 자랑하고 있다.

    차베스식 ‘볼리바르 혁명’이 과연 한국의 진보진영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헌법 개정 후 차베스는 한동안 국민투표에 의존한 바 있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이고 새로운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2000년 경 차베스는 노동조합의 선거를 국가가 감시한다는 내용의 국민투표까지 실시한 바 있다.

    이는 부결되기는 하였으나, 국영석유노조 등이 차베스의 반대세력이라고 해도 분명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베네수엘라의 신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고, 3번의 연임, 총 18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만약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정권에 반대하는 우익노조들이 파업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선거를 감시하는 내용의 국민투표를 제안한다면 그것을 과연 민주노동당이 취할 수 조치로 볼 수 있을까.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을 너무 한 면만 강조하여 비판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이미 한국은 상당히 분화되고 분권화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베네주엘라식 체제를 취한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세계 보수파의 기대(?), 브라질의 룰라

    초기 진보진영은 브라질의 룰라에 열광하였다. 그러나 룰라가 연금개혁조치를 취하는 등 우경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룰라에 매우 비판적이 됐다. 게다가 전세계의 보수적 인사들은 룰라가 절반 쯤 정신나간(?) 차베스를 제어하여 남미의 좌파바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차베스보다 더 급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볼리비아의 모랄레스에 대해서도 룰라가 역할을 하여 과도한 급진화를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브라질의 현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원으로는 부족할 것이 없는 나라가 세계최고의 빈부격차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룰라가 대통령이 된 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굶는 자가 국민의 20%, 절대빈곤층이 40%, 문맹률이 20%에 달하는 이 거대한 나라에서 공무원과 공식부분 노동자(우리로 말하면 정규직)에 대해서 최후소득의 80%~120%까지 지급되는 연금은 브라질의 재정을 압박하여 왔다. 이에 대한 개혁이 결코 신자유주의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브라질의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룰라가 집권하기 전인 2002년의 상황은 대기업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20%, 중소기업 80%, 신용카드 이자율은 250%에 달하여 금융에 의한 산업의 착취가 노골적인 상황이었다. 더욱 가혹한 것은 매년 3.87%의 재정흑자를 달성하라는 것이 IMF의 구제금융조건이었으니 브라질 정부의 예산운용은 대단히 제한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소개한 브라질의 참여예산제도 그렇다. 그 민주주의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참여예산제가 브라질에서 가지는 의미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실 상의 수도나 다름 없는 인구 1,000만이 사는 상파울로에 전기와 수도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 있다.

    주민들은 이 지역에 전기와 수도 시설 설치를 원했고, 한정된 범위지만 예산의 우선순위가 거기에 맞추어졌던 것이다. 교육문제도 그렇다. 높은 사교육과 교육불평등이 노동자당의 관심사가 아니였다. 노동자당답게 글을 모르고, 교육 받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들을 어떻게 재교육시킬 것인가가 최우선의 관심사였다. 교육없이 빈곤탈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브라질에서 노동자당과 룰라의 성공은 그 사회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룰라의 취임일성은 ‘Zero Hunger Policy’라고 하여 "굶는 자가 없게 하겠다"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브라질 사회에서 가장 급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과연 브라질과 룰라의 모델을 참조할 수 있을까. 한국의 상황은 전기나 수도를 누구나 이용하게 하자는 원초적인 상황을 벗어난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1인당 GDP가 2만달라(구매력기준)를 넘어선 지금까지 한국 정도 경제적 수준의 나라가 누리는 일반적 복지혜택을 한국의 인민들은 전혀 향유하고  있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와 박정희의 은행 국유화 

    코카 재배 노동자 출신의 모랄레스는 남미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볼리비아는 남미의 최빈국 대열(1인당 GDP 2,900달라, 2005년도 구매력 기준)에 해당하는 나라로,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어 개발된 천연가스의 민영화로 정치적 위기가 촉발되었고, 원주민 출신의 모랄레스는 천연가스 재국유화 등을 모토로 걸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실제로 모랄레스는 천연가스를 국유화하는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사회주의적인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실제로 천연가스 국유화에 대해서 볼리비아의 자본가들은 반대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들 소유가 아니었고, 대부분 외국자본 소유였기 때문이다. 가장 피해를 입은 국가는 브라질이었다.

    경제발전의 필요성이 매우 낮은 국가에서 유일무이한 천연자원을 국유화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주의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는 은행을 국유화하였는데, (5% 이상 의결권 행사 금지, 은행 임원을 정부에서 임명) 이것을 가지고 박정희를 사회주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는 저축을 늘리는 수밖에 없고, 그 저축된 돈을 사실 상 국가가 통제하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모랄레스 또한 천연가스를 국유화하여 그 것을 경제발전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볼리비아가 베네주엘라식의 체제를 채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인당 GDP 2,900달러의 볼리비아의 길은 실제로는 볼리비아가 자신이 가진 천연가스라는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연자원을 국유화하는 것이 절실한 국가와,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 등의 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비교대상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판 DJ, 니카라과의 오르테가

    무장봉기를 통하여 소모사 정권을 뒤집어 엎은 산디니스타는 1989년 선거에서 미국의 경제적 압력에 지친 국민들의 지지 철회로 실각한다. 2006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산디니스타의 오르테가는 한국판 DJ인지도 모른다.

       
      ▲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산디니스타를 사당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 지지율도 38%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선거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던 우익게릴라인 콘트라 측 인사와도 손을 잡았으니 이는 DJP 연합에 비견할만하다. 지지율도 저번 선거보다 하락하였는데, 우파 후보가 분열하여 당선되었다.

    시사적인 것은 산디니스타가 실각한 때와 현재의 니카라과는 경제적으로 전혀 향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당선된 오르테가는 경쟁 후보와 같이 니카라과의 재건을 약속했다는 점으로 보아도 니카라과의 현재는 대단히 고달프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장봉기를 통한 혁명, 미국의 압력에 의한 우파의 선거를 통한 집권, 우파의 분열과 무능, 실정으로 다시 재집권의 경로를 걸은 중미의 최빈국 니카라과에 대해서 87년 이전이라면 모르되 현재의 한국의 진보진영이 과연 얼마만큼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의 모델

    한국의 모델은 다른 나라에서 빌려 올 수 없다. 한국의 자본주의화는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고성장을 통해, 한국 나름의 독특한 경로를 밟아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남미의 예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일 수는 있어도 한국의 경제규모와 수준으로서는 도저히 참고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진보진영이 특정 국가를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유럽의 모델을 보다 더 많이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 정치적 상황은 확연히 다르지만, 경제수준이나 규모가 유럽에 거의 비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몇몇 산업은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죽산 조봉암 선생
     

    실제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보적인 대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안은 유럽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규모가 점점 거기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요구나 필요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이러한 대안을 달성하는 정치적 경로에 대해서는 유럽보다는 오히려 관심은 남미가 더 많이 논의된다는 데에 있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이들도 영국노동당이 2차대전 직후 베반(Aneurin Bevan)의 주도 아래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어떻게 관철시켰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이는 마치 조봉암이 농지개혁을 관철시켜 농민들을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해서 한국의 진보진영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과 동일하다. 스웨덴 사민주의를 찬양하는 이들은 현재의 스웨덴 모델만 이야기하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과 스웨덴노동총연맹(LO)가 이러한 노선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관철시켰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은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당시에는 구체화되지 못했지만, 기본원칙은 충분히 천명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의료와 교육을 무상으로 하겠다고 제시한 것은 이 두 분야가 비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노동의 안정성과 가치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것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제시한 것이다.

    세계화시대에 자본은 이동할 수 있어도 한국에 두 다리를 뿌리내고 살 수 밖에 없는 1천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도 의료와 교육은 최소한의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유세를 이야기한 것은 분배의 철학을 이야기 한 것이자, 부자들의 더 많이 부담하는 방식의 증세를 통하여 성장의 동력이 되는 교육과 의료에 국가가 집중 투자하자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러한 기본 원칙을 보다 더 구체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명박의 대운하 구상과 맞서는 것은 그것의 허황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나아갈 바가 분배를 통한 성장임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진보진영이 한국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