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무죄 무전유죄,
    태광그룹과 검찰공화국
    [기고] 황제보석 총수의 출감 후 첫 일성과 행보, "총알받이, 탈법중용"
        2022년 02월 27일 09:3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2월 23일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는 태광그룹 전 계열사 19곳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21억 8천만원의 과징금부과납부명령 등 취소소송 청구를 기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이 와인·김치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19개 계열사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총수일가에게 최소 33억원 상당의 이익을 귀속시킨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고, 법원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옳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에 재판부가 태광그룹이 전 계열사를 동원해 이뤄진 조직적인 일감몰아주기 행위가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판결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이를 주도한 당시 경영기획실장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다만, 검찰은 그룹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해서는 불기소처분을 내렸고, 이에 따라 법원 역시 공정위의 이 전 회장 개인에 대한 시정명령을 취소하였는데, 이는 사법부의 구태의연한 ‘총수 봐주기’ 행태가 또다시 반복된 것이라 할 것이다.

    전방위 로비 의혹의 황제보석, 태광그룹

    태광그룹이 어떤 대기업인가? 무려 4,300명 정관계 고위직에 대한 골프 리스트가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폭로된 기업이다. 이 리스트에는 전직 검찰총장과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원 고위직까지 총망라되었다. 이것이 바로 검찰이 유독 태광그룹과 그 총수에 관대하다 못해 온순한 모습을 보이는 행태가 반복되고, 그들이 사법 카르텔로 의심을 받는 이유이다.

    10년 전에 청와대 관계자들을 타겟으로 한 성매매 로비 사건을 일으켰던 대기업 역시 태광그룹이었다. 이렇듯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정관계 로비로 잦은 구설에 올라도 끄떡없는 태광그룹에 대하여, 서초동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지휘하는 대기업”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그러한 이호진 전 회장은 배임 횡령으로 구속 판결을 받았음에도, 희대의 능력으로 조직한 사법카르텔을 바탕으로 무려 8년간이나 병보석을 핑계로 수감을 회피하고 사법체계를 농락하면서 태광그룹을 배후 조종해왔다.

    우리 시민사회 단체가 몇 차례나 “황제보석”의 증거를 공개하면서 실상을 고발했으나, 대한민국의 50대 기업인 태광그룹은 만천하에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는 거짓말로 세상을 우롱해왔다. 결국 “황제보석”의 실체가 공중파 뉴스에 드러나고 병보석이 취소되자 태광그룹은 다급하게 정도경영위원회를 발표하고, 경영혁신을 공개 약속하면서 사회공헌, 기부활동에 대한 홍보 보도자료를 언론에 살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수 출감, 즉각 과거로의 회귀

    작년 10월, 이호진 전 회장이 만기출소하자 시민사회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제기되었다. 지난 20년간 태광그룹 주변에서 끊임이 없었던 역사와 논란을 살펴본다면 당시 귀추는 명확해 보였다.

    1. 이호진 전 회장은 법적 책임을 지는 지위에 복귀하지 않는다.
    2. 대표이사들은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총수 경호대로 구성된다.
    3. 사법 논란의 문제적 인사들이 그대로 복귀할 것이다.
    4. 철저히 총수 보위의 경영체제로 회귀해서 논란이 지속된다.
    5. 실체를 감추기 위한 기업홍보 활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이러한 예견이 현실로 바뀌는데 불과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장 “황제보석”과 “고위직 로비 의혹”의 핵심이자 현재 태광그룹의 김치·와인 부당내부거래 사건으로 재판중인 김모 전 경영기획실장이 경영고문으로 경영 일선의 전면에 복귀했다고 확인된다. 사실상 경영에 복귀한 이호진 전 회장과 김모 고문의 첫 일성은 작년 호실적을 기록한 태광그룹 4대 계열사 대표이사의 교체였다.

    대한민국 재계 역사 최초로 50대 기업의 핵심 계열사의 신임 대표이사 중 경영전문가가 전무하다. 오죽하면 태광그룹의 갑작스러운 대표이사 인사에 대해 다수 언론이 대관 로비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대응이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대표이사가 “로비스트”와 “방패막이”

    흥국생명 등 흥국금융그룹의 주요 계열사 신임대표는 정부기관과 언론인 출신으로 기업 경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다. 목적은 명확해 보인다.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고려저축은행에 대한 금융사지배구조법이 걸리는 이호진 전 회장의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대관 로비일 것이다. 금융위원회 등 감독기관을 직접 겨냥하는 태광그룹의 공개적이고 저돌적인 행보가 놀라울 정도이다. 모두가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태광그룹의 공격적인 마인드가 어떠한 결론을 맺을지 시민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태광산업 등은 공장장 출신들이 대표이사를 맡았는데 이 역시 전례를 찾기 힘든 비경영자 출신의 매우 이례적인 인선이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무려 3계급 특진에 가까운 인사에 대해 사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평가는 “방패막이, 총알받이”였다. 전국 최대의 방사성폐기물을 은폐하고, 처리해야 하는 태광그룹 입장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총수에 대한 법적 책임 위험이 급부상하자 이에 대한 현장 운영 전문가들을 대표이사에 앉혔다는 것이 내외의 중론이다. 실제로 신임 대표이사들은 대규모 방사성폐기물 적치 당시 생산부장 등을 역임한 관련 책임자였다고 한다.

    결국 재계와 언론이 진기하게 바라봤던 태광그룹의 갑작스러운 핵심 계열사 대표 교체는 “총수 보위”와 “비경영자”라는 두 가지의 공통점을 보였다. 여기에 갖은 불법 행태로 전국적인 논란이 된 측근을 다시 내세운 것은 태광그룹에 변화와 혁신은 없다는 선포와도 같다.

    이렇듯 지난 십수 년간 경제민주화에 가장 반하는 대기업 중 하나이며, 희대의 사건, 사고를 일으켜 온 태광그룹이 경영혁신과 사회책임에서 일보의 개선도 이루지 못하는 데에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관계 고위인사들 수천명의 골프 로비 리스트까지 폭로된 대기업에 대하여 유전무죄로 무혐의를 반복하는 검찰은 이 사회의 정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태광그룹의 와인·김치 부당 내부거래 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이호진 전 회장에 무혐의를 결정한 이유는 지시, 관여한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검찰 공화국에서는 업무지시자와 이익취득자, 이해관계자 등 정황상 대기업 총수의 관여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총수의 육성과 문자 등 직접증거 없이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진정한 유전무죄의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22년이 되어서도 이 나라의 경제민주화 담론은 이렇듯 사법카르텔이라는 닻에 묶여 멈춰있다.

    필자소개
    흥국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