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아파하지 못할망정 일해공원?
        2007년 01월 05일 06:26 오전

    Print Friendly

    "평생을 지나도 아물지 않을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해 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한숨) …. 군수가 합천 군민을 완전히 전국적으로 욕 먹이는 거죠."

    경남 합천에 전씨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과연 들어 설 수 있을까? 정해년(丁亥年) 벽두부터 일해공원 대통령 논란이 온오프라인을 넘어 전국이 들썩이게 하고 있다.  5,18 광주 항쟁 27돌, 6월 민주화 항쟁 20돌을 맞이했건만, 각종 언론들은 합천 군민의 51%가 일해 공원에 찬성한다는 이색적인(?) 보도로 새해를 장식했다.

    지역 ‘유지’들 여론이 군민 여론으로 둔갑

    합천군은 밀레니엄 사업으로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총 100억원을 들여 황강 변에 ‘새천년 생명의숲’ 공원을 조성했다. 이 곳에는 ‘3·1운동 기념탑’, 합천 출신 문인 이주홍(향파)의 시비와 전신상, 일본 교포들의 모임인 경남도민회에서 1억2,000여 만원을 들여 기증한 나무, 산책로, 야외 공연장 등이 들어서 있다.

    명칭 논란은 지난 2004년에 이미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합천군은 2004년 ‘새천년 생명의숲’ 공원 명칭을 공모, ‘일해’로 명칭 변경을 추진해 이미 논란을 빚은 바 있었다. 그러나 전씨의 42억 은닉이 또 한번 터지면서 논의가 수면으로 가라앉은 듯했으나, 2006년 말 합천군은 다시 아무런 공식적 통보도 없이 갑자기 명칭 변경을 강행했다.

    그리고 언론은 지역 여론이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레디앙>은 "설마하니 합천 군민이 51%나 지지했을까. 그게 정말 ‘사실’일까?", "혹시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가지고 4일 급히 합천을 다녀왔다.

    그 결과 여론 조사의 대상은 합천 군민이 아닌 ‘준 공무원급’의 ‘지역유지’였으며, TV나 신문을 통해 ‘괴소문’ 을 접한 합천 군민들은 ‘모르거나 반대를 하는 쪽’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설문조사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 돼 이 부분에 대한 검증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주구들끼리 다 맹글어 놓고 군민들은 욕만 먹으라?"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은 합천 읍민들에게 합천을 대표할만한 자부심이자 자랑이었다. 서울과 비교하면 시민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한강’ 같은 문화적 상징 공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공원을 애용하는 군민들은 공원의 명칭변경 소식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공원을 이용하는 군민들, 공원 근방의 주민들을 무작위로 30여명 만나본 결과 그들은 행정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들도 모르는 명칭변경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공원 앞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황강(가명, 38)씨는 "군청은 정작 공원을 매일같이 이용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단 한마디도 알리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공고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다"면서 "아무리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 할지라도, 광주 사람들에겐 평생을 지나도 아물지 않을 상처인데 같이 아파해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일해’ 라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긴 한숨) 완전히 합천 군민들을 전국적으로 욕 먹이고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아들과 공원에 산책 나온 김지영(가명, 36)씨도 "솔직히 여기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지 못하는데, 군이 바로 그런 심리를 적절히 이용했다."며 "우리 군민들은 그런 통지를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며, 나 또한 뉴스에 나온 걸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전두환 80년 당시 행동 있을 수 없는 일

    그는 또 "굳이 왜 그 이름을 빌려야 하나? 지역을 떠나 같은 국민으로서 정치인이 권력을 얻기 위해 광주 사람들에게 그런 행동을 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계산에 우리 군민들이 악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지역감정을 없애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50 대 미만의 젊은 층들은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이유로 광주에 대한 ‘역사적 부채감’을  내세웠다. 이어 50대 후반의 중장년층 또한 군의 행정절차에 불신을 표하며, 전씨의 대외적 이미지와 지역 발전에 공헌이 없었다는 점을 반대 근거로 제시했다.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의 일인 시위를 출근길에 자주 지켜 봤다는 김 아무개(58)씨는 "공원을 누가 사용하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군민이 사용하는 거 아닌가? 명칭문제는 둘째로 하고, 도대체 누구 맘대로 결정하고 조사했나?"라며 "공청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군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은 했어야지, 자기 대리인들을 모아놓고 설문조사를 벌여 군민들에게 욕을 먹이는 건 우리를 우습게 보는 행태"라며 화를 참지 못했다. 

    또 그는 "솔직히 우리 군민으로선 대통령이 나왔는데, 나쁠 게 뭐 있겠나? 다만 시기상조이다. 그리고 솔직히 전 전 대통령이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출신 지역을 너무 안 챙겼다"라며 "그 흔한 도로나 철도 하나가 지나가지 않는다. 지역이 계속 몰락할 동안 그동안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사 우리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공원에 이름을 다나?"라고 말했다.

    매일 공원에 산책을 다니는 합천 토박이 할아버지 박모씨(80)도 "주구 편들끼리 다 맹글어 놓고 우리 군민들은 욕만 먹으라는 거 아이가? 나도 TV이에서 봤다. 이거이 웬 아닌 밤 중 홍두깨여?"라며 "역대 대통령 출신지 가운데, 우리 합천군만 유일하게 ‘시’로 승격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역에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또 대외적으로 이미지도 안 좋아 어데 가서 합천군이라고 말하는 게 남세스러울 때가 많은데, 왜 또 자기가 이용할 공원도 아니면서 우리 공원에 호를 다나?"라고 반문했다.

    전경환 씨가 관리했던 새마을남녀지도가 설문조사 대상?

       
     
     

    주민들 반응이 이렇게 한결같은데 합천군이 언론에 배포한 51% 찬성이라는 수치는 과연 어떻게 나온 것일까? 합천군은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의 정식 명칭을 정하기 위해 4개 예비 명칭을(일해·죽죽·황강·군민공원) 대상으로 지난 달 15~28일 사이 우편 설문 조사를 벌였다.

    설문조사 대상은 군 행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새마을 지도자 734명, 마을이장 367명, 도, 군 의원 13명, 읍, 면장 17명, 관변 단체 대표 등 1,364명이었다. 그 결과 설문조사 회수율은 601명으로 즉, 44%에 그쳤다. 이 중 우편 소인이 찍혀있지 않거나 규격 봉투(설문지)를 사용하지 않은 11개를 제외해 591개 봉투를 대상으로 조사를 집계했다.

    정족수 미달의 회수율 591표 가운데, ‘일해’에 지지표를 던진 사람은 302명으로 1,364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22%’에 불과하다. 게다가 설문 대상의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새마을 지도자 (734명)는 전씨의 동생 전경환씨가 관리했던 곳이자, 현 심의조 군수가(한나라당) 새마을 지도자 합천 지회장을 역임했던 ‘특정’ 단체였다.

    이 결과를 보고 놀란 건 오히려 일해 명칭 저지 운동을 벌였던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쪽이었다.

    합천에 소리없는 양심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했다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 강선희 위원장은 "행정 기관의 촉수인 준 공무원 집단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집계해 적어도 90% 이상의 지지율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설문 조사의 낮은 회수율과 지지율을 보며 오히려 합천에 소리 없는 양심이 살아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실제로 합천 군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일반 군민들의 반응이 예상 외로 뜨거워 스스로도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설문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도 많은 잡음이 있었다. 합천군은 지난 달 28일 오후 군청 소회의실에서 설문조사 개봉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회의 참석 인원 및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지역 언론사 출입 제한, 경찰 경비 요청 등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여 지역 언론사 및 시민단체들에게 빈축을 샀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윤재호 열린우리당 군의원은 "여론 조사 결과를 공표하는 자리인데, 마치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인 양 황당한 상황이었다"라며 "군민들의 진짜 여론을 담아내지 못한 설문조사는 애초부터 잘못 된 것이며, 29만원 밖에 없어 세금도 안 내는 사람을 우리 세금으로 도와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또 윤 의원은 군정질의를 통해 설문조사 전에 심의조 군수가 읍·면장 회의 때 "일해공원으로 해달라"는 협조요청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심 군수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합천의 한 이장은 "설문 조사 기간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금지 돼 있으나, 읍면장과의 회의에서 ‘ 부산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 공원(현 용두산 공원)이 있듯 우리 합천에도 전두환 대통령의 호를 딴 공원이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독려를 읍면장이 직접했다"라며 "읍,면장들이 군수에게서  지시받은 말을 옮긴 것 같다"라고 말해, 설문 조사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동안 소리 소문 없이 합천군이 벌인 전씨 관련 사업이 의심을 사고 있다.  매년 세금 800여만 원을 들여 관리하는 생가, 전씨의 고향 마을길 재포장, 선영 방문(조부산소)을 돕기 위해 건설했다고 의혹이 제기되는 ‘두사~기리마을 간 교량 가설 공사 등이 ‘일해’ 명칭 변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소문이 합천에 떠돌고 있다.

    지역유지가 지역여론을 대표한다고?

    이와 관련 합천군 관계자는 "전 대통령의 고향인 율곡면 출신 군민들이 일해 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얘기했는데, 사회적 논란을 낳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제외시키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지 않는가?"라며 "원칙적으로 모든 군민에게 다 알리면 좋겠지만, 군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있는 새마을 지회, 전직 도·군의원과 마을 이장 등이 군민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2004년 처음 이름을 공모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또 군민들도 다른 적절한 이름들을 공모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며 "결과론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작은 부분을 확대 해석해 오해를 만들고 있다. 그 밖에 역사적 인식이나 정치 관련 부분은 생각해 본적도 없고, 또 공무원으로서 발언 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소속 박현주 군의원은 "군청 관계자로부터 ‘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서를 보내서 뭐 할 건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발언은 군 관계자가 생각하는 지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유지들을 지역 민심으로 인식하는 발상부터가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이미 문제가 있어 2004년 부결된 ‘일해 명칭변경 안건’을 다시 제기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잘못된 행정이다. 소수 전두환 대통령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체감하는 대다수 지역 군민들은 일해 명칭을 바라지 않는다"라며 민주노동당의 반대 운동에 자신감을 피력했다.

    공원의 명칭변경은 앞서 벌인 설문 조사를 토대로 군 조정위원회를 거쳐 올 상반기에 확정될 예정이다. 한편, 일해 명칭변경을 저지하기 위해 그간 활동했던 경남진보연합, 민주노동당 합천군위원회, 민주적 공원명칭 선정을 위한 군민 모임은 합천의 각계각층 시민 대표들과 함께 ‘새 천년 생명의숲 지키기 모임(가칭)’을 만들어 100인 선언, 서명운동, 선전전 등을 통해 지역의 반대 여론을 모을 예정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