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 사망···법 위반은
    있지만 원청 대표는 '무죄'
    원하청 관계자 전원 집유·벌금 그쳐
        2022년 02월 11일 1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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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산업재해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임·직원과 법인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고, 김병숙 당시 서부발전 대표에겐 아예 무죄가 선고됐다. 노동계 등은  “법 위반은 있으나 대표이사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고 비판을 쏟아냈다.

    전날인 1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 2단독 박상권 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부발전과 발전기술 임직원 14명 중 김병숙 당시 대표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백남호 전 발전기술 대표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백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원·하청 관계자 전원에게도 징역·벌금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김용균 씨 세상을 떠난 지  3년 2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서부발전 관계자 7명은 금고  6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20~200시간, 발전기술 관계자 5명에게는 벌금 700만원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200시간을 내렸다. 서부발전 법인은 벌금 1000만원, 발전기술 법인은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컨베이어벨트 가동 중 ‘2인 1조’ 작업 안전지침을 지키지 않은 점을 사고의 원인으로 보고, 이 책임이 원·하청 모두에게 있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원청 관계자들은 업무지침 감독 의무를, 하청 관계자들은 서부발전에 설비 개선과 인력증원을 요청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해 김 씨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을 고려한 방호조치를 갖추지 않고  2인1조로 컨베이어벨트 점검작업 등을 하게 해야 하는데도, 김용균 씨가 단독으로 점검작업을 수행하게 했다. 점검 작업 등을 할 때 컨베이어벨트의 운전을 정지시키지 않는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에 대해선 “컨베이어벨트와 관련한 위험성이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과의 위탁용역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로 봤다. 김 씨의 사고는 김 전 대표가 취임하고 10개월이 지난 후 발생했는데, 그 기간 동안 발전소 위험 설비인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산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발전기술 노동자는 서부발전과 실질적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며 원청 관계자들에게는 이 혐의의 무죄를 선고했다.

    노동계 등은 법원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11일 성명을 내고  “사람이 죽어도 실형을 사는 책임자는 없으며 , 법 위반은 있으나 대표이사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원청 처벌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경영책임자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산안법 개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이전의 법률을 적용했다고 해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판결 ”이라고 비판했다.

    서부발전과 김씨가 실질적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원청 관계자들에게 산안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선 “개정 전 산안법에서도 원청에  22개 위험작업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안전조치, 보건조치에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산재 사망에 대한 판결에서 가물에 콩 나듯이 원청 현장소장 등을 처벌하고 있다”며  “법 위반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용 관계를 들먹이는 재판부 입장은 인정할 수 없다 ”고 지적했다 .

    공공운수노조도 “재판부는 원청 김병숙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앞에 장황하게 직접 고용이 아니기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김용균을 비롯해 하청 노동자들이 오늘도 죽음의 일터로 향하는데 재판부는 지옥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느냐 ”며  “재판부의 선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밝혔다.

    노조는 “재판부의 엄중 처벌만이 또 다른 비극적인, 제2의 김용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며  “오늘 김용균 노동자의 1심 판결은 국민 공감대를 얻어 법을 제·개정해도 결국 경영 책임자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해준 판결 ”이라고 비판했다.

    김용균재단은 “안전과 생명보다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법원이 인정하는 잔인한 선고”라며  “개정 전 산안법에도 이미 많은 내용이 담겨있었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법 해석으로는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새로 만들어도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원청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됐다고 해도 전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원내4당 대선후보로는 유일하게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 강력한 비판 메시지를 냈다 .

    심상정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람이 죽어도 죄가 되지 않는 나라 , 사람 목숨값이 이천오백만 원인 나라. 이게 어떻게 나라인가. 아무리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해도 차오르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고 밝혔다.

    심 후보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 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 만들어 놓고,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사법부가 알아서 하라고 내팽개친 정치권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이 참담한 선고에 답하기 바란다 ”고 촉구했다.

    아울러 “책임져야 할 기업 관계자들은 지난  3년 내내 법정에 서서 책임 회피에 급급했고, 주류 정치가 외면하는 사이에  1심 법원은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며  “2심은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와 우리 사회가 생명과 안전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확립해 사법부를 향해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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