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 라이트? 무엇이 New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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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3일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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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y New Year! 그래 Happy야 항상 좋지, 그러나 New Year는 좀 따져봐야겠다. 해가 하루하루 계속 짧아지기만 해서, 이대로 가다간 빛이 없고 어둠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커다란 걱정과 근심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퍼져나갈 때 극적으로 반전(反轉), 드디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여 비로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New Year에는 분명한 객관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반갑다 New Right, 오래 기다렸다"

    New Right! 듣기 좋다. 실로 오래 기다려온 바가 아니던가? 정녕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시대착오적 수구 꼴통들, 파시스트들이 가당찮게 라이트 혹은 보수를 자처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흑백논리로 자유주의자들까지도 ‘빨갱이’로 몰고 군사독재 시절의 버릇대로 일체의 비판적 사고와 사상을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시대는 끝장나야 한다. 그래서 뉴라이트는 우리 모두가 바라던 바다.

       
      △ (그림= 이창우)
     

    그런데 뉴라이트가 필요하고 바람직하다고 해서 아무나 뉴라이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New에는 객관적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우선 뉴라이트에는 최소한의 자유주의가 필수 요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해야 한다. 간첩죄나 반란죄를 다스리는 데는 형법으로 충분하다고, 사상탄압의 도구로 쓰여 온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개정 사학법에는 찬성해야 한다. 그건 이 사회의 숨겨진 기득권, 어두운 데를 없애고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개혁에 불과하다. 이런 건 바로 Right가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는 사학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한나라당을 꾸짖어야 한다. 사학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수십 명 씩이나 떼를 지어 집단 삭발을 한 목사들을 꾸짖어야 한다.

    나아가서 뉴라이트는 종합부동산세 납세 거부를 선동하는 사람들을 꾸짖어야 한다. 도대체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보수를 보수라고 할 수나 있겠는가? 가당찮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추어서 아직은 턱없이 낮은 부동산 보유세 조차 내지 않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하고 다녀야 제대로 된 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가 진정한 뉴라이트라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자본주의가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북한이라는 새로운 시장, 신개발지, 이른바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 공급처를 확보할 필요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 자본가계급의 주류적 이익, 즉 산업 자본의 이익도 대변하지 못하고서야 라이트라고 할 수가 있겠나? ‘중단 없는 개성공단 사업의 발전’은 바로 뉴라이트가 주장해야 할 것이다.

    뉴라이트의 직무 유기 목록

    그런데 우리는 아직 과문하여 자칭 뉴라이트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학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한나라당을 꾸짖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뉴라이트의 얼굴의 한 사람인 서경석 목사는 오히려 사학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한 목사들에게 동조하여 삭발하였다. 뉴라이트가 종부세의 조세 저항을 비판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영국의 복지정책이라면 항상 떠올리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쓴 베버리지는 보수당원이었음을 아는가? 한국에서 베버리지 같은 보수주의자를 기대하는 건 시기상조인가? 우리는 진정으로, 자본주의의 성숙과 함께 양극화의 모순이 격화되어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이 시점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우리와 더불어 논할 진정한 뉴라이트를 기대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라면 신구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합창하여 비판하는 ‘큰 정부’를 뒷받침한 경제이론가 케인즈가 자유주의자였음을 아는가? 물론 그 역시 대공황이라는 시대 상황의 산물이리라.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한국에는 케인즈같은 자유주의자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그런데 노무현 같은 자유주의자마저 좌파로 모는 올드스런 습관을 벗어나지 못해서야 어찌 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새로움의 근거가 없는 뉴라이트, 우린 행복하지 않다

    올드라이트는 도덕적, 지적 자부심이 부족했다. 친일한 과거도 있었고 독립운동도 레프트에 비해서 열심히 안 했다. 레프트한 사람들이 독립운동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공부들도 더 잘한 사람들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은 거의 다 레프트였다. 그래서 올드라이트에게는 원초적 열등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레프트들이 세운 북한 정권이 대실패를 했다. 이제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진 라이트가 등장했다.

    그러나 도적적, 지적 자부심과 우월감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건 뉴라이트의 근거로서 부족하다.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만 뉴라이트가 될 수 있다. Old의 품 안에서 총애와 보호를 받고 올드의 소총수로서 활약을 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올드의 눈치를 보면서 주장의 수위를 조절하는 아리송함을 억지로 New라고 불러달라는 건가? 우리 모두의 Happy를 위해서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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