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등의 가치로
    연대의 노동운동을 만들자
    ‘연대’ 노동운동, ‘사회운동’정당으로
        2022년 01월 28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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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조운동의 현장활동가 조직 <평등의길>에서 보낸 기고 글이다. 대선을 앞둔 시기의 정세와 노동운동의 과제 등에 대한 자신들의 고민을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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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세계와 우리

    진행형인 코로나 사태와 영향

    21세기가 9/11 테러로 막을 올렸다면 21세기의 첫 20년을 통과하는 시점에서 발생한 지구적 경험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확산이다. 인류가 대감염병의 시대를 겪은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완성한 이후 처음으로 겪는 판데믹이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는다는 상상은 이미 코로나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인류는 의료기술과 국제적 협력으로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우왕좌왕하는 정부들과 무너진 공조, 무력한 과학자들이었다. 현대 사회의 자존심이 바이러스 앞에서 무너졌다.

    코로나 시대 3년 차로 들어가는 지금 코로나 경험은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경제의 측면에서 코로나로 인한 봉쇄와 소비감소로 각국 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성장률이 떨어지는 지표상의 위기와 달리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풀어낸 지원책으로 오히려 코로나 이전부터 이어진 장기저성장 국면이 일시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마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금융위기 때문에 월스트리트가 붕괴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자본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시장개입을 요구하고, 미국 정부도 사회주의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일시적 국유화와 공적재정 투입으로 화답했듯이, 코로나 경제 위기 앞에서 각국의 자본가들은 정부에 돈줄을 풀라고 요구했다. 국가는 일자리와 시장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국가재정을 풀었다.

    이제 코로나 이후의 경제에 대해 여러 시각이 등장한다. 우선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누적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언제 종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의 재정정책 기조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코로나 경험이 다시 ‘국가’의 귀환을 부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30년을 지속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작은 정부와 시장불개입을 상식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국가는 역할이 줄어들고 위상이 낮아졌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장의 한계로 장기저성장(뉴노멀) 국면에 들어가자 당황한 자본이 다시 국가의 개입과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 이후에도 국가가 시장보다 우위에서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만들지 아니면 지갑만 열고 경기 회복 후 다시 버려질지 여부다. 코로나 시기에 풀린 공적 재정을 놓고도 공적인 삶을 재건하는 밑거름이 될지 아니면 이익은 기업이 챙기고 재정의 부담은 공공이 짊어지는 현상이 재현할지 시각이 교차한다. 최소한 한국 경제에서는 이미 후자의 현상이 목격된다.

    코로나는 사회질서에도 질문과 상처를 남겼다. 방역을 위한 극단적인 봉쇄 정책은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과 자유 사이의 얇은 경계선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어디까지 희생되어야 하나, 국가는 과연 이러한 통제를 맡길 만한 믿음직한, 그리고 정의로운 존재인가를 놓고 서구사회는 양분됐다. 그리고 서구에서 좌파를 비롯한 기성정치의 후퇴와 맞물려 이런 사회적 논란은 극우파의 부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시장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기술이 인류 공통의 위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예상과 다르게 백신과 치료제가 조기에 등장했고 각국은 발 빠르게 집단 접종에 나섰지만 선진국과 빈곤국가의 접종률 양극화는 인류 차원의 집단면역 대신 끊임없는 변이체의 발현과 면역의 무력화로 이어졌다. 백신 초기에 이를 예상하고 인류의 이익을 위해 백신의 기술을 개방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다국적 의료기업은 공공성과 국제연대가 시장의 원리를 대체하는 경험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의 한국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무엇이든 이번 대선은 두 가지 배경 속에서 치러진다. 지난 2014년 총선에서부터 시작해 2017년 대선을 통해 확인된 것은 베이비붐 세대라 불리는 옛 주류가 새로운 주류로 교체됐다는 사실이다. 경제 성장의 기억 대신 성장한 경제의 혜택을 누렸고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 대신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기억이 강한 것이 신주류의 특징이다. 그리고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듯 신주류의 등장은 한국사회 기득권 세력의 교체이기도 하다.

    다른 배경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 구도가 붕괴한 이후 치르는 첫 대선이라는 점이다. 87년 이후 치른 모든 한국 선거는 결국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로 수렴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한국사회 주류의 교체 이후 더는 민주와 반민주로 한국정치의 구도를 설명하지 못한다. 문재인 정권과 집권 민주당의 연이은 실패로 고사 직전의 국민의힘이 부활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전통적인 민주-반민주 구도의 복원은 아니다.

    비록 세간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치가 진보와 보수의 가치대결로 재편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자유주의적 보수와 국가주의적 보수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세력이 존재하나 서로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니 이번 대선이 전례가 없는 혼탁한 선거가 되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데 실패한 이재명과 민주당은 윤석렬과 국민의힘을 반민주로 몰아 ‘민주’진영의 결집을 이루려 한다. 역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을 오로지 문재인 정권의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치르려 한다.

    문제는 보수 정당의 누가 대선의 승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대선을 통해 진보정치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는 보수양당의 정치와 선을 긋고 진보정치의 독자성과 가치를 제시하는 패기를 보여주지 못한 채 설득력 없는 제3지대 결집론이라는 소극적인 3등 전략에 머물러 있다. 메시지도 6공화국 체제와 결별하는 체제전환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주4일제 같은 단편적인 공약만 내놓고 있다. 그마저도 정책을 선점하지 못하고 보수정당과 공유하고 있는 모양새다. 심상정 후보의 칩거와 복귀 이후 선본 조직의 구성과 선거운동의 내용이 우경화한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대선 이후에도 정의당은 한국 진보정치 대표체의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지금의 정의당으로는 대선을 물론이고 앞으로는 보수정치의 파열구를 내는 과감한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급진적인 운동정당으로의 변화가 정의당의 미래만이 아니라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발전을 위해 시급하다.

    새로 등장한 정권은 초기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노동체제 구축을 시도할 것이다. 다만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방향은 다를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노동정책이 노사간의 균형을 과도하게 노동 쪽으로 꺾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인식 아래 총자본의 요구와 민원을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개혁, 즉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권은 노동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에 적극 나설 것이다. 기존의 경사노위 틀 대신 다른 체제를 통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정권의 우군으로 만들려 할 것이나 민주당의 성격상 노동에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이 많지 않아 포섭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 집권하건 민주노총은 대정부 교섭과 사회투쟁 노선을 놓고 적잖은 내홍을 겪을 것이다.

    경쟁하는 두 대선 후보 모두 남북관계에서의 성과를 정권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을 것으로 보여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이 미국의 견제 속에서 임기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차기 정권 역시 바이든 정부의 기조를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남북관계의 안정을 최대치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대북 관계보다 차기 정권이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동북아시아 질서에 더 큰 파장을 미칠 것이다. 대중 포위망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는 미일의 압력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상이 결정될 것이다.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축적에서 파괴로

    기후위기는 위기를 심화하는 원인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면서 2022년 내내 더 악화할 것이다. 위기 자체는 지구적 재앙이지만 당분간 그 재앙의 결과는 인류 모두에게 동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해수면 상승은 태평양의 가난한 섬나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인한 식량난은 아프리카의 난민을 늘리고 나아가 자원을 둘러싼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탄소 배출 저감을 둘러싸고는 선진국-개발도상국-저개발국의 입장이 여전히 갈라지며 지구적 협력을 방해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과 확산도 크게 보면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아마존 밀림 등 개발도상국 환경의 급속한 파괴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코로나 사태가 지구적인 경제 불평등을 가속하고 이것이 다시 백신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연쇄의 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후퇴까지 낳고 있다.

    정부 간 협력의 더딘 속도와 달리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파국을 맞는다는 위기 의식은 시민들 속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러한 간극이 지구적 차원에서의 체제 위기로 이어진다. 당장 2022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기후위기와 위기를 만든 주범인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대중의 반란이 시간이 갈수록 격해질 것이다.

    ▲ 우리가 사는 세상

    지구촌은 양극화를 넘어 분리된 두 세계로 나가고 있다.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동시에 인류 역사 그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역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규정하고 있다.

    경제의 성장이 결국은 모두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신앙은 기후위기와 지구적 불평등 앞에서 깨졌다. 자본주의 축적은 더 이상 성장의 동력을 찾지 못한 채 사회 그 자체와 나아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위기를 극복할 수단과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을 것이라는 낙관도 평균기온의 빠른 상승과 질병의 지구적 유행 앞에서 깨졌다. 급진적인 자본가들이 내놓는 해법은 우주개발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로켓 놀이에 드는 비용은 노동조합이 없는 아마존과 테슬라의 노동자가 마련하고 있다.

    모순이 존재하는 곳에 운동이 발생한다는 원리에 비춰보면 지구적 불평등에 맞서는 거대한 사회운동이 언젠가는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의 역할은 다가오는 운동을 넋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반란을 앞당기기 위해 조직하고 선전하는 것이다. 대중의 각성이 사회운동의 각성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사회운동의 각성과 노동운동의 전진

    반노동·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는 보수양당 누가 집권하든 권력을 쥐면 새로운 모순이 생기고 대중의 저항과 운동이 만들어질 것이기에, 누가 되면 운동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공포를 과장하며 정권을 양자선택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공히 민중운동 전반에 가할 탄압과 포섭의 시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시민운동 등이 기후위기와 양극화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공통의 전선으로 사회운동의 연대전선을 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또한, 보수양당 후보자 자격검증 문제로 진행되는 대선이슈를, 불평등 해소와 노동 중심의 사회대전환으로 옮겨오는 사업과 투쟁을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이 공동으로 대선기간에 벌여야 한다.

    사회운동의 성과와 의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옮기고 제도로 남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운동정당의 존재가 필수다. 사회운동은 2024년 총선까지 바라보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국면에서 진보의 구조개혁 정책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진보정당이 사회운동과 분리되지 않도록 ‘사회운동정당’을 함께 만드는 노력을 일상의 활동과 병행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코로나로 인해 깊어진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사회 양극화 속에서 피해가 계속 집중되고 있는 취약노동자를 대변하고 연대하는 사업을 노동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아래로부터의 논의를 통해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의제를 제시하는 사회연대를 조직하면서 이 운동을 주도하는 과감한 실천을 벌여야 한다.

    노동운동 초창기에 ‘연대solidarity’는 노동조합의 성장 발전을 위한 조합원의 단결과 노동계급 내부의 단결을 의미했다. 이후 산업이 발전하고 임금노동자가 확장하면서 노동운동의 ‘연대’는 숙련공과 비숙련공,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등 계급 내부의 차이와 구분을 극복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이 추구할 연대는 1) 임금노동자 안팎의 분단(고용형태, 임금수준, 성별, 이주, 세대 등)을 극복하고 2) 동시에 극복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구성원의 협력과 협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평등의길의 존재 이유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사회연대를 넓히고 이를 운동으로 수행할 조직인 사회운동노조와 사회운동정당, 그리고 이를 모두 묶은 역사적인 저항블록을 형성해 대안사회라는 궁극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한걸음 크게 다가가기 위해 평등의길은 2022년 “평등의 가치를 연대로 묶는 노동운동”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의 운동이 자족적인 것이 아니라 ‘대안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이 사업장을 넘어선 산별노조운동의 지향을 분명히 하고, 미조직·불안정 노동자와 연대하고 지역과 연대하며, 사회운동을 조직하고 진보정치에 참여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연대를 실천으로 조직하는 운동조직으로서 ‘평등의길’의 성장발전과 함께 ▲평등의 가치를 전체 노동운동의 흐름으로 만들 민주노조운동 대안블럭을 조직하고 ▲사업장과 업종의 구분을 넘어 연대로 계급의 무기인 산별노조를 강화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운동을 끌어내는 사회운동정당을 한국 사회에 실현하는 것이 평등의길에 앞에 놓인 과제다.

    필자소개
    노동운동 활동가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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