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은 민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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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2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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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은 신년 특별 인터뷰로 홍세화 한겨레 시민 편집인을 만났다. 이 글을 독자들께서 읽을 때쯤이면 그는 더이상 편집인 자리에 있지 않을 것 같다. 2006년은 그가 정년이 되는 해다. 한겨레 쪽에서는 그에게 무엇인가를 더 요청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외유내강’한 그는 새해라고 새삼스런 다짐이나, 분석이나, 전망을 하지 않았다. 상식이 제 자리를 차지하는 사회, 성찰적 이성과 교육을 중시하는 그의 잔잔한 어투에는 정말이지 부드러워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 힘이 들어있다. 나무의 가는 뿌리들이 땅 속 깊이 파고드는 힘처럼. <편집자 주>

– 먼저 지난해 중점적으로 하신 일이 무엇이고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지셨는지, 올해는 어떤 일을 하시고 싶은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존재의 정체성은 민중성, 계급성, 인간성

= 작년엔 어땠고, 금년엔 어떻고, 내년엔 어떻고 이렇게 시기를 구분한다는 것이 저한테는 별로 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좀 상식적인 사회, 좀 더 정의롭고 균형 잡힌 사회가 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게 제 삶의 과정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금년, 작년을 나눠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예정이고요.

– 상식이 복원되고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요.

   
 
 

= 저는 우리 사회를 몰상식한 사회라고 보고 있고, 모든 부분에서 힘의 역관계가 워낙 불균형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사회 불의와 뻔뻔함이 판치게 되지요. 한국사회의 몰상식과 불균형을 낳고 있는 것으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제기하는 것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는 표현입니다.

존재에 상응하는 의식을 어떻게 갖도록 할까에 초점이 모아지고 그런 쪽으로 부족하지만 글을 쓴다거나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를 한다거나 했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얘기했을 때 존재의 정체성이란 두말할 것 없이 민중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계급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더 넓게는 인간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 지난해는 이른바 민주파의 무능함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대중적으로 확산, 확인된 한 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올해 풀어나가야 될 중심적인 과제를 지적하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힘의 역관계를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교육문제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죠. 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의 의식의 반영이라고 했을 때 의식형성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는 지금 말씀대로 반민중적 의식이라든지 야만적인, 물신에 투항하는 의식, 연대의식이 아닌 경쟁의식에 매몰되는 것은 사회환경에서 교육이 맡아야 하는 부분이 무너져버리는 현실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당면과제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맞서서 담아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찰 이성에 대한 믿음이 인간 신뢰의 근거

–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기보다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말씀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못한 존재라고 했을 때 인간에 대한 신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 인간을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을 때 이성을 흔히 성찰적 이성, 도구적 이성으로 구분해서 얘기하죠.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성찰적 이성에 비해 도구적 이성이 훨씬 강하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이죠.

예컨대 전쟁은 일상화돼 있죠. 역사 속에 계속 있어왔고요. 동물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죠.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인간을 집단적으로 죽이기 위해 예상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절망적이죠.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성찰 이성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인간성의 확장이라고 할 때 성찰적 이성이 깃들어 그런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나 하는 전망, 그런 소망이 담겨져 있는 얘기라 할 수 있죠. 이성 그 자체에 대한 신뢰라기보다 그런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여러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고 있는데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수치로 보면 최악의 수준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진보진영으로서는 멋있는 경쟁자가 됐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우선 우리 사회의 균형적 성장, 정치발전을 볼 때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 사이의 경쟁, 즉 ‘극복대상’의 관계가 아닌 ‘경쟁대상’의 관계로서의 게임, 이런 것을 기대해왔습니다.

흔히 말해 유럽쪽 정치사회를 지향한다고 할 때 김대중 정부 이후 두 번째로 노무현 정부가 섰을 당시에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죠. 진보정당의 판이 유리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고 본 것인데 그런 방향은 모색하지 않고 오히려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하는 등 배반을 느끼게 했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든 노정권, 과거사 처리는 긍정적

또 하나는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한 몸에 안고 태어난 정권, 또 탄핵사태를 통해 반사이익으로 다수당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에 그런 기대를 갖게 됐는데 그런 것이 모두 무너져 버려서 오히려 독재정권 하에 있었을 때 가졌던 장래에 대한 전망, 희망과 기대 이런 것이 노무현 정부를 통해서 와해돼 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장래에 대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와해됐기 때문에 그 역효과가 더 심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되는 것이죠.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완전히 포기하고 좌절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우리 사회를 한편으로 지배하고 있는 물신과 장래에 대한 불안, 경제동물화 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요.

노무현 정부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다고 하면 과거사에 대한 조망이랄까요. 미흡하지만 그 작업은 대단히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과거청산에 대한 문제만큼은 조금 더 진전시킨다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진취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출범하자마자 국민들에게 한 말이 “권력은 시장에 있다.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허탈감이랄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사실관계의 진술이라고 받아들여야 되는 것인지, 정권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 난 이미 바뀌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되는지 당혹스러웠는데요. 사실 아주 일찍 포기한 것 같았습니다.

=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토크빌의 <앙샹 레짐과 혁명>을 보면 프랑스 대혁명조차도 사회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사실 우리가 기대했던 것 자체에 한계가 숨어 있었던 것인데, 관료문제, 자본의 힘이라든지 사실 그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죠.

부드러운 ‘자본 독재’에 대한 성찰 부족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독재시절에는 가려져 있던 부분일지 모르겠는데 그게 걷어지면서 ‘자본의 독재’라는, ‘소리 없는, 부드러운 독재’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건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두세달 정도는 긴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세, 그러니까 2003년 6월로 기억되는데요. 그때부터 허물어지고 투항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실상 우리 운동권에서도 분명히 짚어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노동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에 공히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80년대를 이념과잉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념결핍의 시대입니다. 80년대에는 군사독재의 억압에 맞서면서 자본주의라든지 사회구성체라든지 토론이 나름대로 있었고, 어떤 점에서 과잉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 폭압은 많이 걷어진 반면 자본의 독재가 심화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때와 달리 두 손을 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시기적 조응에 있어서 볼 때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자본주의에 대해 오늘날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자본주의의 대안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자본주의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성원들 자본주의에 대해 너무 무지, 운동권도 문제

제가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유럽의 경우를 보면 정규 교육과정에서 부족하나마 자본주의가 어떤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 비정규직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이런 기본적인 흐름이나 맥락을 사회구성원들이 교육과정을 통해 공유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해 별로 배우는 게 없습니다. 이것이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담을 진행한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
 

– 교육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의 주요 내용입니다. 교육의 내용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차단돼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학법 재개정 투쟁을 벌이는 사학재단들의 모습, 또 전교조의 교육 내용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극도의 증오 같은 걸 보면, 아직 강고한 극우수구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정치 의식이 50대 이상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는데요. 그걸 ‘생계형 보수’ 표현하더군요. 지금 한국사회 이데올로기 지형의 상당히 보수화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60년 동안 권력에 의한 의식화 엄청나게 견고해

= 그렇죠. 우선 분단 이후 60년 동안 이어진 ‘의식화’를 놓치면 안 됩니다. 예컨대 남미에선 가능한 것들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가를 생각해봅시다.

한국에서는 소위 역사의식, 비판적 안목을 가질 수 있으려면, 지배세력이 역사적으로 진행해온 체계화되고 조밀조밀한 의식화 작업의 결과물들을 걷어내는 계기를 갖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념적 지형에서는 그렇고요. 물적 토대와 관련해서는 기득권 세력의 축적된 노하우를 간직하고 강화시키려는 각종 연줄로 연결된 강고성이 있습니다. 재생산 구조가 강력한 것 중에 하나의 예가 사학법 재개정투쟁입니다.

개방형 이사 4분의 1로 한다고 해봐야 그들이 밀실에서 마음대로 주물러왔던 것에 작은 불빛이 들어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마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주 집요한 사익추구 집단인 것이죠. 이념적으로도 물적으로도 강고하게 연결돼 있고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홍보수단, 강력한 대중매체와도 결합돼 있죠.

그런 면들을 우리가 놓치면 안 될 것이고요. 그 다음에 50대 이상의 경우 의식화 결과가 그대로 온존한 거라면 20대의 경우는 80년대 정치과잉, 이념과잉의 반사이기도 하지만 97년 위기를 겪은 후 장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생계형 보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정치적 보수성이라기보다 장래에 대한 불안이데올로기로 수동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지향성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의 솔직함은 ‘선택적’이라는 게 문제

– 노무현 대통령이 할말을 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간부문까지 원가공개를 확대한다고 해놓고 관료들이 안 된다고 하니까 말을 안 하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의 메시지 중에는 설득력이 있는 것도 전달하는 방식 때문에 꼬투리 잡히는 것이죠. 며칠 전 식당에서 TV뉴스에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니까 일하시는 아줌마들이 기분 나빠하고 비웃고 하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더군요. 자신들의 어법과 비슷한 어법을 대통령이 사용해도, 설득력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어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솔직함’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게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제돼 있지 않은 것 같고요. 또 한편으로는 솔직함이라는 게 선택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 솔직한 게 아니라 선택적으로 솔직하다는 점이 설득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는데 솔직한 분이, 사과해야 할 분이 슬그머니 용두사미격으로 넘어갔거든요. 또 부동산 원가공개 문제를 보면 솔직함이 자의적이고 선택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부분이 설득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현상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노 대통령이 조중동과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정책적으로 별로 싸울 것이 없습니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라든지, 비정규직 법안 등에서 한통속인데요. 누구 말마따나 이미 대연정이 이뤄진 거죠. 마치 싸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수구세력과 차별성이 있는 것처럼 한 것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 것입니다.

좌파신자유주의라는 것도 고종석씨가 정확히 얘기했는데 좌파라고 솔직히 얘기하니까 좌파에 대해 혐오하는 사람이 찍어줄 리 없고 신자유주의라고 드러내놓고 얘기하니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쪽에서 찍어줄 리 없고, 모두 다 안 찍는 거죠.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일면의 솔직함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를 뒤덮는 것이 ‘중도’라는 것입니다. 좌파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사라고 생각하는데요. 두 개를 다 엎고 있는 거죠. 내용은 같은 것인데 좌파신자유주의는 양쪽에서 거부하고 있다면 중도는 명분과 실리를 살릴 수 있는, 제 표현으로는 아주 영악한 기회주의가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노조 전투성은 노사관계 불균형이 본질적 원인 

–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민주화, 심화된 민주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심화된 민주화 과정의 주체로서 노동운동의 중요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민주화의 중심세력으로 인정받는다기보다 고립화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노동운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한국의 노사관계 역시 매우 불균형합니다. 노사간 불균형으로 인해 노동운동이 투쟁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죠.

하지만 노동계급 속에서 이 불균형한 구조를 낳은 사회체제, 구조에 대한 학습이 태부족합니다. 일면으로 투쟁성이 강조되지만 투쟁의 추진동력은 따라붙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실은 노사간 불균형이 엄청나지만 그런 구조를 낳는 현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학습이 거의 없다는 것이죠. 이것이 결국 대중성 확보를 못하고 고립되는 것이고요. 거듭 강조하지만 현실에서 노사간 불균형이 노조의 존재이유라도 밝히려면 투쟁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학습이라고 생각하고요.

‘외유내강’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외유’는 ‘내강’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모습이죠. ‘외강내유’(外剛內柔). 내적으로 유약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투쟁성을 비치게끔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흔히 먹을 게 있고난 다음에 문화지, 배고프면 무슨 문화냐는 얘기도 있는데요. 배가 불러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불러야 문화 향유하는 것 아니다

= 지배세력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고, 아니어야 하는 것이죠. 민중적 가치관의 형성이 우리에게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지배세력은 문화를 교감이나 향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 또는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니까 자연히 ‘배가 부른 다음에 문화다’라고 얘기를 하죠.

민중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가치관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특히나 문화 부문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물신주의적 가치관에서부터 어떻게 민중문화를 세울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인문학, 철학, 삶의 보람 이런 것하고 연결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학습과 토론이 중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 교육, 문화 외에도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언론 ‘기관’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한겨레> 내부에서 비판자 역할을,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악역’을 맡으셨는데요(웃음).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 수준에서 중요한 기구 중 하나인 언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한겨레> 안에서 일을 하시면서 느낀 소회도 함께 말씀해주시죠.

= 한겨레에 국한해서 얘기하긴 그렇고 언론 전반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결국 조중동 헤게모니가 역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통계를 보면 KBS의 영향력이 높게 나타나지만 이는 양적인 진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몰상식한 사회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신문이 사회를 비치는 거울이라고 할 때 신문시장의 판도가 몰상식함을 드러내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은 왜곡된 시장구조에서 올바른 여론형성을 위해 인터넷 매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중파 방송입니다.

진보, 보수로 가르고 거기에 기계적 중립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겁니다. 진보, 보수가 아니라 몰상식과의 관계인 것이기 때문이죠. 한국의 공중파 방송은 사회구성원들을 드라마 중독증에 걸리게 하는 원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공중파 국민 드라마 중독증 걸리게 한 원죄

이를테면 드라마가 대리만족을 취하게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KBS스페셜. PD수첩 등 피디저널리즘의 좋은 프로그램이 제작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이 얼마 되지도 않은 대중들과 연결될 뿐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드라마 중독증 때문이지요.

훌륭한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모색해서 내놓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나타냅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프로그램은 안 봐도 될 사람은 보고, 정작 봐야할 사람은 안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이 공기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특히 공중파 방송이 제 역할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KBS, MBC 보도국입니다. 보도국이 기계적 중립주의에 머물러 있는 한 조중동의 엄청난 힘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대단히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 민주 반민주는 이미 해체된 전선이라고 보는데요.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얘기하는 진보와 보수 전선이 저절로 형성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지난해 ‘진보개혁세력의 위기’를 연재했는데요. 개혁과 진보를 한데 묶는 것은, 대중 수준에서 구분이 안 간다고 하지만,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개혁과 진보를 묶는 방식이 보수와 진보 지형을 형성하는 데 있어 부정적인 어법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언론에 의해 사회적 담론화돼 버렸지만 사실이나 상황을 부정확하게 보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싶은데요.

진보 개혁 한데 묶는 건 그릇된 표현

   
 
 

= 그렇죠. 민주-반민주 구도와 최장집 교수가 말씀하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다 연결되는 것입니다. 개혁세력이라는 것은 민주를 표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자유주의 상황에서는 개혁이 갖고 있는 기회주의적 성격, 마치 명분과 실리를 다 갖겠다는, 가능하지 않는 꿈을 품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진보와 개혁을 한데 묶는 것은 온당치 않을 뿐 아니라 역사를 바라볼 때 아주 그릇된 표현입니다. 반민주-민주 구도에서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구도 자체가 끝나버린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개혁이란 명분과 실리를 득하려는 기회주의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고요. 이게 노무현 정부가 우리 사회에 남겨주는 학습 효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민주노동당이 진보세력을 자임하고 있지만 북핵문제에 대해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70% 정도는 북한의 자위적 측면을 인정하고 있고 이는 민주노동당 당원들 사이에서도 높게 나왔습니다. 북핵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견해차가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건 좀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거다, 아니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근래 남북관계에는 변화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북미관계의 종속변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북핵문제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죠.

한반도 비핵화 일본의 재무장 이런 것으로 볼 때 북핵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 현재 북한이 처해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많은 국민들에게 내용을 짚을 수 있도록 알게 해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지, 이것이 옳다, 그르다 다투는 모습은 온당치 않습니다.

북핵 "균형감각 필요", 일심회 "관심없어 잘 몰라"

– 지난해 소위 ‘일심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이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부분을 다루는 과정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선생님은 민주노동당 당원이시기도 한데 일심회와 관련된 당의 움직임을 지켜보시면서 어떤 소회가 있으셨는지요.

= 의도적인 건 아닌데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다만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심각한 것은 당내에서 토론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정파구도가 블랙홀처럼 작용하면서 반대의견을 내세우면 “넌 정파가 다르니까” 이러지 않습니까. 토론 자체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 민주노동당이 올해로 창당 7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올해 대선을 치르게 되는데요. 지지율이 모든 걸 얘기해주지 않지만 대중들의 의식을 말해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지난 총선 직후 20% 가까이 올라갔다가 경향적으로 하락해 최근에 한자리수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는 민주노동당이 현장에서 민중들이 어떤 기대와 여망을 갖고 있는지 치열성을 갖고 만나지 않았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예컨대 제가 보는 관점에서 민주노동당이 당 차원에서 순발력을 보였던 것은 독도문제였지 부동산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이거든요.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디서 과연 민중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죠. 다른 객관적인 상황이 있겠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지도부에 있는 것이죠.

독도의 순발력과 부동산의 늦대응 

같은 맥락에서 울산에서 동구와 북구 구청장을 했고 조승수 의원이 당선됐었는데 재선거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보고서 하나 못 봤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평가가 없다면 과연 진보정당의 기본에 맞춰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나 생각이 듭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제 때문에 의석이 8석이 생겼는데요. 국회에 들어가는 데 많은 역할을 했지만 부메랑 효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당지도부가, 어떤 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대중과 멀어지면서 비례대표가 갖는 흡입력에 매몰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비례대표제가 어떤 면에서 중장기적으로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입니다.

– 민주노동당의 주요한 지도적 인사들이 비례대표 진출에만 관심을 갖게 돼, 당내 선거구도에만 신경을 쓰면서, 당의 본령인 대중과 만남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인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실제로 2012년 집권이니, 제1야당이니 얘기를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지역구에서 약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가시적인 게 있는지 잘 보이지 않고요. 그런 점에서 마치 비례대표제에 의존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입니다.

– 대중적 관심사는 아니지만 당직공직 겸직 금지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 안에서 중요 의제로 논의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지 이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도입했을 때의 문제의식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 않겠는가 싶어요. 지금 비례대표 의원 8명이 있는데 임기가 1년반 정도도 안 남았습니다. 임기가 지난 다음에는 당규에 의해 다시 비례대표에 나설 수 없는 조건이죠. 그런 상황에서 지금 바꾼다는 것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느낌입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유예기간을 두는 유연성이 있었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지금 이 마당에 다시 되돌린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비례대표 했던 분들이 당 지도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데 말이죠.

부동산 민주노동당 대응 깊이 있게 반성해야

저는 지금 사회현안들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주도적으로 순발력 있게 나아갈 수 있겠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컨대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에게 빼앗긴 꼴이고, 촛불집회도 경실련에 내준 것인데 정말 깊이 있게 반성해야 합니다.

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과연 민주노동당이 ‘거대한 소수’ 전략이라는 의미에서 노력은 했지만 이런 상태에서라면 국회의원 중에서 뚜렷한 모습, 분명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민주노동당도 사회적으로 흐르고 있는 중도성이라는 것에, 똑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민주노동당이 존재를 배반하지는 않았지만, 존재 이유에 불충분했다는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 활동의 상당 부분이 의정활동 속에서 평가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의정활동은 국회에 처음 들어간 초심자들이니까 국회라는 헌법기관 구조 속에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간 상황에서 부닥쳐야 되는 상황에 비추면 그런대로 역할을 한 편이 아니겠나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좀 더 특히 비정규직 법안에서 분명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 당이 움직여지고 있는 흐름, 지도부나 특히 정파에 의한 토론 부재라든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능력, 이런 데에 더 문제가 있지 않겠나라고 보는 편입니다.

의원보다 당 지도부 현안대응 역량이 더 큰 문제

– 올해 대선이 있습니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유력한 후보가 많은 데 반해 여당에는 후보가 없어 걱정인 상황입니다. 군부독재의 마지막 서자와 비슷한 김영삼, DJP연합을 통해 집권한 김대중. 정몽준과 손잡았던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와 무관한 민간출신 대통령 3명의 15년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실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불러내고 있는데요. 노무현 정권을 평가하면서 우려하셨던 대목이기도 한데 현대 정치사의 큰 흐름 속에서 올해 대선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 아직 연초이고 대선까지는 11개월 이상 남아 있어서 변수가 돌출할 수도 있기도 하죠. 남북관계라든가 정상회담이랄지 이런 변수가 또 안 일어난다고 볼 수 없고요.

그런 걸 감안하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제 한국사회가 진보-보수의 구도로 가야한다면 이번 대선이 중요한 기로가 되지 않겠나는 생각을 우선 하면서 그래서 군사독재세력에 뿌리를 뒀던 개발론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는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기본적인 희망을 갖고 있죠.

그것이 갖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어려운 희망이지만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든 누구든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와 어떤 큰 차이가 있겠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진보정당의 진출에 있어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이번 대선 진보-보수 구도 형성에 중요한 분기점

이번 대선에서 수구기득권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 지난 후에 또 한번 진다면 앞으로는 더이상 않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어려운 기대지만요.

그들은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의지를 집요하게 갖고 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과거청산을 얘기했습니다만 이것을 집요하게 방해하면서 미흡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가령 남아공 진실과화해위원회가 부족한대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200년 동안 지배해왔던 백인들이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정치권력에 있어서는 말이죠. 결국 백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잇속 챙기겠다는 타협점이 있었던 것이죠.

한국에서 그들이 이번 대선을 통해 다시 한번 실패한다면, 이런 40% 지지율 상황에서도 또 안 된다고 한다면 한국의 역사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것이죠. 민중의 생존권 문제를 토론하는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 여당의 대선주자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 평가를 떠나 일종의 도박정치 같기도 한데요. 대선이 인기스타를 뽑는 것도 아닌데 그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글쎄요. 우리 사회가 워낙 보수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 그것이 수구적 보수든, 자유주의적 보수든, 보수세력간 지역을 근거한 연결된 것에서 나타나는 현상 아니겠습니까. 진보적 정치세력이 약한 현실의 반영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통합신당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밥에 그 나물’이랄까요. 그런 것에서 크게 다른 게 아니라고 보고, 보수로만 이뤄진 정치판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 너무 안이하다

– 올해 대선을 준비하는 민주노동당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직결된, 구호가 아닌 내실있는 정책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처럼 구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좀더 집요하게 설득할 수 있는 자세와 내용을 갖고 나왔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 당사에 홍보실은 있지만 교육실은 없거든요. 진보정치연구소가 있긴 하지만 당원들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죠. 한국의 민주노동당처럼 당원 교육 등 학습을 소홀히 하는 진보정당이 지구상에 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사회 지배세력에 의한 헤게모니 관철과 의식화에 비춰볼 때 너무 안이한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은 탈의식을 하지 못한 것에 비해 나는 탈의식을 했다는 점에서 오는 오만함도 있고요.

사실 최근에 <진보정치>에 칼럼도 썼지만 쉬운 일, 즉 내부에서 다투는 것만 한다는 거죠. 밖에서 제기된 어려운 일은 안 하려고 하고 내부에서 다투는 일만 하는 작풍을 일신시킬 수 있는 후보가 나타났으면 좋겠고, 그래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권력이 보수세력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고 신자유주의의 힘은 줄어들지 않고 이데올로기 지형도 만만치 않고, 올해도 썩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한다면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중요한 건 가치관 문제라고 보고요. 결국 삶의 문제,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랄까요. 워낙에 물신주의, 신자유주의, 개별화가,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도 각자의 삶 속에 녹아 들어있죠.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에 얼마만큼 긴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질문,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질문, ‘늠름한 민중의 표상’은 어떤 것일까, 이런 고민들을 스스로 하고 동지들 사이에 공유하는 것이 결국 우리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고 그것이 곧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희망의 거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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