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 투쟁 하지만 단독 평화는 없다"
    By tathata
        2006년 12월 27일 06: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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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인(奇人)’이었다. 두시간 반 동안 내내 그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조직에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곧은 신념과 의지만으로 2년을 한결같이 싸워온 차윤석(41) 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는 필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석’을 훌쩍 뛰어넘고, 스스로 운동의 방식을 만들어 실험하고 싸운다. "등을 다독여 줄 동지가 없기에 외롭고도 지난한 싸움이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롭다"고 그는 말한다. 도대체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차씨는 하나은행 해고자다. 그런데, 정리해고나 권고사직과 같은 해고가 아니다. “나는 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고 외치면서 재계약서에 끝내 싸인을 거부하다 계약해지가 됐다.

    1996년 하나은행 본점 자금부 어음교환실에 평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지난 2004년 11월에 과장으로 해고되기 전까지 8년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어음교환실은 고객이 맡긴 수표나 어음을 그날 결산하여 현금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많다.

    첫번째 해고 – "3년 계약직에서 1년 계약직? 못해"

       
     

    그는 하나은행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지난 2001년에 3년 계약직 신분이 됐다. 과장으로 ‘책임자 승진’이 되면서 사측은 “은행권의 대체적 흐름”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3년 계약직 서명용지를 내밀었다. 그 당시에는 의구심을 품긴 했지만 응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4년에 회사는 다시 그에게 계약서를 들고 왔는데, 이번에는 1년 계약직 서명지였다.

    지금까지 은행권의 비정규직은 주로 창구업무, 콜센터 업무 등을 하는 여성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왔지만, 한 부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간부에게마저 매년 계약서의 서명을 강요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외환위기 구조조정 이후, 은행권에 불어 닥친 ‘고용 유연화’ 덕택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계약서에 차마 서명을 하지 못했다. 원칙도, 기준도 없이 회사 마음대로 언제든 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비위짱’이 돌았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에게 서명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약해지가 된다고 독촉했으나,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지난 2004년 11월 1일에 해고됐다.

    이 때부터 그의 ‘나홀로 전투’는 서막이 올랐다. 그는 독학으로 노동법을 독파하면서 자신이 ‘부당해고’를 당했음을 알게 됐고, 노동부에 부당해고 진정 건을 접수했다. 수년간 정규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자신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 노동자이며, 설사 3년 계약직으로 일했다하더라도 계약기간이 갱신된다면 다시 3년짜리 계약직 노동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 7개월 후인 2006년 6월 1일 복직판정을 받았다. 노동부는 "’3년 계약이 자동 갱신된다’고 봐야 한다"며 복직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해고기간 중에 받지 못한 임금도 지급받았다.

    첫번째 복직. "사무지원부 발령, 그러나…"

    ‘이제 다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돌아온 그를 하나은행은 반겨주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일한 경험이 없는 사무지원부에 발령이 났다.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어음교환실에서 잔뼈가 굵은 제게 사무지원부 업무를 맡긴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출근하자마자 대판 소리를 쳤죠. 나를 다시 자르든지, 아니면 어음교환실로 다시 발령을 내달라고요. 고대하던 복직이었지만, 부당한 처사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니예요. 사람의 인격이 사회활동에 투여되고 반영되는 매우 보람된 것입니다. 단지 돈만 벌기를 바랬다면 1년짜리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고분고분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나은행은 그의 사무지원부 발령 전보배치를 수정하지 않았고, 그는 명령 불복으로 다시 해고됐다. 그는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가처분 소송과 부당전보 무효확인 가처분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야근을 하면서도 한번도 받지 못한 야근근로수당, 연장근로수당, 휴일수당을 지급할 것도 노동부에 진정했다.     

    두번째 해고. "이제는 전면전이다" 

       
     

    지금까지 회사는 이미 각종 수당이 급여에 포함된 ‘포괄임금’이라고 주장하며 수당지급을 회피해왔다. 이참에 그는 하나은행의 뿌리 깊은 나쁜 관행을 고쳐볼 심산이었다. 과거 재직시절 노조에 찾아가 야간근로수당 등을 지급해야 하지 않느냐며 인사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할 뿐 흐지부지 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혼자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사무지원부 발령으로 잠잠해질 것이라 여겼던 하나은행은 그가 그동안 지급하지 않았던 각종수당마저 청구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노동부가 그에게 수당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릴 경우, 수년동안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한 수당조차도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켜왔던 하나은행은 ‘들불처럼’ 번질 수당지급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회사를 상대로 조용히 그러나 엄청난 싸움을 진행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그의 직속 상사였던 하나은행어음교환실 총괄부장이 찾아왔다. 그는 “청구한 수당의 2배를 줄 테니, 다른 사람의 수당문제는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 생각을 이미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자신의 진정으로 하나은행의 부당한 관행을 끊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발소에 가서 삭발로 의지를 다지다

    이미 그는 삭발로 다시 의지를 불태웠다. 오랜 해직생활로 담배를 살 돈마저 바닥이 날만큼 생활고에 쪼들린 그가 회사측의 회유에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발소를 찾아가 “아저씨, 삭발이요”를 외쳤다. 비록 머리를 밀어줄 사람이 이발소 아저씨이긴 하지만, 삭발은 삭발이다.

    그리고 몇 일 후에는 조병제 하나은행 부행장이 그에게 만나자는 제의를 했다. 조 부행장은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그는 더 ‘쎄게’ 나갔다. “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당없이 일해왔던 하나은행 노동자들에게 수당을 모두 지급해 주십시요. 그리고 임시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상시업무를 하는 3개월부터 1년까지 하나은행 단기계약 비정규직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십시요.”

    그의 말에 부행장은 “수당지급 건 같은 돈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있네, 하지만 비정규직 전환은 어렵네”라고 답하고 돌아갔다.

    "상시 비정규직들을 모두 정규직화 해주십시요"

    그는 왜 이런 ‘황당한’ 요구를 했을까. 무슨 노동조합 단체협상도 아니고, 해고자 신분인 그가 무슨 배짱이 났을까.

    “일반적으로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요구를 점점 더 내려깎는 것이 보통입니다. 저는 오히려 나를 무시할수록 더 손해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큰 요구를 하는 것이죠. 만만하게 물러날 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겁니다.

    처음에는 단지 원직에 복직되어 편안하게 일하는 것만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아가 확장된다고 할까요.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함께 잘 됐으면 하는 바램이 커졌습니다.”

    그는 회사에 복직을 시키지 않으면 하루에 300만원씩 지급하도록 하는 간접강제 소송도 제기했다. 지금까지 사측이 노동자를 상대로 회사 출입금지가처분 소송 등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회사가 노동자를 복직시키지 않을 경우 돈을 물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노동부 진정과 소송만도 10여건. 소송은 변호사에게 맡겼지만, 가처분소송이나 노동부 진정은 혼자 법학 서적을 뒤적이며 독파했다. 그가 제기한 법적 소송에 맞서 하나은행도 노무사와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태스크포스팀이 꾸렸다. 그는 자신의 요구가 정당한만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싸웠고, 그 힘은 이미 하나은행도 무시하지 못할만큼 커져가고 있었다.

    그는 해직기간 동안 민주노동당 당원이 됐다. 지금은 고양시위원회에서 그동안 쌓은 노동법 실력으로 노동상담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 하나은행 앞에서 의지를 다지는 차윤석씨
     

    하나은행 금고로 가서 현금 챙겨오는 상상!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은 그가 해고기간 동안 임금을 지급하라며 제기한 가처분 소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그는 지난 6월부터 받지 못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회사가 끝내 자신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직접 법원 집행관과 함께 하나은행으로 현금창고로 들어가 현금을 차곡차곡 챙겨오는 꿈을 꾼다.

    이미 농협 해고자인 이우영 씨가 농협 금고에서 강제집행을 했던 선례가 있기에, 그도 언젠가는 두발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현금 보따리를 챙기는 상상을 하고 하는데, 그는 그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되는 듯 했다. "멋지지 않습니까. 법원 집행관과 함께 하나은행 금고로 들어가 보란듯이 저의 임금을 챙겨오는 겁니다." 

    하지만, 그의 싸움이 승리가 보장된 것만은 아니다. 회사가 대법원 항고까지 하게 되면 그의 해직생활은 더욱 암울해진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가장인 그가 ‘놀고 먹은’ 지 내년이 되면 3년이다. 하지만 그는 아쉬워할 지언정,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끝까지 한 번 가보는 겁니다. 끝까지 가보면 누가 불리하게 될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 더 비굴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의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인용했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너희들은 우리를 두려워한다. 어떻게 끝나느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내년 1월 1일부터 전 직원들에게 초과근로수당을 임금체계에 반영해 지급하기로 했다. 그의 시작은 그렇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두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를 끝내고, 어느 노동운동가 못지 않게 굳은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힘을 발휘하는 그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힘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상식이 바로 설 때까지 싸우는 것,  그 뿐이었다. 

    그의 ‘단독’ 투쟁은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조직이 싫어서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싸움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희생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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