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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로프 팔메와
    생태학살범죄 그리고 자연권
    [에정칼럼] 녹색전환의 관점에서 그를 생각한다
        2021년 12월 24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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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당대표와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올로프 팔메(Olof Palme). 두 번째 총리직을 수행하던 1986년 2월 어느 날, 스톡홀름 밤거리에서 암살당했다. 현직 총리의 암살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팔메는 비타협적 사회민주주의자이자 스웨덴 사회복지국가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최근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가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노회찬재단․프레시안 공동기획)에 팔메를 소개한 글을 실었다. 이념적 입장에 따라 팔메과 그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대한 평가는 다르겠지만, 정치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유력 후보와 거대 양당의 최악 경쟁 게임 탓에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기후위기시대에 누군가는 녹색사회민주주의와 녹색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례로 스웨덴을 호출할 것이다. 탈동조와 탈성장 간의 끝없는 긴장은 잠시 잊고, 국가경계를 초월해 지구적 평화와 연대를 추구했던 팔메의 업적을 녹색전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

    첫 총리 재임 시절이던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는 국제환경레짐의 시초가 됐다. 1987년과 1992년을 거치면서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가능성 담론은 국제적으로 주류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약한 지속가능성 프레임으로 수렴된 결과, 현재 지속가능성은 지배질서를 변혁하는 위험한 담론이라기보다 대체로 의사소통에서 공통의 정책언어로 기능한다.

    스톡홀름 환경회의 기조연설에서 팔메는 대기와 해양 등의 자연에 대한 공동소유와 공동관리, 즉 우리 공동의 미래(Our future is common) 관점을 밝히고, 대량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를 의미하는 생태학살(ecocide)을 금지하는 국제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생태학살이라는 개념은 1970년, 미국 식물생리학이자 생명윤리학자인 아서 갤스톤(Arthur Galston)이 미국의 베트남전 고엽제 살포를 반대하면서 해당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팔메 역시 베트남전을 생태학살과 연결시켰다.

    최종 스톡홀름 선언문에는 생태학살 내용이 담기지 않았지만, 1970년대에 집단학살방지및처벌협약(Genocide Convention)에 생태학살을 포함시키거나 별도로 생태학살방지및처벌협약(Ecocide Convention)을 제정하자는 논의로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까지 생태학살에 대한 국제법적 규정 방안은 수용되지 않았고, 일부 국가들만 형사처벌 조항을 포함하여 국내법을 개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2015년 파리협정 체결 이후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학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바누아투와 몰디브(2019년), 벨기에(2020년)는 국제법위원회(ILC) 총회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을 위해 채택된 로마규정(Rome Statute, 2002년 발효)에 생태학살범죄를 포함시킬 것을 공식 요청했다. 로마규정과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학살범죄, 비인도범죄, 전쟁범죄와 침략범죄, 이렇게 네 가지 국제범죄를 관할하는데, 여기에 생태학살범죄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 안토니우 구테후스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등 몇몇 나라가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2021년 12월, 글래스고 기후총회가 끝한 후 열린 국제형사재판소 총회에서 대표적인 기후위기 취약국가인 방글라데시, 사모아와 바누아투의 기후위기 관련 생태학살범죄 요구는 여러 나라와 기후정의단체들로부터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냈다. 이와 동시에 로마규정을 개정하여 생태학살범죄를 신설하자는 캠페인(Stop Ecocide International & Stop Ecocide Foundation)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이렇게 50년 전 팔메가 제안한 생태학살 금지 제안은 최근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생태학살법(ecocide law)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다른 한편, 2000년대 초부터 자연권(rights of nature)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흐름도 활성화되고 있다. 에콰도르는 2008년에 세계 최초로 헌법을 개정해 자연의 권리를 신설한 경우에 속한다. 최근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에콰도르 기업(Enami)과 캐나다 기업(Cornerstone Capital Resources)이 함께 추진하는 열대우림 채굴사업이 헌법상의 자연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재판관의 다수 의견은 해당 사업에 대한 판단은 인간사회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 범위에 국한할 수 없으며, 인권을 포함한 자원권의 보호 여부에 따른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한다. 그에 따라 생물종 멸종과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고, 지역사회의 건강권이 훼손될 것으로 예상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참여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자연권은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 법적 강제력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자연권 보장과 생태학살범죄 처벌은 기후위기시대에 탈탄소 녹색전환 과정에서 사전예방 원칙과 오염자부담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주요한 이행 수단이다. 권리보장과 범죄처벌 방식에 더해 재정분담 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상원의원 크리스 반 홀렌(Chris Van Hollen) 등이 마련한 오염자부담기후기금법(The Polluters Pay Climate Fund Act)의 사례가 있다.

    법안이 피해․손실 개념을 법적 근거로 삼지는 않지만,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상당한 기업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정 분담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10년 동안(2010~2019년) 미국 이산화탄소와 메탄 배출량의 0.05% 이상의 책임이 있는 화석에너지 대기업을 선별해 이에 속한 기업들로 하여금 향후 10년에 걸쳐 대략 총 5,000억달러를 납부하게 하고, 정부는 이 기금을 모아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 사업에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사회도 탄소중립이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고 2022년에 큰 희망를 갖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으로는 자연권 보장, 기후범죄 처벌과 배출책임 재정부담 등의 실효적인 비상대책을 펼칠 수 없다. 대선과 지방선거로 일정하게 재편될 권력구조가 이 미션을 담당할 수 있을까. 생태학살범죄를 신설하자는 로마규정 개정안을 지지할까. 장담할 수 없지만, 움직임은 분명 있다.

    한쪽에서는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민중경선운동본부와 민주노총이 대선 공동대응 및 후보단일화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지지하는 ‘불평등체제 타파와 진보정치대단결을 위한 대선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발족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기본소득당, 녹색당, 미래당, 정의당, 진보당, 그리고 녹색전환연구소, 대학생기후행동, 문화연대,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청년기후긴급행동가 ’기후대선운동본부‘를 발족하고, ‘2022 기후대통령 선출을 위한 8대 강령’를 제시했다.

    이 두 흐름을 어떻게, 얼마나 유기적으로 엮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기후대선을 위한 10대 대표 정책’을 제시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선거운동이 어디로 향할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기후시민의 존재와 그 선택에 달려 있다. 부분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기후정부를 갖게 마련이니까.

    * <에정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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