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부터는, 11월 되면, 내년 1월엔 뭔가"
        2006년 12월 23일 01:28 오후

    Print Friendly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그의 캠프 관계자들에게 지지율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똑같이 돌아오는 답변이다. 북핵, 추석 등 변수가 있었던 지난 9월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보다 갑자기 10% 포인트 뒤쳐졌을 때도 그랬고, 최근 이 전 시장과 20% 포인트 가까이 격차가 벌어지며, 때때로 ‘더블스코어’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은 그 때마다 서울시장 퇴임 후 정책탐사, 대학 특강 등을 진행한 이명박 전 시장의 ‘마라톤 행보’와 비교하며 박 전 대표는 아직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9월에는 “11월부터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고, 최근에는 “내년 1월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 행보에 따른 지지율 회복에 대한 자신감 표명도 여전하다.

       
     ▲ 한나라당 대권주자 박근혜 전 대표 (사진=연합뉴스)
     

    9월, 11월, 1월 본격행보 ‘세번째 예고편’

    돌아보면 박 전 대표의 본격 행보 예고편은 벌써 세 차례다. 그 첫 번째가 지난 9월 말 독일 방문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 선언이다. 물론 박 전 대표 측은 공식 출마 선언이 아니라고 했지만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던 만큼 ‘포장’을 못한 변명 이상일 수 없다.

    하지만 당시 박 전 대표는 특별한 행보를 이어내지 않았다. 정기국회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밝혔지만 북한의 핵실험 등에 이슈가 몰린 상황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두 번째는 국정감사를 마친 후 11월 사실상 대권주자로서 본격적인 행보에 오른 것이다. 여의도에 사무실까지 내고 ‘마라톤 행보’라고 꼬집은 이명박 전 시장에 못지않게 전국을 돌며 특강 정치를 폈다.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대륙횡단 철도 구상에 이어 중국 현지까지 방문해 확인한 열차 페리 구상도 내놓았다. 그는 이달 들어서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는 전국 특강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1월부터 본격 행보를 시작한다고 한다. 세 번째 예고편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지금까지는 국가 선진화의 각 분야별 목표를 제시했다”며 “1월부터 우리가 준비한 기획 일정에 따라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공개하고 토론을 통해 국민들의 검증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표도 “요즘 특강을 하는 것은 대권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고 워낙 요청이 많아 성의를 보이는 것일 뿐”이라며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답답하다"

    박 전 대표 측의 잇단 본격 행보 ‘연기’는 앞서 지적한 지지율 추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11월 본격 행보 이전, 이 전 시장과 지지율 격차는 박 전 대표가 정기국회에 충실하기 위해, 또 당의 경선 조기 과열을 막기 위해 대선주자로서 행보를 자제했다는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11월 이후 전국을 누비고 중국에 가서 열차 페리 등 굵직한 정책까지 내놓은 마당에 지지율이 약 20% 포인트까지 벌어지고 ‘더블스코어’까지 기록한 데 대해 캠프 내에서도 “답답하다”는 분위기다.

    11월 본격 행보 이후, 한 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박 전 대표 측도 고무되는 분위기였다. 이달 초 중앙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R&R)가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가 5.1% 포인트까지 좁혀졌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박 전 대표의 공세적인 행보와 이 전 시장의 ‘유럽산 감기’까지 분석에 보태며 ‘지지율 급반등’ ‘맹추격’ 등으로 이를 기사화했다.

    하지만 불과 1~2주일 새 발표된 다른 여론조사들은 여전히 10% 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격차를 나타냈다. 이달 중순 잇달아 발표된 방송 3사의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이 모두 15%~20% 포인트 앞서면서 박 전 대표 캠프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다.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던 중앙일보와 R&R의 조사에서도 다시 13.8% 포인트로 격차가 벌어졌다. R&R 김원균 본부장은 “지지율 격차가 5% 포인트로 좁혀진 것은 표본오차 때문이 아닌가 한다”며 “실제 지지율 격차는 더 컸다고 본다”고 인정했다.

    이명박 1강 체제, 한동안 유지될 것

    나아가 김원균 본부장은 “지지율 추이를 보면 2강 구도가 아니라 1강 2중 구도로 고착화되는 모습”이라며 “크게 더 벌어지진 않겠지만 10~15% 포인트 격차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컨설턴트인 김윤재 변호사도 “1강 고착화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으로는 이명박 독주 체제가 내년 초반까지 몇 달간 계속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과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도 각각 “이명박 시장의 지지율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40% 이상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헌태 소장은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너무 올라갈 경우 조정기가 올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지난 22일 SBS와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41.6%까지 올라섰다.

    11월 이후 박 전 대표의 ‘마라톤 행보’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과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이 전 시장의 독주체제가 계속되는 것은 왜일까? 11월부터 최근까지 박 전 대표가 방문한 지역만 꼽아도 전북, 천안, 제주, 부산, 대구, 포항, 전주, 강원 등 전국을 아우른다. 남북 철길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대륙 횡단 철도 완성을 주장하더니 11월 말에는 중국을 방문, 열차 페리 구상을 밝혔다. 다시 국내에 들어와서도 전주, 인천 등지를 항구도시를 방문 열차 페리 구상을 구체화했다.

    열차페리는 ‘아류’ 이미지, 박정희 부각 ‘과거 지향적’

    여론전문가들은 우선 11월 이후 박 전 대표의 행보가 지지율에 영향을 줄 만큼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원균 본부장은 “이명박 전 시장도 (박 전 대표 만큼의) 행보를 했다”며 “박 전 대표가 열차 페리를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대운하 때문에 내놓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조사 결과 이 전 시장의 대운하나 박 전 대표의 열차페리 모두 국민들은 그저 그런 공약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R&R 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이 생각하는 두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20~30%에 불과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열차페리는 박근혜 전 대표가 해서 뜰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다”며 “강금실 전 서울시장의 주택 백만호 건설과 같이 어울리지 않는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아가 “이명박 전 시장의 대운하에 대한 ‘아류’ 공약에 가깝다”며 “교통 물류 전문가들도 어이 없어 하는 공약”이라고 말했다.

    김윤재 변호사도 ‘열차 페리’와 관련 “국가 아젠다, 큰 공약에 대한 요구도 있었겠지만 이 전 시장의 대운하 선점에 대해 ‘나도 있다’는 식으로 내놓은 것”이라며 “결국 이명박 전 시장의 프레임 안에서 싸움이 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경제든, 추진력이든 이명박식이 아니라 박 전 대표식으로 열세 이미지를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형식 소장은 “국민들은 박 전 대표에 남북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기대한다”며 “북핵이란 현실적인 이유로 원래 주장했던 남북철도 연결이 아니라 열차 페리로 간다는 것은 정면 돌파를 못하고 피해가는 구상”이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또한 이른바 ‘아버지의 이름으로’라고 불리는 박 전 대표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는 행보는 “과거 지향적”이라며 “이명박 전 시장의 박정희 따라하기를 지적하는 등 ‘네거티브’ 역시 평소 박 전 대표답지 않다”고 말했다.

    대선주자 개별행보, 어차피 지지율 영향 적어

    한편 박근혜 전 대표의 컨텐츠나 행보 자체가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김윤재 변호사는 “현재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 등 단순히 각 주자의 캠페인으로 지지율이 좁혀지거나 달라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정부 여당의 상황이나 당내 여러 요인 등 큰 상황의 변화로 이슈나 쟁점이 올라올 때 그간의 행보가 힘을 받아서 지지율에 변화가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명박 전 시장이 북핵 문제로 어느 순간 앞에 나온 것처럼 박근혜 전 대표 역시 변화의 계기가 있을 수 있다”며 “지지율 변화는 그러한 결정적 외부 요인과 그 때까지 박 전 대표가 축적한 컨텐츠나 행보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를 기다리며 이 전 시장에 비해 약점으로 비쳐진 경제나 추진력 등에 대한 박 전 대표만의 ‘내용’을 쌓아가라는 충고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기획 대표 역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보다는 여당 후보가 누가 되느냐, 뉴라이트 단체들이 갈라서느냐 이런 외부의 변수가 지지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한 대선주자 지지율을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다툼으로 좁혀서 볼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 노무현, 정몽준 후보에 일정 기간 지지율이 쏠린 바 있다”며 “이 전 시장의 현재 지지율도 이기는 쪽으로 쏠린 것이고 그 지지율이 빠진다고 해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갈지, 여당이나 다른 정당의 제3후보에게 쏠릴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측 “과거지향적, 아류 비판 수용 못해”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최근 지지율과 관련 이러한 전문가들의 해석에 어느 쪽도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캠프 핵심 관계자들은 특히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와 관련 ‘과거지향적이다’, ‘철도페리는 아류 이미지다’는 지적에 발끈하고 나섰다.

    한 핵심 관계자는 “이 전 시장의 대운하는 지지율 상승 요인이 되고 박 대표의 열차페리는 안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열차 페리에 대해 토론도 한 번 해보지 않고 ‘아류’라고 지적하는 것은 내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또한 ‘과거지향적’이라는 지적에도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묻는데 업적을 인정하는 것이 어떻게 과거지향적이냐”며 “대형서점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책들이 수업이 나와 있고 과거 운동권들도 그 당시 그런 리더십이 없었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런 논리라면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도 결국 과거지향적인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선이 1년이나 남았고 상대 후보가 정해지지 않는 등 상황에서 현재의 지지율은 의미가 없다는 박 전 대표측 시각은 지지율에 대한 후자의 전문가 해석과 통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여전히 지지율 문제를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간 대결로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것을 준비하라는 후자의 지적도 고스란히 받아 안기 어려워 보인다.

    박 전 대표 캠프 관계자는 “이명박 전 시장은 건설토목 분야에서 일하고 서울시장을 지냈을 뿐 외교, 통일, 안보, 교육, 노동 등 경험 경륜이 없고 국가정체성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며 “박 전 대표는 야당 대표 시절 검증을 거쳤지만 이 전 시장은 그런 검증 과정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검증’ 주장에 담긴 내용을 풀어서 이야기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대선까지는 1년이 남았다”며 “이회창 전 총재 때 김대업 주장이 사기로 드러나긴 했지만 검증 과정에서 이명박 전 시장에게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냐”며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의 가능성을 비치기도 했다. 그는 “확실한 것은 지지율 1위인 이명박 전 시장은 절대 다리 뻗고 잘 수 없지만 결전 준비를 갖추고 있는 박 전 대표는 다리를 펴고 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과 대결에만 집착할 경우, 박 전 대표측의 선택지는 결국 ‘아류’나 ‘네거티브’로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과 다시 만나는 지점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측이 이 전 시장에 대한 네거티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다”며 “(박 전 대표가) 현재 상황을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박 전 대표측이 지지율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 같다”며 “이러다가 악수(惡手)를 둘 수 있는데 자칫 네거티브 악수를 두면 오히려 (박 전 대표쪽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