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동안 연기된 약속을 노래하다
    2006년 12월 23일 03: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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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트록은 80년대 전영혁과 성시완, 두 명의 DJ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입됐었다. 당시엔 아트록보다 프로그레시브록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요즘은 아트록이라는 가치판단조차도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냥 유로피언록이라고 부르는 추세지만 아무튼 당시 ‘뉴트롤즈New Trolls’니 ‘제네시스Genesis’니 하는 밴드에 푹 빠져 있던 사람들은 이런 류의 음악이 대단히 ‘진보’적인 형태라는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진보적인 것이면 죄다 불온시 되던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30년 전, 길게는 40년 전에 유행했던 음악조류에 진보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맞는 일인지 의문이 든다. 음악형태가 이데올로기는 아니니까.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진보적인 밴드라면 그 뒤에 등장한 후배들은 핑크 플로이드보다 보수적인 혹은 덜 진보적인 친구들인가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음악 형식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핑크 플로이드보다 요즘의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DJ들이 더 진보적인 뮤지션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 시대를 수놓았던 무수한 프로그레시브한 밴드와 음악인들 중에는 음악적인 형식만이 아니라 그들이 노래했던 주제와 지향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진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특히 전영혁과 성시완, 이 두 분이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던 이탈리아의 아트록 팀들 중에는 유독 음악과 내용 양 측면에서 ‘진보’를 실천했던 아티스트들이 적지 않다.

‘아레아Area’나 ‘스토미 식스Stormy Six’ 같은 공인된 좌파밴드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주제를 자신들의 음악에 용해 시켰던 이탈리아 록밴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반꼬 델 무뚜오 솟꼬르소Banco del Mutuo Soccorso’는 70년대 이탈리아 아트록 씬을 대표할 만할 중량급 선수다.

발음도 어려운 이 외국 밴드의 이름은 우리말로 옮기면 ‘상호저축은행’, ‘상호신용금고’ 쯤 된다. 이름에서부터 무언가 세상살이의 냄새를 팍 풍기지 않는가.

* * *

   
"Come In Un’Ultima Cena"
Banco del Mutuo Soccorso
1976년
1. …a cena per esempio
2. Il ragno
3. È così buono Giovanni, ma…
4. Slogan
5. Si dice che i delfini parlino
6. Voilà Mida (Il guaritore)
7. Quando la buona gente dice
8. La notte è piena
9. Fino alla mia porta
 

반꼬는 보통 ‘PFM’, ‘레 오르메Le Orme’와 함께 이탈리아 아트록의 3대 거두로 표현된다. 그만큼 음악적인 성과가 만만치 않은 밴드라는 것이다. 72년에 밴드 이름을 제목으로 한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뒤이어 같은 해 “다윈!Darwin!”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앨범을 선보였다. 제목 그대로 다윈의 생애와 그의 진화론을 주제로 한 음반으로 이탈리아 록 사상 첫 번째 컨셉트 앨범으로 기록됐다.

록밴드가 난데없이 진화론이라니 밴드 이름은 경제학(?)스러우면서 주된 관심은 생물학에 있는 건가 의심이 들 만하다. 그러나 가톨릭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했던 당시 이탈리아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록밴드가 진화론에 관한 앨범을 녹음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주제로 앨범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 앨범은 전 세계 아트록 팬들의 커뮤니티인 ‘그노시스Gnosis’ 웹사이트의 투표에서 가장 훌륭한 아트록 앨범으로 선정되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듬해 발매된 3번째 앨범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다Io Sono Nato Libero”는 15분짜리 대곡인 ‘양심수를 위한 유목민의 노래Canto Nomade per un Prigioniero Politico’를 담고 있다. 앨범의 나머지 4곡들도 매우 강한 정치색을 띠고 있다. 반꼬의 중추를 이루는 노첸지 형제가 로마 대학에서 각각 철학(형 빗또리오)과 문학(동생 지안니)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이들의 음악을 철학적이고 시적으로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1975년에 발표한 앨범 “반꼬Banco”는 이탈리아를 벗어나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기존의 노래를 영어가사로 다시 녹음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한 밴드는 다시 이탈리어로 돌아와 영화 사운드트랙인 “붉은 카네이션Garofano Rosso”을 녹음했다.

“붉은 카네이션”은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으며 2차대전 동안 파르티잔으로 활약했던 소설가  엘리오 빗또리니의 동명작품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2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저항하는 젊은 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장미를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반해 특이하게도 이탈리아는 붉은 카네이션을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여긴다.

“붉은 카네이션” 사운드트랙과 함께 발표된 밴드의 6번째 앨범이 “최후의 만찬처럼Come In Un’Ultima Cena”이다. “다윈!”에 이은 두 번째 컨셉트 앨범이다. 내용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죽음을 앞둔 예수가 제자들과 가진 최후의 만찬을 다루고 있다.

가톨릭의 영향이 강한 나라인 만큼 이탈리아 록밴드에게서는 기독교의 그림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이탈리아 밴드 ‘라떼 에 미엘레Latte e Miele’의 “마태수난곡Passio secundum Mattheum” 같은 경우 클래식에 기반하면서도 록과 재즈의 영역을 넘나드는 혁신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내용은 마태복음에 적힌 예수의 수난을 그대로 차용했다.

반면 반꼬의 앨범은 성경에 적힌 예수의 궤적을 찬송가 부르듯이 반복하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유다가 예수에게 ‘포교가 목적이라면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후에 세상에 내려왔어야 했다’고 충고하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처럼 2천년 전이 아니라 지금의 세상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음악-가사-디자인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컨셉트 앨범인 만큼 음반의 커버도 이런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로마 병정의 손이 십자가에 못질을 하고 있지만 정작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양복을 입고 있다. 이 앨범의 테마가 ‘종교’는 아님을 우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 *

결론부터 말하면 이 앨범에서 노래하는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첫 곡 ‘…예를 들어 만찬에서…a cena per esempio’은 수난곡으로 치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번민하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끝난다. ‘새로운 날이 밝으면,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와 그의 사도들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반꼬가 노래하는 예수는 신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의 아이들인 우리 자신인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한가운데 앉아있는 예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집어넣는 것으로 앨범은 시작한다. 따라서 이 음악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구세주가 아니라 죽음, 고통, 불안, 억압과 같은 세상의 짐을 짊어진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마지막 하룻밤’을 여행하는 기록인 것이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달의 암흑면Dark Side Of The Moon”이 특정한 이야기구조 없이 자본주의, 전쟁, 계급, 광기와 같은 현대사회의 주제들을 묶어 놓았듯이, 반꼬의 “최후의 만찬처럼”도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는 스승의 이야기가 아니라 메시아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지, 인간으로서 미리 알게 된 자신의 최후를 회피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는 예수에 우리 자신을 투영해 현대인의 나약함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강고함을 그리고 있다.

   
▲ "최후의 만찬처럼Come In Un’Ultima Cena" 앨범 커버의 펼친 모습. 안쪽에는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해 예수의 열두제자 대신 반꼬의 멤버들을 집어넣은 그림이 들어있다.
 

‘거미Il ragno’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거미에 비유하며 우리가 생명의 줄이라고 믿고 따라가는 거미줄이 사실은 거대한 함정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어지는 곡인 ‘그것은 좋지만 죠반니, 그러나…È così buono Giovanni, ma…’는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다. 갈등을 거듭하는 예수처럼 앨범은 격렬한 템포의 곡과 천상의 멜로디처럼 편안한 곡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한다.

‘구호Slogan’는 “외쳐라 너희들의 구호를, 지켜라 너희들의 구호를”이라는 노랫말에서 보여지듯 주장과 이념이 구호로 표출되면서 충돌하는 세상을 긴장된 리듬에 실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결코 화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너의 생각도, 문제도 받아들일 수 없어. 무엇보다 너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돌고래가 말을 한다는데Si dice che i delfini parlino’는 반대로 폭풍우가 지나간 바다에서 고래잡이를 피해 자유를 찾는 돌고래를 노래한다. “작살이 파도를 향한 너의 도약을 막을 수 없어. 폭력이 너를 헤집어 놓는다 해도 바닷물의 소금기가 너의 심장을 씻어줄 테니까.” 원래 기독교에서 작살에 찔린 고래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상징한다. 또한 돌고래는 예수의 부활과 생명을 비유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치료사Voilà Mida (Il guaritore)’는 다소 충격적이다. 예수에게는 병을 고치는 주술적인 치료사의 이미지도 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나사로를 되살려낸 것도 예수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신의 아들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수들’은 목적이 다르다.

시끄러운 시장판 소음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노랫말은 “너의 문제들을 이야기해봐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어, 내가 너를 낫게 해주지 / 다만 비용이 조금 들 뿐이야, 큰 문제는 아니지 / 너의 고통 받는 영혼을 구하고 싶으면 약간의 돈만 있으면 돼 / 네가 찾는 것을 내 안에서 발견할거야 / 그 때 난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아 /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오직 돈, 결국 돈 때문인 거야.”

‘선한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Quando la buona gente dice’는 깊은 밤 제자들의 눈을 피하는 예수의 모습을, ‘밤은 충만하고La notte è piena’는 갈등하는 예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갈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욕망 때문에 갈등하고 있다.

“인간들의 한숨은 밤을 타고 전해진다 / 그들의 비뚤어진 소망과 적나라한 욕망은 밤을 전달된다 / 금단의 열매를 깨물거나 무슨 수를 써서든 승리하는 것 / 밤 안에 울려 퍼지는 절규를 들어봐 / 순서대로 구분할 수 있겠어? / 밤의 적막을 들여다 봐 / 서로 싸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

이제 앨범의 마지막 곡이다. 그러나 부활도 구원도 없다. 노래 제목처럼 그저 ‘마침내 나의 문 앞에Fino alla mia porta’ 섰을 뿐이다. 그 모든 갈등과 욕망, 충돌 속에서 항상 최후의 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구원만큼 절실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구세주는 없다. 진정한 구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림의 약속은 왜 지난 2천년동안 계속 연기되고만 있는 것인가? 이것이 ‘최후의 만찬’을 통해 깨달아야 할 지혜라고 30년 전 이탈리아의 록밴드는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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