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 혐오 광고,
    차별금지법 제정 미뤄진 결과
    서울 부산 등 전국 7개 지역에 게시
        2021년 12월 03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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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전광판 광고가 서울과 부산 등 전국 7개 지역에 버젓이 게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로 현재 이 광고는 중단됐지만, 현행법의 미비로 인해 이 같은 광고가 다시 나올 가능성은 남아있다. 혐오와 차별에 대한 적절한 제재 조치가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시민사회는 이번 사건이 14년째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뤄온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너머서울)은 2일 오후 광화문역 7번 출구 전광판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이 1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대도시 화려한 전광판에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며 “각 자치구는 혐오차별 광고 금지 규정을 마련하고, 국회는 연내에 반드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너머서울

    문제가 된 광고엔 여성의 탈을 쓴 성소수자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화장실의 문을 여는 그림과 함께 ‘여성들이 위험해집니다!’, ‘그래도 찬성하시겠습니까?’, ‘차별금지법/평등법 STOP’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 선동하는 내용이다. 해당 광고는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에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라는 단체에서 게시했다.

    이런 식의 혐오 광고물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건물 전광판에 버젓이 내걸렸다. 너머서울에 따르면, 지난 21부터일 송파구 롯데월드 옆 건물 대형 전광판과 광화문 7번 출구 앞 건물 전광판 등 전국 7개 지역에 노출됐다. 이 단체가 25일 송파구청과 종로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넣은 후에야 혐오 광고물 게시가 중단됐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인종차별적 또는 성차별적 내용으로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의 광고물은 금지하고 있지만, 전광판 광고 내용을 사전 심의하는 절차에 관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일부 광고의 송파구청 인근에 있는 건물에 게시됐음에도 구청 측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혐오 광고를 단독보도한 시점이 지난 24일인데, 너머서울 측이 민원과 인권위 진정을 했던 25일까지 광고 게시는 계속됐다.

    국회의 책임도 크다. 진작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면 이러한 광고물 게시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경옥 민주노총 서울본부 여성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은 11번이나 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는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며 “차별금지법이 1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이 대도시 전광판에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상현 서울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고 혐오를 유발하는 광고가 서울 도심 내에 공공연히 전파되고 있는 것에 참담한 마음”이라며 “이 사건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조혜인 변호사는 “거대양당은 수십년째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혐오적 의견들에 사회적 의견이라는 이름을 달아줬다. 그 시간이 이런 사회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이러한 옥외 광고물을 비롯한 여러 광고물에서 차별을 조장하는 등 어떤 내용들을 우리가 막고 규율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이 명확하게 세워질 것”이라며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정치권에 각성을 요구하면서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일웅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이번 송파구 광고 사례를 보면 명확하게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폭력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인권을 지키고 증진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아야 할 행정기관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주희 서울 녹색당 정책팀장도 “서울시는 차별과 혐오로부터 성소수자인 시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 곳곳에 성소수자 혐오 광고가 게시되는 동안 어디에 있었나”며 “서울시는 혐오광고 규제에 관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의회도 서울시민의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지자체의 개입 근거를 서울시 인권기본조례에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각 자치구는 혐오차별 광고 금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광고를 낸 지난달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광고물 게시 중단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라고 반발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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