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노동 시작해 30대 투쟁하고
    40대 집을 산 후 우린 온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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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0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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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착 감기는 ‘욕망’, 바로 이것이 자본을 굴러가게 한다. 스타벅스 커피를 불매한다며, 제3세계 커피노동자의 괴로움을 아무리 설파하고 다닌들, 내 혀가 그 커피를 원하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불매운동의 최종 종착지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맛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집을 갖고 싶은 욕망, 바로 이것이 주택시장을 만든다. 집 사지 말자고 아무리 설명한 들, 내 몸이 내 집을 원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주택 건설만이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백날 얘기해봐야 소용없다. "내 마누라도 집사길 원해." 운동을 했던 선배의 말이다.

    ‘모든 이에게 집을 줄 수 있을까?’ 사회주택 논쟁에서는 아주 유명한 주제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유토피아일 뿐이다. 저렴임대주택이 총 주택수의 20%를 웃도는 많은 유럽국가에서도 ‘저렴한’ 임대주택에 월세 없어서 못 들어가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5%이다. 하물며 집을 주겠다고? 너무 자본주의를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 이런 그림같은 집은 아니더라도…
     

    그럼에도 이 문제는 꾸준히 되살아난다. 한때 유럽에서 ‘만민을 집주인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런 저런 이유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고, ‘집주인’이 아니어도 셋집 전전하지 않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주택제도’가 대세처럼 이어져 갔다. 그러나 우파 진영에서는 끊임없이 ‘만민 집주인화’를 기획한다.

    노동자 길들이기 "집주인이 되라"

    19세기 노동자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흐름들은 ‘위생주의자’들이자 돈 많은 자본가들이다. 돈 많던 사회주의자 푸리에, 고댕 등이 집단적 노동자 거주촌을 ‘왕궁’처럼 만들겠다고 했다. 이 집들이 있던 곳은 바로 공장 옆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자본가, 노동자들이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물론 사그라든 찰나의 꿈으로 판명났다.

    하지만 돈 많던 박애주의자들이 사회주택을 주장했고, 실제로 사재를 털어 몇 개의 노동자 촌을 만들었고, 또 다른 자본가들이 여기에 돈을 댔다. 왜? 바로 도시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피어나는 바이러스들, 병균들은 바로 위층에 살던 부르주아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거기에 더 나아가 보불전쟁 때 보여준 부르주아들의 허약한 몸매와 골병 든 노동자들의 한심한 전투력을 본 뒤, 국가는 국민의 체육과 건강에 힘을 쏟아야 할 팔자였다.

    위생, 건강, 스포츠 등등 근대성의 여러 담론들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시절, 튼튼해지는 노동자들을 온순하게 만드는 우파 전략의 정수가 노동자들에게 집주기 프로젝트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전쟁 후의 20세기 중반까지 숙련노동자들에게 집을 하나씩 줄 수 있는 장치들이 고안된다.

    집을 안겨준 효과는 확실했다. 20세기 초의 황금시절, 교외의 싼 땅에 집단적으로 조성한 씨떼(cité)의 집을 소유한 노동자들은 온순해졌다. 숙련공으로서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집주인이라는 소유의식. 두 번의 세계전쟁 후에도 노동자의 집사기 욕망은 계속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비슷한 돈을 가진 숙련노동자와 전문직업인의 경우 노동자가 훨씬 더 집을 더 많이 소유하고 있음을 밝힌다. 무엇하나 불안하기 짝이 없는 노동자가 돌로 만든 고정된 집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은행의 빚이 얹히고, 노동자는 온순해진다.

    1997년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이 온순해졌다

    한국에서도 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표면 위로 뜨고, 포드주의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진입한 뒤 정부는 임대주택 짓겠다, 신도시 만들어 수많은 집을 찍어내겠다고 발표한다.

    78년 선분양제도라는 기가 막힌 제도를 고안한지 10년이 지난 후 노동자들은 상대적인 고임금을 투쟁으로 쟁취했다. 그 후 10년 후 고임금으로 축적되기 시작한 목돈들이 주택분양에 은행 빚과 함께 들어간다. 20대에 노동을 시작해 30대에 싸움을 했고, 이제 40대, 애 딸린 정규직 노동자들의 집사기가 시작된다.

    아무리 강성노조였었더라도 노조를 와해시키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노조 간부들에게 목 좋은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특별분양하면 된다. 40대에 장만한 집은 빚과 함께, 그리고 자라나는 자식들 교육문제와 함께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슬금슬금 노조의 투쟁성은 약화될 것이고, 또 실제로도 몇몇 사업장에서 10년 전부터 벌어지는 일이다.

       
      ▲ 가까운 일본 오사카의 공공주택 (사진=참세상)
     

    좌파정당과 함께 꾸는 내집마련 프로젝트?

    서구에서 우파의 ‘노동자 집주인 만들기’와 좌파의 ‘사회주택제도’는 끊임없는 긴장 관계로 요동쳐왔다. 흔히 전자를 영미식이라 부르고 후자를 대륙식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어느 나라나 두 개의 가치관이 공존과 대립을 반복한다. 단지 미국에서만 장기 모기지를 이용한 집 떠넘기기가 만연할 뿐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경제학자들은 주로 분양가 정상화와 장기 모기지를 통한 주택가격 안정화를 주장한다. 반면 사회주택을, 공공임대주택 확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이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고 있다.

    좌파정당과 함께 꾸는 내집마련 프로젝트. "매년 이삿짐 싸봤나? 전세 빼고 들어가는 몇 달의 문제로 전전긍긍 해보았나? 전세가격 때문에 돈 꾸러 다녀보았나?" "노동자도 집사고 싶다." 아니 노동자들은 더더욱 집을 사고 싶어 한다. 자산도, 사회적 지위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누가 빼앗아 갈 수 없는 확고한 재산이자 쉼터인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결코 부정해서는 안된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을 소유하지 않는 한 셋방살이의 괴로움은 무한반복 될 것이고, 없는 자의 땅 한 귀퉁이 자산 획득의 욕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파의 노동자 길들이기가 아닌 좌파의 사회연대체제 안에 노동자의 내집마련 프로젝트가 제대로 개입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답은 현재까지 아주 비관적이다. 보험회사는 믿어도 친척은 못 믿는 세상에서 탄탄한 연대정신으로 무장하여 ‘우리 함께 집주인 됩시다’라고 하는 일, 현재의 부동산 위기의 대응전략으로는 ‘대략 난감’이다. 아파트 반값으로 주겠다고 자본가 정주영이 얘기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리바이벌하고, 시민단체는 아파트 반값 진품논쟁을 벌인다.

    여기에 좌파정당은 환매수조건부 분양을 얘기한다. 못할 것도 없지만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내년 대선을 위해 이 프로젝트에 승부수를 띠우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집권가능성 전무인 당의 정책에서 정책의 완성도를 놓고 따지는 것은 보조 수단일 뿐이다.

    이제는 사회주택을 말해야 한다

    내 몸이 내 집을 원하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노동자에게 이는 욕망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이다. 그러나 쓴 커피가 한 세대 지나 ‘고급문화’로 유통되듯이 욕망은 변한다. 내집 마련이라는 욕망을 비트는 일, 비록 100년 동안 그럴싸한 성공은 없었다는 점에서 부담스럽지만, 그 경험이 부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제는 국가사회주택이든, 산별노조 사회연대주택이든지 간에 ‘사회주택’으로 전선을 정리해야 한다. 사회주택이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드는 ‘사회’가 우리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공하는 ‘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이라는 말로 주공이 임대료 200만원의 임대주택을 버젓이 상품으로 내놓는 상황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주택을 말해야 하며, 이것이 ‘주거정책 다시보기 연재기획’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기획 연재에서 우리는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개념들, 상황들을 하나 둘씩 정리해 나갈 것이다. 분양제도, 임대주택, 주택금융, 등등. 0.1%라는 숫자 싸움에 말리지 않으면서 현재의 주택제도가 갖는 핵심들을 파악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 또한 노동과 주택문제가 괴리되어 사고되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 일단 우리는 ‘집주인 되기’에 대응하는 ‘사회주택’이라는 말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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