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를 있게 한 여성 미싱사
    애니메이션 <태일이> 시사회 후기
        2021년 11월 11일 08: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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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싸웠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여성 ‘시다’들에게 자신의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던 헌신적인 모습, 낮에는 공장에서 옷을 재단하고 밤에는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읽는 주경야독형 인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영웅. 잊히지 않는 이 장면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태일 열사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기억하게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는 매우 평범한 ‘20대 청년’ 전태일을 그린다. 그 시절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난한 집 장남인 전태일은 특유의 강한 책임감, 근면 성실함, 정직함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한 재단사이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어린 여성 ‘시다’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일한 만큼 급여를 주지 않는 사장에게도 별말 못하는 물러터진 ‘리더’이기도 하다(재단사는 평화시장에서 최고 기술을 가진 직급이다).

    영화는 그 평범한 20대 남성을, 근로기준법을 든 노동운동가로 만든 이들에게 주목한다.

    그 결정적 인물은 허리도 펼 수 없는 공간에서, 각성제까지 먹으며, 하루 14시간이 넘게 미싱을 돌린 어린 여성노동자다.

    전태일이 일한 봉제공장 사장은 이전 재단사가 저지른 사고에 대한 금전적 피해를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으로 복구하려 한다. 미싱사와 시다들은 명절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지만 사장은 재단사인 전태일에게 이전보다도 못한 급여를 준다. 전태일은 사장에게 말 한마디 못한다. 주는 대로 받아온 급여를 쪼개서 미싱사에게 나눠주고, 미싱사는 다시 그 급여의 일부를 시다들에게 준다. 어린 시다와 미싱사는 다툼이 벌어진다.

    전태일과 또래인 미싱사가 전태일을 불러 말한다. “네가 할 일은 차비 털어 풀빵을 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한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거야”. 영화 속 전태일의 인생은 그녀의 이 말의 전과 후로 나뉜다. 전태일을 바꿔놓은 그녀는 어리지만 불쌍하지 않고, 역경과 같은 노동에서 그저 천진한 얼굴만 하고 있지 않다. 반쯤 감긴 눈으로 미싱을 돌리는, 그녀 역시 평범한 노동자다.

    이름 모를 전태일의 동료들도 놓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것 없는 현실에 좌절한 전태일을 기다려줬던 이들, 자신이 아끼던 시계를 팔아 노동운동 자금으로 보탰던 동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함께 외쳤던 재단사들, 사장이 붙여놓은 감시원의 성추행과 폭력 속에도 굴하지 않고 태일이가 주도한 집회로 달려 나오는 미싱사.

    영화는 그들 모두에게 주목하며, 1970년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사람답게 살기 원했던 수많은 전태일이가 있었음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불쌍한 노동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맞서 싸운 건강한 동료 시민들이라고 역설한다.

    한편 영화 <태일이>엔 장동윤·염혜란·진선규·권해효·박철민·태인호 등 연기파 배우들이 더빙 연기에 참여했고, 22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명필름, 전태일재단, 홍준표 감독의 스튜디오루머가 협력해 만든 두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오는 12월 1일 개봉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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