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뢰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공연
        2006년 12월 16일 09:49 오전

    Print Friendly

    해가 저물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거리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캐럴과 트리가 넘쳐난다. 하지만 세상은 거리에 울려 퍼지는 산타와 루돌프에 관한 노래들만큼이나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곳일까?

    이맘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노래들 중에 존 레논의 ‘전쟁이 없는 해피 크리스마스Happy Christmas (War Is Over)’가 있다. 연말이 되면 방송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보통의 크리스마스용 노래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지만 “묵은 해가 가고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려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냐”고 묻은 노랫말은 여전히 흘려들을 수 없는 대목이다.

    “새로운 해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시간이기를 기원하자”는 존 레논의 호소와 “전쟁은 끝났다”는 성명서 같은 노래 제목과 달리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고 희생자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 * *

       
    "Concerts for a Landmine Free World"
    Various Artists
    2001년
    1. The Pearl
       – Emmylou Harris
    2. Big ‘Ol Goofy World
       – John Prine
    3. Cold Dog Soup
       – Guy Clark & Verlon Thompson
    4. This Shirt
       – Mary Chapin Carpenter
    5. The Mines of Mozanique
       – Bruce Cockburn
    6. It’s a Hard Life
       – Nanci Griffith
    7. My Morphine
       – Gillian Welch & David Rawlings
    8. Mary
       – Patty Griffin
    9. Shipwrecked in the Eighties
        – Kris Kristofferson
    10. Wilderness of This World
        – Terry Allen
    11. Christmas in Washington
        – Steve Earle

    세계 각지에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벌어졌던 분쟁은 그 자체로 해당 국가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특히 분쟁이 종료된 이후에도 제거되지 못한 지뢰들로 인한 희생자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캄보디아와 아프리카, 체첸과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남아 있는 지뢰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지금도 새로운 희생자를 기다리며 땅 속에 묻혀있다.

    20세기 말, 대인지뢰를 지구에서 추방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1997년 대인지뢰 금지 국제조약 체결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대인지뢰를 비인도적 무기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은 1999년 발효됐다. 지금까지 155개국이 협약에 가입했고 규정대로 비축된 지뢰의 폐기와 생산금지를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오타와 협약은 여전히 반쪽짜리다.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40여개 국가의 명단을 보면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남한과 북한 같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 세계 최대의 지뢰 보유 국가들이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를 핑계로 조약을 거부하고 있다.

    대인지뢰 문제 하면 대부분 캄보디아나 중동의 분쟁 국가들을 떠올리지만 지구상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지뢰가 묻힌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전 세계 지뢰금지 운동가들이 지금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한반도지만 정작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1년 폴 매카트니는 콜린 파웰 당시 미국 국무장관을 따로 만나 미국이 오타와 협약에 가입하고 한반도의 지뢰를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웰 국무장관은 이 지뢰들이 북한의 침략을 막고 있기 때문에 제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고 보면 부시 정권은 미국 내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교토기후협약 가입도 거부하고 있다.

    * * *

    “지뢰가 없는 세상을 위한 콘서트”는 1999년 시작됐다. 이 콘서트는 지뢰금지 운동을 홍보하고 기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열리는 자선공연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공연과 캠페인을 주도하는 단체는 지뢰금지를 거부하는 미국의 예비역 군인단체다.

    ‘미국베트남 참전용사재단VVAF’은 60~70년대 반전운동의 선두에 섰던 전역군인들이 1980년 평화운동과 참전군인 지원을 위해 1980년 설립했다. ‘재향군인회’류의 예비역 단체와는 성격이 다른 셈이다.

    VVAF는 오타와협약을 이끌어낸 공로로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지뢰금지 캠페인’의 결성을 주도했던 단체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제일 많은 지뢰를 보유하고 있고 여전히 지뢰금지를 거부하고 있는 나라 안에서 가장 활발하게 지뢰금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참전군인들이라니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들은 지뢰금지 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의 지뢰 희생자들의 재활을 돕는 활동과 UN의 지뢰제거 프로그램에도 함께 하고 있다.

    아무튼 <지뢰가 없는 세상을 위한 콘서트>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의 여러 지역에서 열린 자선공연의 실황을 모아 만든 음반이다. 물론 음반 자체의 발매 목적도 캠페인을 위한 홍보와 기금의 마련이다.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포크와 컨트리 계열, 또는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가수들이다. 특이한 것은 ‘남부 보수꼴통 백인들의 음악’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컨트리 가수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앨범의 첫 곡은 에밀루 해리스의 ‘진주’다. 2000년에 발표한 앨범 “흙먼지를 뒤집어 쓴 소년Red Dirt Girl”에 수록돼 있는 곡이다. 에밀루 해리스는 “지뢰가 없는 세상을 위한 콘서트”의 산파역을 맡았던 아티스트다. 동료 음악인들에게 콘서트의 취지를 알리고 무대에 불러  세우는 역할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캄보디아 같은 지뢰피해 지역으로 날아가 구호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에밀루 해리스가 앨범을 시작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에밀루 해리스뿐만 아니라 메리 체인 카펜터, 낸시 그리피스, 스티브 얼 모두 현대 컨트리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다. 흔히 할리우드는 민주당의 아성, 컨트리 음악계는 공화당의 아성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다.

    이 음반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지뢰가 없는 세상을 위한 콘서트’의 단골 출연자 중에는 윌리 넬슨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반이라크전쟁 운동의 대열에는 신세대 컨트리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 딕시 칙스도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고인이 된 쟈니 캐쉬도 미국 진보주의자들의 우상이었으니 ‘컨트리=우익의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은 한번 쯤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캐나다 출신인 브루스 콕번의 노래 ‘모잠비크의 지뢰들’은 이 음반에 실린 곡들 중 공연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것이다. 원래 제3세계 음악에 흥미가 많아 자신의 앨범에서 자주 인용하기도 하는 그는 에밀루 해리스와 마찬가지로 지뢰금지 운동가들과 함께 분쟁지역을 순회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들을 돌며 그는 지뢰로 피해를 입은 지역 음악인들과 함께 공연을 가졌다. 장애음악인들의 재활을 돕고 지뢰금지운동을 홍보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모잠비크의 지뢰들’도 그가 직접 모잠비크를 방문해서 작곡한 노래다.

    아마도 이 음반에 참여한 가수들 중에 국내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앨범에 실린 그의 라이브는 실력에 훨씬 못 미치는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그가 부른 ‘80년대에 좌초한 배’는 80년대 미국사회의 명암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곡이다.

    앨범의 마지막을 차지한 스티브 얼은 현재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활동적인 아티스트다. 지난 2004년에는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The Revolution Starts Now”라는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라크 전쟁을 주제로 대통령선거에서 부시의 낙선을 목표로 제작된 음반이었다. 컨트리 뮤지션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였다.

    스티브 얼이 앨범의 서두에도 등장했던 에밀루 해리스와 함께 부른 ‘워싱턴의 크리스마스’는 미국 포크의 거목인 우디 거스리에게 바치는 노래다. 노랫말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미국 정치를 조롱하면서 소농장의 몰락과 노조의 붕괴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티브 얼은 매우 활동적이기는 하지만 좌익적인 인물은 아닌데 노래에서는 유명한 미국 무정부주의자인 엠마 골드만과 공산주의자인 조 힐을 언급하면서 이런 인물들이 미국에 다시 등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 *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VVAF의 지뢰금지콘서트에는 이 앨범에 실린 아티스트들 이외에도 윌리 넬슨, 브루스 스프링스틴, 쉐릴 크로우, 엘비스 코스텔로 같은 ‘보다 더 유명한’ 아티스트들도 참여했다. 그러나 앨범이 제작된 2001년 이후의 공연부터 결합했거나 하는 이유로 이 음반에서는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머지 일부’는 소속 음반사와의 계약문제 등등의 이유로 앨범에 포함돼지 못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고 자선을 목적으로 한 순순한 콘서트라고 해도 거기에는 자본주의라는 법칙이 빠짐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저 중동의 어느 산골짜기에 버려져 있는 지뢰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